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이 될 길의 기록
지리산둘레길 3구간 ( 인월~금계 ) 본문
알딸딸해졌다.
그래도 금계까지는 간다, 다 방법이 있어니까...,
길은 걷는 자가 정한다.
컨텐츠가 된 길,
인증을 해줘야 걷는 길,
혼자서는 못가고 무리에 속해져야 따라가는 길,
대한민국 트레킹의 모순이다.
3구간은 남원의 인월에서 함양의 마천으로 가는 길이다.
근데 잘 만들어 놓은 길을 외면하고 삼봉산 능선의 해발 650m 등구치를 넘게 해 놓았다.
이런~ 미친것도 아니고!!
나는 이제 오름이 싫다.
나는 내가 아는 지리산의 둘레길로 갈 것이다.
나는 770km 해파랑길을 650km로 단축을 시켰다.
나는 길을 찾아내고 발굴하여 제시한 그 모든 선답자 혹은 주체들의 선형을 존중한다.
하지만, 길은 걷는 자가 정한다.
누구의 길이 더 지리산을 품었는지? 보다는 내가 품고자 하는 지리산길로 갈 것이다.
걷는 기분을 지치게 하는 오름은 이제 무조건 싫다!
지리산둘레길 제3구간 『인월→금계』
약간은 흐릿멍텅해진 시선,
스치는 누군가에게는 풍겨질 소주내음,
그 꼴로 내 젊은날이 회상으로 박힌 인월에서 마천으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
2구간 출발지점에서도 떼거지들의 단체샷 요구를 받아 줬는데,
3구간에 들어선지 얼마 안된 지점에서 또 떼거지들을 만나 사진을 찍어줘야 했다.
혼자 걸어도 이렇게 좋은데, 좋은 사람들과 같이 하면 얼마나 더 좋을까? 싶었다.
허나 내 주위에는 당뇨, 혈압수치는 높아도 길을 걷고자 하는 년,놈들은 아무도 없다.
해파랑처럼 이 길에서도 인연을 한번 만들어볼까??
안된다!
한 번 잘못 만난 인연에 부산에서 진도까지 걸어 갔다!!
절대 만들면 안된다!!!
람천의 서측제방을 따라 중군마을에 이르렀다.
나는 이제 운영주체에서 제시한 길을 버리고 중군교를 건너 나만의 지리산둘레길로 갈 것이다.
60번 지방도를 따라가며,
달궁으로 가는 길로 잠시 우회를 해 동동주 한병을 사고, 실상사를 구경하고,
산골 면소재지에서 토요일 오후를 서성일 것이다.
역시 지리산이다.
언제부터인가 잡념이 사라졌다.
불어오는 찬바람이 이리도 시원할줄 몰랐다.
지리산둘레길에는 21개의 면(面)이 산재해 있다고 한다.
내가 마음에 담아 둔 지리산가에 있는 면들은,
냇물이 말 달리듯 흐른다는 백무동과 벽소령이 있는 함양의 마천(馬川)과,
화살처럼 흐른다는 중산리가 있는 산청의 시천(矢川),
그리고 지금 막 들어 선 성삼재와 정령치로 가는 길목의 남원 산내(山內)면이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는 그 길목일뿐일테지만,
나는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터전에서 산을 오르는 대신에 서성이는 여행자이고 싶었다.
오늘 역시도...,
13시38분,
배너미재를 넘어 온 정선형이 60번 지방도를 횡단하여 등구치로 오르는 장항마을 입구에 이르렀다.
그리나, 이내 정선형과는 또 헤어진다.
대정삼거리에서 60번 지방도를 따라 마천방향으로 가야 하지만,
정령치 혹은 성삼재로 가는 861번 지방도로 잠시 우회를 하고자 길을 틀었다.
2006년 여름 처음으로 노고단에 올랐고,
운무에 휩싸인 오름길에서 난생 처음 구름 샤워를 했다.
그 후 매년 여름 또는 가을날이면 종종 달궁에 베이스켐프를 치고 지리산 북부권역에 묻혔다.
달궁으로 가는 길목에서,
늘 차를 세웠고 오늘은 걸음을 멈췄다.
오늘 오랫만에 그 동동주를 사러 이 곳으로 왔다.
산내면사무소내 벤치에 앉아 지리산 주능선을 한참이나 보았다.
