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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이 될 길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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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선길 - 베이스캠프

베이스캠프 - 샘고을 깻다리 형님 고향집

경기병 2022. 7. 29. 14:34

떠나기 전,

엄마가 유년시절을 보낸 수정동일대를 돌아보고,

광안리와 해운대를 지나 청사포에서 점심을 먹고 송정을 둘러 집으로 오니 16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다.

 

고작 하루 갔다오는 여정이지만,

엄마를 두고 떠나는 심정이 애달파 쉽사리 나서질 못하다가,

16시 30분이 되어서야 더는 지체할 시간 없어 형님께 드릴 예방선물도 준비하지 못한 채 급히 출발을 했다.

 

 

 

베이스캠프 - 샘고을 깻다리 형님 고향집 (2022.7.26~27)

형님의 고향집이 있는 과교동 들녘을 지나가는 목포행 ktx

 

 

 

인연, 그 중에 제 일은 길에서도 이뤄졌다.

길이 맺어준 인연을 만나러 16시30분 314km 대장정에 올랐다.

 

이틀 전,

형님은 내게 세컨하우스로 사용하는 당신의 고향집 사진을 보내왔다.

 

이틀 후,

형님은 설마했겠지만, 나는 휴가를 내고 사진속 형님의 고향집을 찾아가기로 했다.

 

서울 사는 형님은 내게 사진을 보낸 댓가로 귀경을 한지 3일만에 다시 샘고을로 내려와야 했고,

부산 사는 나는 형님이 보낸 사진을 받은 댓가로 난생 처음 샘고을로 올라가야 했다.  

 

 

 

 

 

 

 

'이게 죽은건지 살은건지 모르겠다'

늘어난 알약의 수에 엄마가 심혈관센터 주치의에게 하소연을 한다.

 

긴 병에도 효자 있음을 증명하고자 하는 나였지만,

엄마의 그 말에 한 달새 세 번의 외래에 나 역시도 지치긴 마찬가지였다.

 

잠시라도 떠돌고 싶었고, 

그래야만이 이 시린날들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레이서였다.

 

레이서를 한 결과,

19시30분에 형님이 일러준 주소지에 도착을 하니, 사진속 그 옛집이 자리해 있었다.

 

 

 

 

형님의 고향집 (시내에서 회포를 풀고 돌아와서~)

 

 

 

도착을 알리는 전화도 하지 않은 채,

담장 밖에서 형님을 부르지도 않은 채, 대뜸 대문을 열었다.

 

하.하.

방충망 넘어 거실에 형님이 앉아 계셨다.

 

 

 

 

 

 

 

 

내 타고난 사주팔자에는,

내 이 곳에 올 일은 어쩌다 단풍철에 내장산이나 한 번쯤 거쳐가는 게 다였을 것이다.

 

해파랑길 득분에 형님과 인연이 닿았고,

이순신길 득분에 형님과 닿은 인연은 엉켜붙었다.

 

그래서 오늘 생에 처음으로,

형님의 고향, 동학의 발생지, 호남의 심장이라 칭하고 싶은 '샘고을 정읍'으로 오게 되었다.

 

 

그저그런 일상에서 부대끼는 사람들과 마시는 술은 밋밋하다.

띠를 돌고도 몇 년의 간격이 더 있는 길이 맺어준 형님과 마시는 술은 아주 진하다.

 

샘고을에서의 여름밤, 오늘 그 진함에 물들고 싶다. 

 

 

 

 

 

 

 

삼례도 고창도 아니었다.

정읍이었다!

 

취한 뇌로 거니는 샘고을의 밤, 아~ 너무도 진하고 좋더라~~ 

 

형님의 점잖은 친구분까지 동석한 자리였지만,

내 짙어지고픈 바램에 형님들을 부추겨 간 두 번째 자리는 샘고을 번화가였고, 

형님의 세컨하우스로 돌아오는 길에서는 편의점에 들러 기어이 소주 두 병을 사 들었다.

 

택시를 탔다.

형님이 '깻다리로 갑시다'라 기사에게 행선지를 알렸다.

깻다리는 형님이잖아??

 

 

 

 

호남선과 호남고속철도

 

이웃집 담장가에 선 해바라기꽃

 

길가에 핀 부용화

 

 

 

고즈넉한 마당에 밤이슬이 내려앉으니, 형님의 옛집엔 금새 여름밤의 운치들이 몰려왔다.  

아~ 사람을 미치게 하고도 남았다.

 

이제 씻고 자라는 형님의 말은 귓전으로 흘린 채,

집안에서 새어나온 불빛이 스미는 마당, 그 한 가운데에서 풀벌레들의 앙상블에 맞춰 홀로 왈츠를 췄다.

내 생에 나를 위한 가장 아름다운 지랄이었다.

 

 

그리고 맞이한 아침,

 

들녘 한 가운데로 기차는 지나가고, 

이웃집 담장 넘어에 선 해바라기꽃은 나를 내려다보고,

한적한 길가엔 생전 처음 본 부용화가 흐더러지게 피어나 있었다. 

 

기차, 해바라기꽃, 부용화...,

그런 아침 풍경속에 머물고 있는 나는 행복해지더라~

 

 

콩을 썩어 갓지은 밥에 옛내음 가득 벤 돤장찌개,

형님이 손수 차려낸 아침을 먹고나니 종적을 감췄던 살 맛이 돌아오더리~

 

 

 

 

형님집 앞 구.1번국도(삼남길)를 지나가는 정읍시 농어촌버스

 

수박농장을 지키는 착한 개

 

 

 

아버지 어머니가 살던 집을 지키러 고향으로 오는 형님,

그 고향에 오면 일 시키려는 누나가 있고, 같이 늙어가는 조카들이 있고, 소시적 친구들이 있어 행복한 형님,

그런 고향을 일상으로 가진 형님의 지금이 한 없이 부러웠다.

 

그 부러운 형님의 지금에 민폐로 머물렀던 샘고을에서의 하룻밤,

나는 아직 지치지 않았음을 알았고 언제까지나 지치지 않을 것임도 알았다.

 

길이 인연이 되어 엉킨 떼내지 못할 막내동생벌도 안되는 혹 하나 때문에,

귀경한지 수 일도 지나지 않아 다시 고향집으로 내려와야 했던 형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