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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이 될 길의 기록

이순신길 23 - 해남반도(1) 본문

이순신길 - 남해바닷길

이순신길 23 - 해남반도(1)

경기병 2019. 5. 14. 14:40

"경기병, 우리 완도타워에서 기다리고 있을께...,"

 

누가 누굴 기다려?? 하면서,

택시를 잡아 타고 동망봉 완도타워으로 가, 완도항을 내려다보니,

 

저런~ 저런~~ 

입에 도그버블을 뿜은 한무리 중년들의 동망봉을 향한 고지전이 한창이었다.

 

 

 

 

 

남해안길종주대의 마지막회차이다.

 

이순신트레일은 해남반도를 돌아 명량을 건너 진도의 세포로 가야 끝이나는 길이지만,

해미누나가 이끄는 남해안길종주대는 오늘 완도의 서부해안을 돌아 해남반도의 최남단 땅끝에 도착을 하면,

그 길 전부가 끝이 난다.   

 

끝은 나지만...,

또 다시 시작될 그들의 서해안길에서 조우가 되기에 개길까? 하다가...,

길의 의리를 지키고자, 2019년5월4일04시40분에 차를 몰아 한반도 E극에서 W극으로 향했다.

 

 

 

[남은 아순신트레일]

 

 

 

 아리랑길 032 - 완도2 (2019.05.04) 

구계등해안에서 바다를 보고 선 아기

 

 

 

이순신트레일 34회차는,

주머니에 7만3천원이 있는 상태에서 완도타워를 시점으로 출발을 해,

 

제 1일차,

남부해안 구계등해변 매점에서,

한 캔에 삼천원을 쳐 받는 캔맥주(작은거) 열개와 과자 두봉지를 33,000원에 사와 퍼마시고,

서부해안 완도수목원입구 슈퍼에서,

아주 정직한 가격의 병맥주(작은거) 3병을 시원하게 마시고 담배 한갑까지 포함 10,000원을 지불하고,

북부해안 친절한 동원슈펴에서,

피쳐 두 병(큰거)을 싼 다음, 회식후 숙소로 가는 팀원들을 꼬득여 완도대교를 배경으로 원동항 밤바다를 즐겼다.

(술이 떡이 되어 얼마인지는 모르겠고, 다음날 주머니에 14,500원이 남아 있었다)

 

제 2일차,

완도를 빠져 나와 남창교를 시점으로 해,

회차의 종점 땅끝을 향해 걸어 나가며 10원도 쓰지 않았는데,

종제사를 지낸다며 사람을 땅끝탑으로 끌고 가 제삿상에 놓아야 한다면 태양형님이 만원을 가져 갔고,

터미널에서 담배 한갑을 사고나니 돈이 10원도 남지 않았다.

 

돈이 없어 레인저형님의 배낭에서 꺼낸 물만을 마시며, 4시간을 운전을 해 집으로 돌아왔다.

 

 

 

[이순신트레일 34회차-시점 (전남 완도군 완도읍 군내리)]

 

 

남해안길은,

2017년 11월 04일 07시,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 승두말을 출발하여,

2019년 05월 05일 14시,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땅끝탑에 도착하는,

2주 간격 1년6개월간 진행된 남해안 리아스식 해안지선을 상대로 한 2,100km 걸음의 대장정이었다

완보자는 해미누나와 레인저형님 두 분이었고, 한 회차를 누락한 서나대원이 그 뒤를 이었다.

 

길의 끝은 달리했지만,

나 역시도 남해안길종주대의 일원으로 이 길을 걸었고, 누적거리는 서나대원 다음을 기록했다.

 

 

 

 

 

 

 

 

 

 

 

 

 

꽃도 지고, 걸을 길도 내일이면 진다.


더는 걸을 길이 없어진다는 것! 

이별을 말함이다.

 

바닷길이야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만, 같이 걸었던 그 순간들은 이제 회상으로만 남게 된다.

