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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이 될 길의 기록

이순신길 27 - 가막만 본문

이순신길 - 남해바닷길

이순신길 27 - 가막만

경기병 2020. 10. 12. 15:52

해를 따라 서쪽으로 오백리쯤 가다가,

해가 잠시 머물고 있는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백리쯤 가면,

그저 그런 일상의 날들이 특별한 하루로 다가오는 도시에 닿는다.

 

삼도수군통제영의 통영이, 내 것을 아무도 모르게 숨겨 놓은 다락방 같은 도시라면,

전라좌수영의 여수는, 남이 숨겨 둔 무엇인가를 뒤지고 싶어지는 뒷방 같은 도시이다. 

 

올해 뒷방에 한 다섯 번은 들락날락였다.

하지만, 아직도 뒤지지 못한 무엇인가? 남아 있어 오늘 또 뒷방의 도시로 간다.

 

 

 

 

나는 빈약한 의지를 장착한 게으름뱅이다.

그런 나인데..., 간혹 어떤 일에는 100%를 추구하고자 하는 의욕에 사람 미치겠다.

 

 

 

이래 만들어놔야 그 곳을 잊는다.

 

 

잇지 못 한 선을 잇고자, 3일 연휴의 첫 날 06시 집을 나섰다.

 

떠나기 전 날이면 지독하게도 잠이 오지 않는 불치병은 여전했고, 잠이 들라하면 알람은 울린다.

이틀전부터 미친듯 처불기 시작한 바람은, 이른 아침 떠나는 발길을 주춤이게 했다.

 

 

성웅 이순신

불멸의 삼도수군통제사 충무공께서 살다가신 그 바닷길을 따라 간다.

 

 

 이순신길 27 - 가막만 (2020.10.09)  

고돌산반도 가막만-소호해안

 

 

2018년12월29일 웅천친수공원에서 끝을 낸 트랙과,

2020년04월26일 백야도를 나오며 시작을 한 트랙의 독킹을 도모하고자 한다.

 

남해안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반도(半島)는 고돌산이고, 세 번째 좋아하는 만(灣)은 가막만이다.

그래서 이 설레이는 조합의 길은 애써 남겨 뒀는데...,

오늘 걷기로 했다.

 

09시50분 웅천친수공원에 도착을 했고,

한 대 처물고 바다로 나가니 그리웠던 여수바다가 눈물처럼 반짝였다.

 

 

 

 

 

역시 생은 한 번이라서 아름답다.

그 생에 간절함 따위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10시05분, 트랙 기록을 안켜고 전진을 하다가 100m를 처돌아와 다시 출발을 했다.

 

 

 

2020년 10월의 웅천친수공원

 

 

회상이 될 길에서, 회상이 된 기억을 본다.

 

2013년 가을,

나는 이 곳에서 야영을 했고 그 때의 여수는 세월따라 가 버리고 없었다. 

 

 

 

2013년 10월의 웅천친수공간

 

그 때의 베이스캠프

 

그 때의 나

 

 

흐르는 것은 세월과 강물이다.

강물처럼 흘러 세월따라 다시 그 바다에 왔다.

 

 

 

근데, 나는 왜 늙지가 않는가?? 더 젊어져 왔다!!

 

 

세월은 흐르고...,

걷다가 만나는 세월은 언젠가는 첫 사랑도 만나게 해 줄지? 누가 알겠노~

 

가막만이 끝나는 고돌산반도 끝으로 가는 길이 아득하다.

이제 닥치고 가자!

 

 

 

장도

 

선소유적지 가는 고갯길

 

 

 

웅천과 소호를 연결하는 해상교량의 가설공사가 가막만에 한창이다.

그 교명은 이미 정해져 있겠지만, 내 바램으로는 가막만대교였음 좋겠더라~

 

 

 

가설중인 소호대교와 오늘 걸어야 할 고돌산반도 서부해안

 

 

교량이 완공되면, 이순신트레일 남해안 해상교량시리즈 등재를 위해 또 한번 이 곳에 와야한다.

