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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이 될 길의 기록

몽마르트르는 못가고 - 양마르뜨언덕 본문

미동투어 - 미술동물원

몽마르트르는 못가고 - 양마르뜨언덕

경기병 2023. 4. 21. 10:52

토요일 아침,

일어나니 하늘은 점점 흐려지고 몸은 찌뿌둥해지고 있었다.

 

차라리 비나 좀 내리지, 근데 문제는 하늘이 아니었다.

 

뼈마디는 쑤시고 근육들은 너덜너덜 찢어지는 듯한 간지러움,

점점 오한이 느껴져 쉽사리 이불을 걷어내지 못하는 오소소함,

 

처음엔 이거 루게릭병 아이가..., 했는데,

드디어 나도 중국산 시발바이러스에 걸렸구나..., 싶었다.

 

처박아둔 키트 하나가 있어,

불안한 마음으로 검사를 하니 20분이 지나도록 선은 끝까지 하나였다.

 

단 한 번의 백신접종도 받지 않은 채,

주말마다 한반도 여기저기를 서성였고,

심지어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식구들과 동료들까지 감염이 됐어도,

나만은 절대 중국산 시발바이러스 따위에 농락 당하지 않는 개념을 유지했다.

 

 

뼈마디는 좀 더 쑤셨지만 그로해서 기분은 나아졌고,

주말에 만나는 바다에 의지해 힘겨운 투약시기를 버티는 엄마를 위로함은 내 몫이었다.

 

 

 

 

몽마르트르는 못가고 - 양마르뜨언덕 (2023.4.15)

 

 

 

금방이라도 비가 내리려하는 세상을 서성이고자 12시쯤 집을 나섰다.

 

하늘만 맑았다면,

아니 뼈마디만 쑤시지 않았다면,

생일도 혹은 가리왕산을 가려고 한 오늘 토요일이었는데...,

 

오늘은 또 어디를 서성이다 오노...,

 

 

 

 

 

 

 

도처를 정하지 않고 나선 길에서는,

언제부터인가 무작정 남해고속도로만을 달리게 된다.

 

그러다가 배가 고파지면,

첫 번째 나타나는 나들목을 빠져나와 그 길의 끝에 위치한 포구로 간다.

 

오늘은 진주를 지날때즘 배가 고파졌고,

사천나들목을 빠져나와 그 길의 끝으로 가니 오랫만에 삼천포로 오게 되었다.

 

 

 

 

 

 

 

 

 

지난주부터 엄마는 다시멸을 사야된다고 했다.

엄마는 삼천포가 그리워지면 꼭 다시멸 핑계를 되곤 한다.

 

 

삼천포...,

 

미친놈들이 지도에서 지운 도시...,

어쩌면 여수보다 더 짙은 포구의 낭만을 가진 도시...,

 

 

 

 

삼천포어항

 

 

 

엄마가 비워낸 자리

 

 

15시쯤,

도다리가 꺼지고 갑오징어가 나타난 용궁시장을 나왔다.

 

일 없이 삼천포에 오게 되면,

더 일 없이도 지족해협을 가게 된다.

 

77번 국도 해상교량들을 차례로 건너 지족해협으로 간 다음,

남해도 진주만 해안을 따라 노량으로 가는 바닷길이 오늘 엄마와 서성일 세상이 되었다.

 

 

 

 

 

 

 

삶의 파노라마는 스침의 둘러처짐이고,

그 둘러처짐 속을 오늘 또 서성이고 있음은 순정일테다. 

 

 

 

 

초양대교

 

창선교

 

지족해협

 

 

15시30분쯤 지족해협을 건너 남해도로 들어섰다.

 

그 놈의 순정 때문에 지족항에서 진주만 해안을 따라 노량으로 가는 길,

채 십리도 그 길을 잇지 못하고 고암방파제쯤에서 차를 세웠다.

 

순정 때문에 가는 길이라지만, 풍경마저 외워진 길은 너무도 지겨웠다.

순정을 버려야 새로운 길에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는 차에 앉아 물 빠진 바다를 보고,

나는 물 빠진 바닷가에 서서 폰에 띄운 지도를 보았다.

 

아 좀, 쌈박한 그런 대 좀 없나...,

 

 

 

 

 

 

 

16시쯤,

프랑스 파리 북부 18구에 위치한 언덕이 아니라,

대한민국 경상남도 남해군 삼동면 봉하리 1311-2번지에 위치한 양떼목장으로 왔다.

 

어린 아이들과 풋풋한 청춘들이 서너마리 양들과 놀고 자빠진 언덕세서,

방문 최고령자는 엄마였고 그 다음은 나였다.

 

돈 만원을 내니 풀 한 바케츄와 썬 당근 한 컵을 준다.

그걸 받아들고 목재문을 열고 울타리안 목장으로 들어가니,

태어나 목욕이라고는 한 번도 하지 않은 양들이 개떼처럼 몰려들었다.

 

발로 옆구리를 밀어도 돌아서질 않는다.

할 수 없이 바케츄와 컵을 엄마에게 건넸다.

 

 

 

 

 

 

엄마와 양

 

 

참 갈 곳 없는 오늘이다.

살다살다 뭐 이런대를 다 오노..., 싶었다.

 

비케츄에 든 풀과 커피컵에 든 당근 모두들 양들에게 나눠주고,

입장 3분여만에 목장을 나왔다.

 

 

 

 

독일마을 - 1

 

독일마을 - 2

 

 

고개 하나를 올라 인근의 독일마을로 갔지만,

이번엔 운집한 사람떼에 치여 곧장 물건마을로 내려오고 말았다.

 

오늘은 이 쯤에서 집으로 돌아감이 상책이었다.

 

 

 

 

 

 

 

대동에서 국수 한 그릇을 먹고 집으로 오니 19시가 조금 지나고 있었다.

 

뼈마디는 탈골을 하는지, 더 쑤셨지만,

아프면 안되는 시절이라 아무에게도 말을 못하고,

안 아픈척 넘어가지도 않는 소맥 두 잔을 마시고 그대로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