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남해안트레킹 (24)
회상이 될 길의 기록
오줌이 커피색이었고 눈알은 살구색이었다. 뭔가 꽉 막힌 쓰라림을 안고 부랴부랴 병원으로 갔다. 일단 피검사, 소변검사, 엑스레이를 찍어보고 상태가 안좋으면 시티를 찍어야하고, 그 결과에 따라 당장 개복을 해 수술을 할 수도, 아니면 소견서를 들고 큰병원에 가야 합니다. 의사의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다. 결국 검사 자료와 소견서를 들고 대학병원까지 갔다. 다음날, 기절상태에서 속으로 들어 간 호스를 통해 담도에 쌓인 돌들을 꺼집어 내었다. 그 다음날도, 반기절상태에서 한번 더 속에 호스를 넣어 생난리를 떨었고, 염증을 우려한 병원의 제재를 거부한 채,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도 담도로 가는 장기에 큰 돌 하나가 있긴하지만, 살만했다. 외과적수술로 제거를 할지? 약물로 녹일지? 그것은 주치..
해를 따라 서족으로 간다. 불멸의 삼도수군통제사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1545~1598)장군계서 살다가신 그 바닷길을 잇는다. 사천해전 (1592.07.09) 거북선을 처음으로 투입한 해전이다. 23척의 전선을 이끌고 노량으로 향하던 중 하동선착장에서 원균이 이끌고 온 3척과 합세하여, 사천으로 향하는 적 전선 1척을 그 자리에서 격파하고, 사천선착장에 일본군이 있다는 소식에 곧장 사천으로 향했다. 일본군은 12척의 전선을 정박해 놓고 산 위에 올라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장군은 간조로 인해 배의 활동이 자유롭지 못 함을 인지하고 퇴각의 태세로 적을 외해로 유인했다. 일본군 200여 명이 내려와 반은 배를 지키고 반은 언덕 아래에서 포와 총을 쏘았다. 조선 수군은 조수가 밀물로 바뀔 때 거북선을 앞세..
해를 따라 서쪽으로 간다. 불멸의 삼도수군통제사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1545~1598)장군께서 살다가신 그 바닷길을 잇는다. 이순신길 10-1 고성만에서 자란만 (2018.06.02) 연신 전화벨이 울렸고, 울릴 때 마다 부장인 oo형님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겨우 조퇴를 득하고 회사를 나오니, 미친년놈들 다섯이 덜떨어진 각그랜져에 앉아 있었다. 미친년,놈들 여섯이 평일날 의기투합을 해 상족암으로 갔다. 1996년? 봄인지? 가을인지? 그 때는 쌍발이라 했고, 그렇게 유명세도 없었다. 술은 떡이 되어 갔고, 삼천포시내까지 진출을 해 뒤풀이까지 거나하게 하고..., 어떻게 돌아 왔는지 모르겠다. 떡실신 전, 그렇게 받지 말라고 부탁을 했는데,, 내 모토로라를 멍청한 색히가 제것인냥 개폼 잡는다고 오는 전..
델타y 나누기 델타x의 값을 -tan 계산하고, y,x 부호에 따라 정해진 상환에 방위선을 긋어 방위각을 구한다. 구해진 각과 거리를 기기에 입력 해, 흙먼지 날리는 필드에 표식을 한다. 마산에서 통영으로 가는 길, 14번국도의 확,포장현장에서 눈만 뜨면 측량을 했다. 그 때는, 뇌와 눈알이 아주 괴로웠다. 세월은 더럽게도 빨리 흘렀다 클로소이드곡선이어서 더 뇌와 눈알이 괴로웠던 그 길을 「이순신트레일」 제09트랙으로 설정 해 걷는다. 이 때는, 배낭의 무게에 발바닥이 아주 괴로웠다. 당포해전 (1592.07.10) 사천해전 승전후 사량도에서 휴식을 취하며 적의 동태를 파악하던 중, 일본군이 당포(미륵도 서북부해안)에 정박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곧장 출전을 하였다. 일본군 300여 명이 성을 노략질..
5월 연휴에 가족들과의 여행 계획이 잡혔다. 때문에 남해안길종주대 12회차에는 참석을 못 하게 되었다. 수요일 저녁, 동래역부근에 술을 마시는데 코드1으로부터 톡을 받았다. 이번주에 먼저 이어 놓으면 어떻겠냐고? 내 길 이음을 챙겨주심에 대한 보답은 "그러겠습니다!"였다. 남해바닷길을 시작하고서 처음으로 홀로 걷게 되었다. 이순신길 08 - 강구안에서 통영운하 (2018.04.29) 07시10분에 통영으로 가는 첫차를 타려 했지만, 내가 누구인가? 집을 나와 동부터미널을 향해 신나게 달리는데 뭔가 떨쳐놓고 나온 기분이다. 폰이 없었다. 08시 버스를 탈 수밖에 없었다. 통영터미널에 내리니 10시20분, 출발지점인 강구안에 도착을 하니 10시40분이었다. 걸어야 할 거리는 51km, 1시간에 5km를 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