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고을탐방 - 한국유랑길 (23)
회상이 될 길의 기록
언제부터인가 늙어짐을 익어짐이라고 들 했다. 익어간다는 것은 다됐음을 암시하고, 익어버리면 끝임을 망각한 그 철 없는 은유에 터진 홍시의 처참한 형상만이 떠올랐다. 일어난 일요일 오전, 시계를 보니 11시가 넘었고, 엄마는 이불을 덮고 새록새록 잠이 들어 있었다. 방바닥이 뜨거워 그런지, 요를 깔고 자고 있는 엄마를 보니 한참 익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안 돼! 엄마를 깨워 당장에 집구석을 박차고 나섰다. 겨울산 - 황매산군립공원 (2022.12.11) 12시30분쯤, 더 이상 늙으면 안되는 엄마를 데리고 세월이 보란듯이 집을 나섰지만 막상 갈 곳이 없다. 오늘은 또 어디를 서성이다 해가 지기를 기다리노..., 인생사 일요일 오후의 주제는 언제나 하늘보다 더 공활한 넓이에서 찾아야 한다. 오늘 역시도 해..
살아가는 날들이 짙어지길 바라며 산다. 무엇인가에 물들어 짙어지기보다는 스스로 짙어지고 싶다. 짙어지고 싶어 11시30분쯤, 여든둘 노모를 데리고 정처 없는 길로 나섰다. 그렇게도 살았다 - 탄광문화촌 & 아우라지 (2022.11.12) 비가 온다는 주말이다. 비가 내릴때도 됐다 싶었지만, 못내 아쉬운 하늘이다. 목포로 가 다이아몬드제도 남각으로 떠나는 뱃길에 태워지고 싶었지만, 오후부터 내릴거란 비 때문에 그 바다 그 뱃길 그 섬을 다음으로 미루고 경부고속도로에 차를 올렸다. 정선으로 갈 것이다. 제천에서 38번 국도를 타고 정선으로 들어가고, 정선에서 42번 국도를 타고 동해시로 빠져나와, 동해에서 7번 국도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경유값 일십만 원치 여정이다. 엄마는 세상을 서성이다 짙어지고 픈 미..
내편 니편 갈라져, 내편을 잡아 넣을려는 니편을 향해 촛불이 밝혀진 지난 밤, 나는 또 싸울려는 커플의 남자와 술을 마셨다. 심심해서 한동안 싸우질 않는 그들에게 '제발 좀 싸워라!'고 그랬는데, 두 달여 냉전의 심로를 겪은 그들이 또 싸우기 일보 직전의 전야를 만들고 있었다. '안오면 직인다'는 남자의 전언을 토시 하나 틀리지 않게 톡으로 써 여자에게 보냈다. 싸우는 모두를 응원한다. 삶이 심심해 죽겠는데 주위에서 싸워주니 이 얼마나 흥미스런 일인가! 보수와 진보의 치열한 까발리기, 그 남자 그 여자의 이루지 못할 사랑의 열전, 서울도 싸우고 부산도 싸운 밤이 지나고 맞이한 일요일 아침, 하늘을 보니 가을이 곧 떠날 듯 싶었다. 천령의 가을 - 지리산 오도재 (2022.10.23) 간다는 가을이 머물고..
그 어떤 관여도 받지 않은 채, 내 가고자 한 길을 따라 홀로 이어간 동해안 해파랑길, 장기곶을 둘러나오면서부터 닿는 항과 포구들은 그 길을 이어갈 이유로 충분했다. 강구, 축산, 후포, 죽변, 묵호, 주문진, 물치, 외옹치, 아야진, 간성, 대진..., 울진읍 연호공원에서 고개 하나를 넘어서니 다시 바닷길이 시작되었고, 그 길의 저 끝, 곶의 지형에 아련한 등대 하나가 서 있었다. 죽변곶 죽변항이었다. 길은 끝이 났지만, 그 길이 그리워지면 엄마를 데리고 그 항과 그 포구들로 가, 일 없이 서성이다 돌아오곤 했다. 죽변항 역시도..., 죽변곶 해안을 감싸고 모노레일이 놓여졌다고 했다. 통영에서 돌아온 날 오전, 엄마를 데리고 불이나케 죽변으로 갔다. 항의 허름한 식당에서 장치조림에 밥 한 그릇 먹고, ..
시월 두 번째 연휴의 첫 날, 금일도 혹은 생일도를 가고자 11시쯤 집을 나섰지만,100km/hr을 유지해야 할 속도는 가다서다를 반복하다 겨우 닿은 진주서부터 또 정체다. 아무리 그 맛이 진미라도 줄을 서야 한다면 그 맛은 후일로 미루는게 맞다.아무리 그 곳이 가고 싶어도 줄을 서면서까지 갈 이유는 없다. 덜덜 떨면서도 겻불을 쬐지 않는 그런 멍청한 아집은 없지만,난 기다리고 밀리고 하는 그런 정체된 순간속에 있는 게 살면서 제일 싫다. 일 없이 가는 길, 일 있어 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내어주고 곧장 진주로 들어섰다. 황진 장군이 없다 - 진주성 (2022.10.8) 뒤벼리를 지나는데, 남강에 난리가 나있었다.그러고보니 시월이었고, 시월엔 서울시에서도 탐을 낸 남강유등축제가 열리는 달이다.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