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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이 될 길의 기록

그 섬에 내가 있었네 - 2021 설날 제주도 여행기 본문

일박이일 - 짐싸여행기

그 섬에 내가 있었네 - 2021 설날 제주도 여행기

경기병 2021. 2. 16. 17:52

지난해 나는 제주도 해안지선을 잇기 위해 여덟번 제주를 오갔다.

걷다가 풍광이 좋은 바다가 보이면 집에서 무료하게 있을 엄마 생각이 났고...,

그러면 마음이 짠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혼자만의 제주행을 숨기고자,

엄마에게 사다주고 싶었던 귤과 떡은 외면을 하고 면세담배만을 주구장창 사다날랐다.

 

 

지랄 같은 비행기 탑승절차와 공항내 이동이 불가피한 제주행은,

무릅이 아파 50m이상을 한 번에 못 걷는 엄마에게는 이제 감당이 안될 여정임을 알기에...,

그 제안마저도 언급을 못 했다.

 

 

하지만, 나는 나인줄 몰랐을뿐이다.

그러니, 나는 나이기에 노모와의 제주행 따위는 충분히 감당됨을 알았다.

 

 

 

그 섬에 내가 있었네 - 2021 설날 제주도 여행기 (2021.2.10~12) 

마라도 살레덕선착장으로 다가오는 블루레이3호

 

 

2021년 설연휴는 내일부터이다.

이는 곧 혼잡함의 시작이기에 10일 조기 퇴근과 동시에 불이나케 공항으로 갔다.

 

대대로 물려지는 가산을 당신의 대에서 소멸시킨 조상과 그 조상을 그렇게 키운 조상의 차례는 올 설에도 생략이다.

대신에 그 조상들로 인해 생고생을 한 내 엄마에게 동중국해 그 망망대해를 보여준다.

 

남부해안(서귀포시) 바닷가 집구석에서의 제1박과,

북부해안(제주시) 바닷가 집구석에서의 제2박, 그 외 무계획이 계획이다.

 

 

 

제주올레7코스 법환포구에 자리한 제1일차 숙소

 

 

 

선거철 가덕도에 신공항이 들어선다는 호들갑속 김해공항 식당가는 리모델링 공사로 장사를 하지 않았고,

전염 때문인지 기내에서는 음료조차도 팔지 않아 점심을 거른 엄마의 저혈당이 걱정되었지만...,

 

너거끼리 갔다온나, 제주행에 손사래를 치든 엄마는,

걱정과는 달리 2021년2월10일16시, 무난히 제주공항에 내렸다.

 

맛집이고 나발이고 공항내 식당에서 미역국으로 제주도 첫 끼를 떼웠다.

그리고 질질 끌려오는 듯 한 엄마의 걸음에 맞춰 셔틀버스주차장으로 이동을 했다.

 

 

제주도에서 나는, 빌빌대며 돌아다니는 렌트카가 가장 꼴불견이었다.

지금 내가 그 꼴불견이 되고자 렌트카의 시동을 켰다.

서귀포로 간다.

 

즐겨라!

제주도를!!

 

 

 

다음날 아침 숙소에서 본 범섬

 

섶섬과 문섬

 

 

국제수로기구에서는 한반도를 감싼 수역을 제주도를 기준으로,

북서쪽은 황해, 북동쪽은 동해(일본해), 그리고 제주도 남쪽을 동중국해로 본다.

 

바닷길을 걷기 위해 간 도시들에서 서귀포가 제일로 좋았다.

2020년9월27일 제주올레7코스 서귀포여고에서 해안으로 내려오니 '그토록 찾아 헤메였던 바다'를 만난듯 했다.

 

 

 

2020년9월27일 제주올레7코스에서 마주한 범섬

 

2020년9월27일 제주올레7코스에서 마주한 섶섬과 문섬

 

 

그날 법환포구를 지나면서 '여기다!'한 곳이 있었다.

 

 

 

 

 

 

 

그날 그 곳이, 오늘 이 곳이 되었다.

자고 있는 엄마와 동중국해를 번갈아 보는 내가 되었다.