 

 

 

 

 

 

 

 

돌산도 갯가길을 걸은 날 저녁, 

길에 지쳐 힘들어하는 해미누나를 보았다.

 

고흥반도 남부해안을 걸은 날의 끝무렵,

깻다리형님의 걸음이 언제부터인가 엇박자임을 보았다.

 

체력 보다는 의지로 이어 온 길, 남해안길 2,100km는 절대 명제이고 그 길은 그들의 삶의 일부였다. 

 

 

 

[부꾸지 가는 길]

 

 

 

 

 

 

구계등해변

 

 

완도에도 이런 해변이??

바다가 더 바다스럽게 보일려면, 하늘이 그에 상응하는 색으로 변색을 해 줘야한다.

 

 

완도의 서부해안에도 국립공원이??

지형이 가진 아름다움에 국립공원이란 수식어가 붙었다면, 아름답지 않아도 아름답다고 해 줘야한다. 

 

 

 

 

 

법률로 정해진 규제가 가장 많은 나라는 아마도 대한민국이 아닐까? 싶다.

 

정권마다 초창기에는 규제를 없앤다고 생나발을 쳐불지만,

복수의 법률들과 얽혀진 규제를 풀기가 그리 만만한 공약이 아님을 당선이 쳐되고나서야 인지를 한다.

뭐 푼다고? 풀다가 뇌에 쥐나 나지마라!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이 국립공원으로 지정이 되었다면, 이는 온갖 규제에 포박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때문에 아름답지 않아도, 아름답다고 말인따나 해 줘야한다.

 

 

 

 

 

 

 

길가에 점방이 없다는 것은, 닥치고 전진이다.

길가에 점방이 있다는 것은, 쉬다가 가자이다.

 

완도의 서부해안을 따라 걷는 1일차 길에는 심심찮게 가게들이 있었고, 

이는 분명 호사였지만 역으로는 진척의 지장을 초래하는 원인이기도 했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석장마을쯤을 지나는 길에 점방이 있었고, 참새 방앗간은 나였지만 그냥 지나쳤는데 온나는 외침이 가리늦까 들린다.

 

그리고서 또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구계등해변에 도착을 하니, 머물지 않을 수 없는 나무밑 데크가 바닷가에 떡하니 있다.

 

그 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완도방조제]

 

 

 

 

 

 

데파진 지구 북반부의 오월은 여름이다.

 

이마를 타고 흘러 내리는 땀이 눈으로 쉼 없이 들어온다.

눈을 못뜨겠디 시발~

 

채석장의 비산먼지가 얼굴에 묻어 땀을 딱으니 각질필링이 된다.

이런 고마운 경우를 봤나~ 시발~

 

 

 

 

 

 

 

 

 

남해안길은 이제 없어지는데, 매 회차 뉴페이스들의 출현이 계속되고 있다.

 

그들에게 말미의 길 몇토막은 당췌 무슨 의미일까?

걷는데 이골이 난 종주대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모습에 마음이 짠하다. 

 

 

 

[당인하리 방파제]

 

 

 

 

 

 

조금식 길이 지루해진다.

 

완도는 동부해안이 더 좋았어~ 그렇게 치부를 하며...,

빨리 오늘의 종착지 원동항이 보이기를 갈망하며 닥치고 닥치며 걷는다.

 

 

 

 

 

[완도대교와 원동항 수변데크]

 

 

17시 정각, 28.2km를 걸어 그 옛날의 번성함이 지금의 한산함으로 산화된 원동항에 도착을 했다.

 

 

 

 

 

 

 

 

새로 나온 맥주 '테라를 완도의 원동항에서 맛 볼 줄이야~ 이것이 광어다!

또 신나게 말아 마셨고, 결국엔 씻지도 못하고 꽤꼬라졌다.

 

 

 

해를 따라 서쪽으로 간다.

불멸의 삼도수군통제사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1545~1598)께서 살다가신 그 바닷길을 잇는다.