 

오늘이 아니고 만약 그 때에 왔다면 길의 단축을 추구하는 나는 비록 이순신길이지만,

장군께서 전함을 만들었던 이 곳을 거치지 않고 바로 소호로 넘어 갔을 것이다.

뻔하다.

 

 

 

 

 

해미누나를 만나게 되면서 시작을 한 이순신길은,

도자기를 빚지 못 하고, 그림을 못 그리는 내 생이 발품을 팔아 만든 명작 중 하나이다. 

 

함께한 이들 중 해미누나와 레인저형님만이 남해안 해안지선 모두를 다 이었다.

나도 그 끝으로는 갔지만, 끝에 닿았다고 끝이 나는건 절대 아니었다.

아직도 잇지 못한 선이 있어 사람 죽겠다.

 

나의 명작을 아는 이가, 나의 명작을 모르는 이에게 '남해안을 다 걸은 사람이라고..., 나를 치켜세울 때, 

나는 양심의 가책을 넘어 나에게 당당하지 못 함이 부끄러웠다. 

 

오늘 이 길을 걸어 가막만을 벗어나도, 고흥반도 여자만해안의 일부가 여전히 남는다.

사람 죽겠다.

거는 대중교통도 엉망인데...,

 

 

 

 

 

가막만 만입의 끝으로 난 해안길을 지났다.

 

곧장 해안도로를 따라 갈라다가,

신호나 명지신도시처럼 바다로 튀어나간 ㄷ자형 소호해안도로도 양심상 트랙에 포함을 시켰다.

 

바다는 공사장 가림판으로 차단이 되어 있었고,

가림판이 없는 해안엔 홍합가공난전들이 또 바다를 못 보게 했다.

 

단지 해안지선으로 난 길이었기에 걸었다.

사람 살아가는 터전이 조금은 무질서하고 성가셔도, 세상사는 풍경에 머문다.

 

 

 

 

 

스스로 지어 낸 명언에 스스로가 탄복을 하며, 소호동 ㄷ자 동네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공유수면에 분탕질을 해 놓은 소호동동다리에 올라섰다.

 

 

 

소호동동다리

 

가막만에 건축된 최고의 호텔

 

남해안은 경이로운 리아스식이다.

여수반도-가막만-고돌산반도-여자만-고흥반도-득량만-장흥반도-강진만-해남반도로 이어지는,

해안선은 한반도의 걸작이다.

 

이 걸작의 해안선에 덕지덕지 붙혀진 길의 표식들이 짜증스럽다.

 

 

 

 

 

바다로 나있는 길을, 해를 따라 서쪽으로 가면 그게 길인데...,

구지 이런 조잡스런 가십으로 걸작에 생체기를 내어야하는지? 조금은 짜증스러웠다.

 

나는 해파랑길에서, 그 길을 알리는 각종 표식들에 반했지만,

길 하나에 난립한 온갖 집단들의 무분별한 선형 긋기와 요란한 표식들에 학을 뗐다.

길에 테마를 입히면 길은 추잡스러워진다.

 

 

 

뒤돌아 본 가막만 만입의 끝

 

송소마을

 

 

승소마을에서 해안길은 끝이 났다.

 

개척의 시뮬레이션으로 해안 산기슭을 돌파해 호두마을로 갈까?도 싶었지만,

이 시국에 남의 마을을 헤집고 다니는 꼴 행함은 아니었다.

 

 

 

용주교차로 가는 길

 

 

 

12시10분쯤, 10km쯤을 걸어 화양면소재지 500m직전에 위치한 지점에서 캔맥주 뚜껑을 땄다.

 

언제부터인가? 무조건 10km를 채운뒤에야 쉬게 된다.

그래야 빈약한 의지가 걸음에 진다.

 

지도를 보니 떡을 치며 가도, 16시 이전에는 세포에 도착이 되겠더라~

그래서 한참을 늘부러져 가막만엘리제를 읊었다.

 

 

 

 

 

하루에 열번 이상은 운행을 하던 '부산~여수간 고속버스의 배차횟수가 4회로 줄었다.