 

 

한 명에게는 별로고,

한 명에게는 먹을만 하고,

한 명에게는 맛이고 나발인 보말죽을 먹으며 2일차 여정에 대하여 셋이 회의를 했다.

 

"내가 미스때 마슬포에서 해운국 배를 타고 어떤 섬에 가니,

 섬 사람들이 달걀을 들고 와 기름과 바꿔가더라..., 아-들은 소똥인지 말똥인지를 불땔라고 줍고...,"

 

엄마의 갑작스런 말에 둘 다 숟가락질을 멈추고 엄마를 보았다.

 

"내가 너거들한테 별 말을 다 한다, 안할라했는데...,"

 

띵하다.

내일 제삿밥을 못 얻어 먹는 아버지는 내 알기로 그 시절에 해운국이란 정부기관에 적을 둔 적이 결코 없다.

마슬포는 모슬포일거고, 모슬포에서 배를 타고 가는 섬은 가파도와 마라도뿐이다.

왠지 마라도 같았다.

 

육십년전에 제주도도 아닌 마라도를??

제주사람도 아닌 부산사람 엄마가??

추궁 대신 실토를 바라며 일단은 그 곳으로 추정이 되는 마라도를 2일차 주요탐방지로 정했다.

 

 

 

마슬포(모슬포) 운진항

 

 

'서귀포를아시나요'를 엄마랑 중창으로 흥얼대며 12시 운진항에 도착을 했다.

내 생은 모슬포에 다섯번을 오게 되었다.

 

 

 

엄마가 육십여년만에 조우한 섬

 

 

운진항 출발 30여분 뒤,

 

내게 약간의 배신감을 안긴 엄마는 60여년만에 그 섬으로 왔고,

엄마의 과거가 궁금해진 나는 10개월만에 또 마라도에 왔다.

 

 

 

 

 

"여 맞나?"

"모르겠다!"

 

현장검증에서 더 이상의 실토는 없었다.

 

 

 

 

 

 

 

살레덕선착장에서 섬의 취락지역까지 제법 힘에 붙혔는지,

엄마가 첫 번째 나타난 짜장면집 야외테이블에 주문은 생략한 채 앉는다.

 

"어머니 마라도 좋쑤깡?"

주인 아주머니가 건넨 인사는 추궁의 끈덕지가 되었다.

 

"우리 어머니 육십년전에 여기 오셨어요"

그 말에 주인 아주머니의 눈은 우리보다 더 반짝였다.

 

육십년전 엄마의 마라도...,

본 섬으로 나간 88세 시어머니의 부재를 대신한 아주머니의 남편은,

그 당시 등대에 기름을 공급하는 행정선이 오면 섬에서 필요한 기름을 얻기 위해 그러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엄마는 내 엄마이지, 내 여자는 아니다.

엄마의 추억은 엄마의 추억이다.

 

 

내가 할 일은 짜장면 주문이다.

엄마 때문에 내게는 마라도 톳막걸리가 무상으로 제공되었다.

 

 

 

 

 

팔순을 넘긴 엄마는 차도선 탑승방식이 아닌 여객선 탑승방식으로 마라도에 왔다.

팔순을 넘긴 엄마와 마라도에서 짜장면을 먹는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자리덕선착장 해식동굴

 

마라도 최북단

 

마라도등대 가는 길

 

 

내가 제주도에 오면 하늘은 늘 회색이다.

어제도 그러했고, 오늘도 그렇고, 내일도 그러할것이다.

 

춥지는 않았지만, 흐린 하늘밑 오소소한 바람은 쉼 없이 불어왔다.

섬을 나가는 여객선을 기다리며 피풍의 벽에 기대어 있는 엄마를 본다.

육십갑자를 돌리고서야 조우한 섬과 엄마는 이제 작별을 고하고 있었다.

 

그 표정을 보며 난 배시시 웃었다.

작별 같은 소리하고 있네~ 내가 있어 엄마는 또 이 섬에 올 것이다!!

 

 

제주도 남쪽 바다는 분명 우리바다이지만, 동중국해로 지칭된다.

동중국해는 내가 엄마에게 보여준 바다가 아니라 엄마가 내게 보여준 바다가 되었다.

 

 

 

 

 

15시 마라도 현장검증을 마치고 모슬포로 돌아왔다.