 

 

 이순신길 23 - 남창교에서 땅끝탑 (2019.05.05) 

서홍리해안을 잇는 봄여름가을겨울산악회-남해안길종주대 해미대장님

 

 

제 2일차,

 

대열은 13번국도와 77번국도가 갈리는 남창교차로를 시점으로 출발을 했지만,

나는 지난 회차 트랙의 연장선상인 남창교에서 출발을 했다.

 

 

 

[2일차 시점 남창교 (해남군 북평면)]   

 

 

 

 

 

 

걷기를 시작함보다 해가 먼저 튀어나왔다.

하지만 일어나니 해는 자고 있었다.

 

 

 

 

 

 

저런 저런...,

앞서 걷는 일행의 몇몇이 바로 갈 수 있는 길을 외면하고, 또 해안으로 둘러가는 길로 접어 든다.

 

에랏이~ 혼자 걸었다면 쳐다도 안보았을 길을...,

 

짜를라 하다가..., 할 수 없이 나도 그 길로 접어 들었다.

나는 부실하고, 지들은 알차지는 꼴을 만들지 않기 위해...,

 

 

 

 

 

 

 

이진마을 안길로 들어서니, 남도 이순신길 - 조선수군 재건로 안내판이 보였다.

더불어 땅끝에서 서울로 가는 삼남길의 시그널 또한 담벼락 곳곳에 부착이 되어있다.

 

지금 걷고 있는 길이,

원균이 칠천량에서 전멸을 시킨 조선수군을 재건하기 위해,

백의종군 후, 목포에서부터 군사를 모아 고금도로 향한 장군의 길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이 곳은 전라우수영의 관할지였다.

 

보이는 역사안내판에 '이억기'란 이름이 한줄이라도 표기가 되었음하고 훓터 보았지만,

그의 이름은 없었다.

 

구국을 위해 조ㅈ빠지게 싸워본들...,

오늘 나머지 길의 걸음은, 그를 위로한다는 심정으로 걸어야겠다.

 

 

 

 

 

 

 

 

 

하도 아름다운 길을 무수히 많이 쳐걸었기에, 이제 그 어떤 바닷길이 나타나고 보여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

 

전라좌수사 장군과 경상우수사 원균의 삼도수군통제사 쟁탈전에서,

같은 직급의 전라우수사였지만, 그저 주어진 본분에 최선을 다한 조선의 제독 이억기!

패전의 바다 칠천량에서 그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서흥리 들녁과 달마산]

 

 

 

 

 

 

 

 

 

 

이진리에서부터, 해안지선만을 따라 서진을 하고 있다.

간조라서 가능했다기 보다는, 쳐걸을 힘이 남아 돌아 가능했지 않나 싶다.

 

 

 

 

 

묵동방파제에서부터 아직 강아지티가 남아 있는 개 두마리가 나타났다.

 

처음엔 그럴려니 했는데...,

이것들이 계속 해 종줏길에 따라 붙었다.

 

 

 

 

 

 

 

 

 

 

 

 

 

 

사람도 개도 지치는 해안지선 6km였다.

 

그 6km를 따라 온 개들을 냉정하게 쫓아 보내야 했다.

내 마음이 개 때문에 아플줄이야ㅜㅜ

 

남전마을 해안길을 지났다.

백일도와 흑일도를 오,가는 훼리호가 취항을 하는 남성항을 경유해,

77번국도만을 따라 이번 회차의 종점 아니, 남해안종줏길의 종점 땅끝에 닿으면 오늘 길 아니, 모든 길은 끝이다.

 

 

 

 

 

[남성항 가는 길]

 

 

[남성항]

 

 

 

 

[77번국도 땅끝으로 가는 길]

 

 

주님도 영접하면서 일하러 나오는..., 그 마음 오죽했으랴!

깻다리형님이 형수님과 함께 서울서부터 몰고 온 승용차로 종주대의 마지막 길을 연이틀 서퍼트를 해 주신다.