 

때문에 돌아가는 버스의 시간을 어쩔 수 없이 19시10분으로 했고,

세포에 16시를 넘겨 도착이 되기를 바랬다.

 

근데, 10시에 시작을 한 걸음이 12시에 그 반을 넘겼기에, 이제부터는 진짜 세월아네월아 모드로 걸어야 한다.

나는 시간의 기다림이 제일 싫다.

 

 

 

호두마을

 

화양면소재지 - 나진

 

 

세월아네월아 모드는 사람을 놈팡이로 만드는 것 같아서,

나아가야 할 길도 쭉 뻗은 4차선 아스팔트길이라서,

다시 내 속도로 걸었다.

 

 

 

멀리 보이는 고흥반도 팔영산

 

 

가막만과 여자만을 있게 한,

고돌산반도는 내가 그렇게 각인을 하고 그렇다고 정의를 내린 반도이다.

 

순천에서 바다로 나간 지형은 양팔을 벌였고, 좌측의 팔은 여수반도이고 우측의 팔이 고돌산반도이다.

그 사이에 들어 찬 바다가 지금 내가 마주한 가막만이다.

 

고돌산반도의 일주도로는,

가막만측 여수시 시도 22번과, 여자만측 전남도 지방도 863번, 그리고 남부해안의 국도 77호선이 형성을 시킨다.

문제는 남부해안 77번국도를 제외 한, 나머지 길들은 너무도 지겹다.

 

 

 

이런 길만을,

 

이런 바다에 근접헤 걷고 싶은데...,

 

실상은 생생 달리는 차들을 조심하며,

 

지겹게 걷고 있다.

 

 

22번 도로만을 따라가면, 반도의 끝자락에 위치한 세포는 금새 나온다.

 

지겹움은 끝을 갈구한다.

여수터미널에서 부산행 버스의 출발을 하염없이 기다릴지언정, 오늘 이 길이 빨리 끝났음 좋겠다.

아니, 이 지겨움이 걷히면 좋겠다.

 

 

 

 

 

갈등의 갈래에 봉착이 되었다.

 

22번 도로는 구.노선과 신.노선이 병행하는 도로이고,

구불구불 오르내림이 많은 구.도로에 비해, 신.도로는 약간의 오르내림은 있어도 직선화된 선형이다.

 

간혹 보이는 바다를 보며 한적한 구.선형으로 가야하는데, 시작부터 적나라한 오름에 나는 기겁을 했다.

 

에라이~ 모르겠다.

자동차전용도로에 가까운 신.도로의 굴로 들어갔다.

 

 

 

원포터널

 

 

 

그 십여분, 비행기가 이·착륙중인 활주로를 걷는 기분이었다.

고막이 터지는줄 알았다.

 

원포교차로에서부터는 무조건 구.도로를 취했다.

 

 

 

석개마을

 

구.선형내 세포터널

 

 

세포터널을 나오니 백야도 백호산의 꼭대기가 살짝 보였다.

꼭대기가 가려질수록 길의 끝은 다가왔다.

 

 

 

세포삼거리

 

 

 

14시20분,

머무는 바람조차 없는 너무도 한적한 세포삼거리에 닿았다.

 

내 생은,

고돌산반도 남단에 있는 한적한 시골 버스정류소에서, 오늘 또 한번 여수로 나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운행정보가 먹통인 버스정류소에서 늙어가는 찰나, 28번이 섰다.

전라좌수영 거북선으로 가 한 술하고, 젖갈이나 한 통 사며 서성여야지..., 했는데,

시계를 보니 16시20분 부산행 버스를 탈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남기면 벌금이 있어, 억지로 억지로 먹었다. (파래 쫌 매이 씻어라~ 비린내가 나 구토가 나올뻔 했다)

 

 

 

이제 이순신길은 고흥반도 여자만해안 ±20km 정도가 남았다.

길은 이어야 길이다.

 

근데, 혼자 걷는 길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뉘를 꼬득여 이순신길 그 마지막 마디를 채울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