 

이제 제주시로 간다.

동문시장에 잠시 들러 대목장을 보고 2일차 숙소가 있는 어영으로~

 

 

 

 

 

뇌가 있는 동물에게는 회귀의 본능이 있다.

 

2018년9월7일 나는 다음날 추자도 탐방을 위해,

이번 제주여행의 제2일차 숙소로 그 날 내가 묵었던 숙소를 예약했고,

몸 눕힐 시간이 필요한 엄마와의 동행이기에 애월이고 나발이고는 패쓰를 하고 조금 이른 시간 숙소에 들었다.

 

 

 

숙소앞 제주올레 17코스

 

2021년2월12일 아침에 본 제주도 북부해안

 

2018년9월7일 밤에 본 제주도 북부해안

 

 

객실은 4층이었고 승강기는 없었다.

엄마 ㅋㅋㅋ

 

뭐 이딴 곳을 구했노...,

조금의 원성을 들었고, 오르내리기 힘들다며 저녁 외식은 단언에 거절을 당했다.

 

이불을 펴고 실신을 한 혹들을 두고, 저녁때꺼리를 구하러 숙소를 나왔다.

 

조금 전 동문시장에서 구입한 때꺼리는 내일 설날 아침꺼리다.

그걸 오늘 저녁에 먹어치운다면, 일어난 아침 나만을 쳐다 볼 그 처량한 눈망울들과 마주해야 한다.

 

 

 

 

 

간만에 아주 간만에 제주해안길을 걷는다.

대형마트가 나올때까지...,

 

전화가 왔다.

즉석밥은 못 먹겠고 쌀을 사오라고 한다.

너무 멀리 갔고, 쌀까지 든 종량제봉투가 무거워 돌아오는 길에서는 택시를 탔다.

제주까지 와 참 별지랄을 다하는구나! 싶었다.

 

 

뭍에서는 결코 구하기가 쉽지 않은 참조기가 엄마의 설날 아침을 흐뭇하게 했다.

 

 

 

성산일출봉

 

제3일차는 차를 싣고도 입도가 되는 섬 우도다.

 

우도를 탐방하고, 성산포에서 점심을 먹고, 월정리해변을 지나 공항으로 갈 것이다.

그리고 19시 비행기로 제주를 떠난다.

 

 

 

 

 

제주도 동부해역에 위치한 우도는 아리랑길 17의 섬 길이었고,

나는 우도등대가 위치한 쇠머리오름이 포함된 섬의 둘레길 13km를 2018년9월22일에 일주를 했다.

 

 

 

천진항

 

득생곶등대 (망루등대)

 

 

 

풍경은 찾는이를 차별하지 않아도, 찾는이는 풍경의 눈치를 본다.

우도는 청춘이 만든 풍경이다.

 

청춘이 만든 풍경속,

그들이 그렇지 않다라 해도, 그 풍경에 어울리지 않음을 안다.  

 

 

 

 

 

비양도에서 본 성산포

 

 

갈 곳이 없어 찾은 섬,

그들에게만 있는 그 것이 사라진 사람의 씁쓸함,

우도는 전 탐방에서도 그러했고, 이번 탐방에서도 그러했다.

 

 

     

 

 

검멀레해안에서 본 쇠머리오름과 우도등대

 

우도 남부해안

 

이제 더는 오지 않는다. 진짜 굳바이~ 우도!

 

 

14시쯤 성산포로 돌아왔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사전예고를 하고 찾아간 오분자기 맛집은 장사를 하지 않았다.

득분에 더 맛난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그러고나니 끝이었다.

 

 

 

제주도 떠남의 의식

 

 

김해공항에 내려 집으로 오는 길, 룸밀러에서 자불고 있는 엄마를 본다.

엄마가 있는 내 삶이 너무도 좋더라~

 

엄마가 눈을 떶다.

눈이 마주쳐 머쓱해져 "제주도 또 언제 가꼬?" 하니, "마로 또 가! 갈라면 강화도나 한 번 가보자!" 이란다.

 

강화도??

아놔~ 거는 100km/hr로 근5시간을 달려야 하는데..., 밤의 색이 노란색으로 바뀌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