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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이 될 길의 기록

암야도경 - 국립등대박물관 본문

모두투어 - 국립박물관

암야도경 - 국립등대박물관

경기병 2022. 10. 25. 11:06

봄이고..., 가을이고..., 오던지..., 가던지..., 그렇게 치부를 하고 살았다.

으레 계절은 때가 되면 다시 찾아 듦에...,

 

가을은 짙어질때가 절정이고,

짙어진다는 것은 떠날 것임을 암시하는 농도가 아닐까, 싶다.

 

 

일어난 토요일 아침,

하늘은 더 높아졌고 그 하늘밑 세상은 한층 더 짙어져 있었다.

 

짙어진 세상을 서성이고자 12시쯤 엄마와 함께 무작정 집을 나섰다.

 

 

 

 

暗夜道鏡 - 국립등대박물관 (2022.10.22)

국립등대박물관에 전시된 등대를 피사체로 한 최고의 작품 - 묵호등대

 

 

 

칠천도로 가 점심을 먹고 거제도 남부해안 홍포에서 바다에 드리운 가을이나 볼까, 싶었다.

그러다가 왠지 내키지 않은 기분이 들어 차를 돌렸다.

 

경주에서 점심을 먹고,

장기반도 해안선을 둘러 집으로 돌아오기로 했다.

 

 

 

 

남산수라간

 

장기반도로 들어서는 약전교차로

 

 

 

나는 대한국인의 억척 논리,

그 산물이 된 호미곶을 옛사람들이 일컬은 장기곶으로 칭한다.

 

호랑이가 사고로 불구가 되지 않은 이상,

평생 한 번도 취하지 않을 기이한 자세를 고안해,

꼬리를 허리에 붙혀 호미곶이라 명명한 짓은 한반도 지형에 대한 모독이다.

 

외세로부터 1,000여 차례 침략만을 당한 민족에게 호랑이의 기상은 있기나 했는가!

아름다운 반도의 테두리에 어거지로 채운 괴상한 호랑이는 우리편에 기댄 억척의 논리일 뿐이다. 

 

 

 

 

 

 

 

장기반도가 영일만에 숨겨놓은 발산마을과 대동배마을을 지나,

15시30분쯤 호미곶해맞이광장 인근 국립등대박물관에 도착을 했다.

 

 

 

 

호미곶등대 - 실물

 

 

 

한반도 해안지선에는 바다로 나간 말(末)과 단(端) 그리고 곶(串)의 지형들이 있다.

그 곳엔 어김없이 홀로 바다를 바라보고 선 하얀 등대가 있다.

땅이 가진 최고의 지형에 인간이 세운 최고의 축조물이다. 

 

항로표지관리주무관이란 정식 직렬로 칭하면 해양수산부에 속한 공무원으로 인지가 되지만,

그들이 싫어하는 등대지기로 칭하면 하얀, 푸른, 밤바다, 그런 동경의 연상이 떠오르 듯,

등대는 어두운 밤바다만을 밝히고자 바닷가에 서 있음만은 절대 아니다.   

 

오로지 그 길의 끝에 닿고자 늘어나는 길이의 수에 집착만을 하며 이어 간 해파랑길과 이순신길에서,

말과 단과 곶에 스민 끝의 아련함은 끝내 느끼지 못했고,

그 곳에 등대가 서 있는지 조차도 몰랐다.

 

바보들의 행진이었다.

 

 

 

 

호미곶등대 - 모형

 

 

 

 

 

걷기가 싫다는 엄마를 친절한 직원분이 대여를 해 준 휠체어에 태우고,

그 휠체어를 밀면서 한국의 등대보다는 세계의 등대를 주제로 한 전시물들을 관람했다.

 

이질감 느껴지는 생소한 외국의 등대보다는,

한반도의 말과 단 그리고 곶의 지형에 서 있는 등대들이 그리워지는 전시관이었다.

 

아쉬운 마음은 전시관 입구에 나열된 작가들의 사진들에서 해갈이 되었다.

내가 찾아 간 등대들이었다.

 

 

 

 

 

등대기행 20 - 묵호등대 (2020.5.23)

 

 

 

등대기행 18 - 오륙도등대 (2020.5.10)

 

 

 

이제 갈 곳을 찾지 못한 날이면,

엄마와 함께  50에서 중단된 등대기행을 이어야지..., 싶었다.

 

 

 

 

 

 

 

 

집으로 오는 길,

구룡포시장에서 올해 첫 과메기를 샀다.

 

그러고보니 프로배구가 개막하는 날이기도 했다.

과메기를 안주로 술을 마시며 배구경기 중계를 봄이 겨울날 저녁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집으로 돌아와 그러고 싶은 마음 간절했는데,

아침에 캔슬된 술판을 다시 하자는 1인이 있어 그러질 못하고,

그 1인에게 줄 과메기를 챙겨 어둠 짙어진 도심의 밤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