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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이 될 길의 기록

제주올레 4코스 - 남원~표선 본문

제주올레 - 탐라바닷길

제주올레 4코스 - 남원~표선

경기병 2020. 11. 30. 11:19

기력이 쇠약해지는 엄마를 종종 본다.

내게 남은 세월을 떼다가 엄마의 세월에다 붙혀주고 싶지만, 세월에 그런 거래는 없다.

 

대신에 주말이 되면 내가 본 한반도의 바다를 보여주고자 같이 바다로 나갔다.

바다(길)에 미친 놈을 낳은 엄마 역시도 바다로의 나들이를 내심 좋아했다.

한 주는 동해로 한 주는 남해로, 그렇게 매주말 셋이 바다로 나갔다.

물론 경비는 나누기 3으로 하고...,

 

확진자 수가 일 오백을 넘어서니 현지에서 식당 등을 이용하여야 하는 여정이 심히 불안해졌고,

이번 주는 쉬자고 했다.

 

바다로 나감이 활력을 증강시켰는지?

엄마에게서 보여지던 그 연로한 표정이 조금은 사라졌다.

 

 

그렇다면, 이번 주는 단독플레이를 좀 하겠다. 라고...,

하면서 05시30분 자고 있는 혹들을 떼어네고 혼자서 간만에 집을 나왔다.

 

 

 

 제주올레 4코스 - 남원~표선 (2020.11.28)  

남원포구를 돌아나오며 뒤돌아 본 제주올레 4코스

 

 

올해 일곱번 제주도로 갔고, 그 결과 탐라바닷길 8할 이상을 이었다.

오늘 남은 2할의 절반에 해당되는 온평에서 남원까지의 비워진 마디를 선으로 만든다.

 

 

 

 

 

 

 

 

제주공항 버스탑승장 1구역은 남원과 표선으로 가는 버스들이 선다.

 

남원으로 가는 131번, 온평에서 가장 가까운 환승정류장으로 가는 111번, 두 노선 중 먼저 오는 버스를 탈 것이다.

바라지 않았던 131번이 먼저 왔다.

 

그로해서 3에서 4가 아닌 4에서 3으로 바다를 우측에 두고 걷게 되었다.

그로해서 쉭~ 추월을 하면 비대면인데, 마주보며 스치기에 대면 트레킹은 불가피해졌다.

(올레를 걷는 이들은 대부분 순차적(시계방향)으로 길을 잇는다. 그래서 미안~)

 

 

 

 

남원포구

 

 

09시06분, 지난 제주올레 05~07코스의 출발 시점이었던 남원포구에 또 왔다.

일기예보상 오늘은 하루종일 흐릴거라 했는데 맑은 면이 더 많은 하늘이다.

 

내가 제주도에만 오면 분명 맑다고 한 날씨는 여지 없이 흐려지거나 비를 뿌렸다.

앞으로 비가 예보된 날에 제주도에 오면 되겠구나~ 싶었다.

 

 

 

 

 

 

09시13분,

신발끈을 묶고, 말을 찍고, 트랙을 켜고, 한 대 피고, 남원포구를 출발했다.

 

 

 

 

 

 

해안길만을 따라 온평포구까지의 추정거리는 33km,

돌아가는 비행기 시간은 20시, 늦어도 17시까지는 온평에 닿아야 한다.

 

5km/hr의 속도를 유지하며, 도합 50여분 정도를 쉬면서 가면 된다.

 

 

 

 

 

 

 

변산반도 이후 40여일만에 길로 나왔다.

바다 좋고, 하늘 좋고, 길 좋고..., 그래서 모두들 걷는다.

 

허나, 이제부터 나는 쉽사리 길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

엄마의 연로해짐을 막는 일을 길 보다 더 우선시 할 것이다.

 

사람들이 그랬다.

세월이 하는 일을 사람이 어떻게 막냐고...,

내가 그랬다.

연로해지는 그 모습을 바라보는 심정듦에 뭐라도 하고 싶어 그런다고...,

 

 

 

 

 

대봉안곶등대

 

 

태흥리해안에 들어서니 등대 하나가 서 있었다.

대봉안곶등대라 했다.

 

한 동안, 길로도 등대로도 가지 못 했는데..., 만족스러웠다.

 

 

 

 

 

 

 

올레의 표식을 따라 울퉁불퉁한 도로옆 해안을 100여m 걷고,

올레의 표식을 따라 다시 도로로 올라왔다.

 

어떻게던 사람을 반쯤 죽이고자 하는 무모한 선형 설정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후로 그런 선형은 철저히 무시를 하며 걸었다.

푯말이 한심스러웠다.

 

 

 

 

 

뒤돌아 본 태흥리해안

 

 

3차 유행의 시작이라서 그런가?

걷는 속에 천불을 불러일으켰던 렌트카들이 해안길에서 다소 사라졌다.