 

득분에 사구미해변 직전 고갯마루에 위치한 정자에서, 남해안길종주대 최후의 막걸리타임을 가졌다.

 

그 동안의 길에서, 

그 지역이 빚은 막걸리들을 줄기차게 마셨고,

그 막걸리들 중, 고성군의 하이막걸리와 고흥군의 유자막걸리가 아주 일품이었다.  

 

막걸리 몇사발에 다소 지루했던 기분을 털어내고 다시 해를 따라 서쪽을 향했다.

 

 

 

[갈두산 땅끝전망대와 땅끝마을]

 

 

[사구미해변]

 

 

갈두산의 땅끝은 보였지만,

보이는 곳이 이순신트레일의 종점은 절대 될 수가 없다.

 

장군의 해전은,

땅끝을 돌아 만나는 화원반도의 어란진에서도 있었고,

화원반도와 진도의 사이를 가르는 명량해협에서도 있었고,

진도의 동부해안 벽파진에서도 있었기에, 나는 아직 그 끝이 멀기만 했다.

 

 

 

 

 

[흑일도와 백일도]

 

 

 

 

남해안길종주대의 마지막 회차,

종주대가 속한 산방의 총괄산행대장 태양형님도 동참을 했다.

 

언제부터인가, 종주를 목적으로 한 남해안길에 들락날락하는 이들의 참여가 달갑지만은 않았다.

당일 제시된 루트는 중탈을 하고, 클리어의 자축을 술판으로 변질시키는 사람들이 미워졌다.

 

허나, 태양형님만은 예외였다.

그는 길에 대한 성의가 있는 사람이었다.

 

 

 

 

 

 

 

 

 

 

 

12시, 이제 모퉁이 하나만을 돌면 그만인 지점까지 왔다.

 

처음 참석을 한 햇살님과 파아란님은 다소 지친 표정이었지만,

두 분을 제외한 모두는 들뜬 마음이 얼굴에 묻은 채, 땅끝전망대를 배경으로 훗날의 그리움을 만드는데 정신이 없다.

 

 

 

 

 

 

 

[장하다!]

 

 

 

 

 

 

 

 

2019년 5월 5일 12시 57분,

해남군 북평면 남창교를 출발한지 7시간10분, 26.2km를 걸어, 해남반도의 끝이자 한반도 최남단에 도착을 했다. 

 

근해의 섬들을 오가는 훼리호들이 바다에 그은 굵은 포말선이,

더 이상 나아갈 땅이 없어 서성이는 사람들을 유혹하는 땅끝선착장의 봄 날이 종주대를 맞이했다.

 

 

 

[이순신트레일 34회차-종점 (전남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

 

 

딱 여기까지만이었음 했는데...,

 

서해안길을 시작하던, 이순신길을 이어가던 어차피 가야 할 길임을 알면서도 땅끝탑으로 향한다.

우리가 아니었어도 번잡한 해안산길 500m를 걸어가니 땅끝탑이 나왔다.

 

탑이 위치한 곳으로 내려가지 않은 채, 그 위에서 뭐를 하는지 지켜 보았다.

또 제를 지낸다고 모두의 공간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점유를 한다.

 

탑과 자신만이 나오는 사진을 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미안한 행위이다.

뜻한 바, 목표로 한 바, 다 이뤘기에 고맙고 감사한 그 마음 나도 알지만...,

 

 

 

[땅끝탑]

 

 

시켜서..., 탑에 삼배를 하고,

14시15분 버스로 해남읍에 도착을 하였다.

 

난생 처음 산악회의 종주패를 받았고,

그 패를 제작하여 주신 분이 대한민국 아마츄어 산악인들에게서 존경을 받는 레인저형님이어서 더 값진 기분이었다.

 

 

 

 

 

이순신트레일의 남해안길종주대와 병행 한 마지막 길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 오는 310km, 4시간의 길에서 숱한 생각들로 졸음은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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