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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이 될 길의 기록

통영의 딸 - 박경리기념관 본문

기념투어 - 전시기념관

통영의 딸 - 박경리기념관

경기병 2023. 3. 21. 13:37

내일은 멀고도 먼 그 하늘길로 가야함에,

오늘은 봄이 온 남녘의 쪽빛바다를 서성이기로 했다.

 

낯설은 무엇인가는 없을지라도 조금의 설렘이라도 들 바다를 찾았지만,

오늘 서성일 바다는 쉽사리 일렁이지 않는다.

 

마 그냥 되는 대로 닥치는 대로 살면 그게 답인데,

언제부터인가 정해진 답은 내팽개치고 성립불가의 오답만을 찾고 있다.

 

 

 

통영의 딸 - 박경리기념관 (2023.3.18)

 

 

 

부질없는 짓을 종식시키고,

서성일 바다도 정하지 않은 채,

11시30분쯤 엄마를 데리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통영에 가면 분명 서성일 바다는 있다.

그 이름만으로도...,

 

 

 

 

  

 

 

13시30분쯤 원문고개를 넘었다.

 

한산도...,

그 뱃길은 늘 좋지만, 난 그 섬의 주민이 아니다.

 

욕지도...,

또 그 풍경을 찾아가기에는 이제 그 풍경마저 지겹다.

 

 

강구안을 지나 미륵도에 들어섰고 삼덕항마저 지나쳐 버렸다.

되는 대로 닥치는 대로 찾은 오늘 서성임의 바다는 미륵도 남단 달아항이었다.

 

 

 

 

달아항

 

 

 

14시쯤 봄의 햇살이 봄의 교향곡처럼 내려앉은 바다,

달아항에 닿았다.

 

덜 북적이면 연대도나 갈까, 싶었지만...,

항에 주차된 대여섯 대의 관광버스들이 보이니 달아항의 봄은 내 편이 아니었다.

 

 

 

 

★★★★★

 

 

 

 

전 업주가 할 때도 괜찮았지만,

바뀐 업주는 전 업주의 모든 것을 능가했다.

 

비록 연대도는 못가는 달아항이었지만,

햇살도 바람도 바다도 횟밥도..., 다 좋았다.

 

그러니 오늘은 됐다! 싶었다.

 

미륵도에 더하여 거제도와 연륙이 된 섬 한 곳을 추가시키 오늘 서성임을 끝내기로 하고,

일주길 남은 선형을 따라 섬을 나가는 길,

신전삼거리에서 문득 좌회전을 했다.

 

 

 

 

 

 

 

15시쯤 미륵도 정중앙 '박경리기념관'으로 왔다.

 

숱하게 미륵도로 왔지만,

어제까지는 젊어서 그랬는지 외면 자체에도 없었던 곳을,

오늘부터는 늙어서 그런지 도로표지판에 붙은 글귀를 스치지 못했다.

 

 

 

 

 

 

 

 

 

 

 

그 이름만으로도...,

 

통영은 이미륵, 윤이상, 김춘수, 박경리의 고향이다.

난 문화예술 이 딴 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관심이 있는 척 함도 어울리지 않는다.

 

토지,

이를 쓴 작가보다는 서희를 연기한 최지수의 지금 근황이 궁금하다.

 

 

 

 

 

 

 

 

 

그래도...,

 

소시적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작가께서 쓰신 '김약국의 딸들'과 '파시'는 정독을 했다.

 

허나 작가의 대표작 '토지'는 읽기만 하면 잠이 와 끝내는 덮고 또 덮었다.

 

 

 

 

작가께서 바라본 고향바다

 

 

 

방문객들 중 노신사분들이 꽤나 보였다.

국어교사였나..., 그리 보이는 그 격은 기념관과 너무도 잘 어울렸다.

 

 

기념관을 나오는데,

엄마와 함께 작가의 고향 미륵도 봄볕속에 있음이 참 좋았다.

 

 

 

 

구.거제대교

 

 

 

어쩌다보니 오늘 주제가 봄바다에서 작가와 섬이 되었다.

 

그렇다면,

16시쯤 견내량 건넜다.

 

 

 

 

 

 

 

16시20분쯤,

견내량을 건너 거제시 둔면면 방하마을로 왔다.

 

숱하게 거제도로 왔지만,

어제까지는 젊어서 그랬는지 외면 자체에도 없었던 곳을,

오늘부터는 늙어서 그런지 도로표지판에 붙은 글귀를 스치지 못해서가 아니라,

허구한날 공정이라 외치지만, 외치는 지들은 절대 공정하지 않은 자들에게 공정을 보이고자!

 

통영에서 박경리를 만났다면,

거제에서는 유치환을 만나야 그게 공정이다.

 

 

 

 

 

 

 

 

통영고등학교 교가는...,

 

 

 

김남조 시인의 겨울바다와,

유치환 시인의 깃발도 외웠지만,

세월은 언제부터인가 손수건까지만을 기억에 남기고 나머지 시구는 모조리 지워버렸다.

 

기억이 지워졌다고 아쉬워 할 이유는 없다.

기억이 지워진 빈공간을 다시 찾았으니 말이다.

 

빈공간이었을 때,

그 때가 인생사 가장 순백의 시절이었다. 

 

 

 

 

 

 

 

 

기념관을 나오니 생뚱맞게도 그 앞에 남파랑길표지판이 서 있다.

 

나는 이제 그어진 길과는 멀어진 사람이다.

내 발길 가는 곳이 길이고, 내 발길 머무는 곳이 정처임을 안다.

 

 

 

 

주말마다 건너고 다니는 교량

 

 

 

겨울, 참 좋았는데...,

간사해지지 않으려 아직 도다리쑥국도 안먹고 있는데...,

화사한 봄볕에 마음을 조금 주니 시린 겨울이 토라져 가버렸다.

 

겨울은 겨울이라서 살았고,

봄은 봄이라서 산다.

 

 

 

 

 

 

 

국수 할매집에 가고 있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졸다 일어난 엄마가 창밖을 보며 그렇게 물었다.

 

당연히 가고 있지!

 

 

해를 따라 서쪽으로 간 날이면 돌아오는 길에서는 이제 무조건 국수집을 들린다.

오천 원짜리 그 한 그릇에 엄마는 늘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