 

근데, 오늘 올레를 걷는 사람들이 제일 많음은 뭐지??

이런 이해불가의 역학관계가 발생하는 현상이 사뭇 궁금했다.

 

마스크에 썬글라스에 모자까지 착용하고 마주오니, 저게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 또한 어려웠다.

 

 

 

 

 

 

 

 

 

 

이제 제주해안길에서의 설레임은 없다.

오로지 그 선을 잇기 위해 나아갈뿐이다.

설레임이 없는 길은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

 

오늘 의지를 다독이며 무조건 온평까지 간다.

올해가 지나기 전,

오늘 이후에 남게 될 1할의 고산에서 한림까지와 하귀에서 도두까지의 잔여코스들을 다 이을테다.

 

설레임이 사라진 길엔 지겨움 밖에는 없고, 그 지겨움을 남겨 둘 이유는 더 더욱 없다.

 

 

 

 

 

 

 

1km마다 설치되어 남은 거리를 알려주는 제주환상자전거길 이정표가 거슬린다.

안보면 되지만..., 보이는데 안 볼 방법이 없다. 

 

나는 걸어 온 시간으로 거리를 짐작하고, 걸음의 속도로 남은 거리를 가늠하며 걷는다.

두 시간을 걷고 내가 짐작한 거리 대비 실제 거리를 확인하고자 트랙을 확인하는 순간이 트레킹 중 제일 행복하다.

근데 1km마다 서 있는 저 친절한 가똑똑이 때문에 사람 미치겠다.

 

 

 

 

 

 

 

 

 

 

토산리해안과 가시천 하류를 건너 세화리해안으로 들어섰다.

바람이 조금은 강해지기 시작했고, 닮아 있는 풍경들에 나아가는 기분은 시들해졌다.

 

 

 

 

세화항

 

 

세화항을 돌아나오니,

태흥리 해안에 서 있던 등대가 나를 앞서 가 서 있었다.

가마등대라고 했다.

 

포구의 풍경도 비슷하고, 서 있는 등대마저 동일하게 보이니 걷는 재미가 없어진다.

 

 

 

 

가마등대

 

 

추석 때, 거진항에서 회를 구입하며 올려다 본 거진등대 후 100등대기행은 답보 상태이다.

 

아직 반도 채우지 못 했는데, 등대를 찾아 섬으로 가는 의지는 시들해졌다.

빈곤의 기행에 오늘 두 등대를 만났다.

 

 

 

 

 

 

 

 

 

한 번의 쉼도 없이 표선으로 간다! 했는데...,

표선해변 4km 직전에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벤치가 놓여져 있어 걸음을 멈췄다.

 

희망에 찬 기대감으로 누적시킨 트랙도 확인을 하고,

쫄쫄 굶은 위에 홉의 구수함도 채우고,

고독의 연기도 내뿜고...,

 

1m 간격으로 차도와 보도(자전거도로) 사이에 설치된 경계석 때문에, 달리는 차들은 잠시도 머물 수 없는 길이다.

무조건 달려야만 하는 처지에 고소한 웃음이 나온다.

 

그 간의 제주해안길에서,

보도(자전거도로)임을 알면서도 당당히 주차를 시킨 사람들이 미웠고,

내만 쉬고 있음 잘 가다가도 보도에 렌트카를 세우고 다가오는 따라쟁이들 때문에 올케 쉬지도 못 했다.

 

부디 제주해안길 전부에 이런 경계석들이 설치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제주해안과 올레를 걷는 이들의 안전하고 쾌적한 도보여행 도모는 물론이고,

렌트카로 쏘다니는 제주도가 아닌 대중교통 혹은 도보로 느끼는 제주도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게 제주도다!

나 역시도 제주도에서 렌트카를 몰았지만..., 그 것은 여행이 아니라 유희였다!

 

그 곳에 앉아 한참 동안이나 바다바라기를 했다.

 

 

 

 

 

 

 

이런 이런~ 오늘 날 잡았다!! 싶었다.

표선해변 직전 1km 지점에 또 등대 하나가 서 있었다.

 

분명 그 등대였는데, 또 나 몰래 앞서 나가 서 있나? 싶었다.

개민포등대라 했다.

 

 

 

 

개민포등대

 

 

올레4코스에 포진된 세번째 등대를 지나니 표선이었다.

표선에서 나를 반긴건 미친 바람이었다.

 

 

 

 

 

당케포구

 

 

 

 

 

12시47분,

17.3km를 5.23km/hr의 속도로 걸어, 제주올레 4~3코스가 나뉘는 큰 말에 도착을 했다.

 

바람은 미쳐있었고, 식당의 간판에는 2인이상주문이라 박혀 있었다.

쫄쫄 처굶은 채 돌아다님이 어디 오늘뿐인가?

말 주위를 배회하다가..., 에라이 그대로 3코스에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