둘레길에서는 버스시간에 쫒기지 않는 한, 시속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오르지 않을 산이나 실컷 보면서,
지라산가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부러워하며, 산그리메가 드리우면 집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14시30분,
산내분지 유일한 들판에 자리한 신라의 고찰 실상사(實相寺)에 닿았다.
나는 스스로 불자라 칭하지만, 절에는 잘 가지 않는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간혹 불경을 읽지만, 그 읽음도 사실은 잠들기 위함이었다.
트레킹인데,
절집도 순례하고 참 좋다.
실상사를 나오면서 트레킹은 목적에서 사라졌다.
산바람도 맞고,
고찰도 구경도 하고,
나만이 아는 내 젊은날도 그리워하고,
산이 품어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양새도 조심스레 엿보고...,
아~ 지리산둘레길 참 좋네~~
14시55분, 전북과 경남의 도계를 지나,
함양군 마천면 초입에 위치한 람천변 쉼터까지 왔고, 보이는 벤치로 가 잠시 뻗었다.
한 겨울에 지리산의 한 가운데에서,
올려다 본 2019년 마지막 토요일 오후의 하늘색 참 좋더라~
함양에서 18시30분 부산으로 가는 버스표를 끊어 놓았다.
정선형으로 걷지는 않았지만, 우째거나 3구간의 종점은 의탄리 금계마을앞 의탄교 북단이다.
남은 길의 연장은 4.5km쯤이고, 떡을 치며 걸어도 16시30분까지는 무조건 그 곳에 닿을 수 있다.
버스정류소에 붙어 있는 군내버스 시간표를 보니 16시30분쯤 유림을 거쳐 함양으로 나가는 버스가 있다.
그걸 타면 함양읍에 17시를 조금 넘겨 도착이 될터이고...,
그나저나 3구간 정선형의 연장은 20km인데, 오늘 내가 걷는 3구간은 16km쯤이다.
역시 나는 길의 단축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2구간 시점부터 같이 한 람천이 덕전천과 만나 엄천이 되니, 마천면 소재지 가흥이었다.
얼마만에 이 곳에 와 보노!
외팔이 아저씨가 만든 짜장면을 먹었고,
할아버지 하며 울던 아기를 그 동네 꼬마에게 성별을 물어보고 쉬를 누게끔 보듬어 주었고...,
외팔이 아저씨는 몇년전 티비에 나와 잘 살고 있음을 알았지만,
추운 겨울날 어둠 내린 산골짝에서 할아버지 하며 울던 그 아기는 어떻게 성장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잘 자랐겠지! 싶었다.
이제 2km쯤 가면 오늘 걸음은 끝이 난다.
오랫만에 25km를 걸었지만 지침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둘레길가에 일렬로 줄지어 선 은행나무들의 겨울나기가 한창이다.
봄이 오면 다시 피어날 것임에 애처롭기 보다는 그 당당한 자태가 부럽다.
산다는 것은 시들어 가는 것일수도 있다.
시들지 않으려 주름진 얼굴에 화장을 하고 퇴색된 머리카락에 염색을 하지만 추잡스럽다.
대신에 당당함으로 시들고 싶다.
그래야만이 시래기는 안 될것 같다.
회상이 된 내 젊은날이 파노라마처럼 스친 오늘길에서 나는 그 시절을 그리워만 했을 뿐이다.
돌아가고 싶어하지는 않았다.
당당함으로 시들것이다.
16시20분, 지리산둘레길 제3구간의 종점 금계마을앞 의탄교 북단에 도착을 했다.
갑자기 휴천쪽에서 함양으로 나가는 버스가 왔다.
얼토당토 않게 그 버스를 타 버렸다.
그리고 1km쯤 달리다가 앗! 트랙 기록종료를 하지 않았음을 인지했다.
시들어 가고 있는거야~
휴천, 유림을 거쳐 함양으로 가는 농어촌버스를 타고 싶었는데,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인월을 거쳐 함양으로 가는 직행버스를 타 버렸다.
득분에 오늘 내가 걸어 온 3구간의 길들이 차창밖에서 되감기가 한창이었다.
오랫만에 왔기에 한번 더 봐라~ 뭐 그런 뜻이겠지 싶었다.
함양읍에 내리니 채 17시가 못됐고,
할 수 없이 읍내의 이 곳 저 곳들을 서성이며 부산으로 가는 버스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집으로 돌아오니 22시가 조금 덜된 시간이었다.
달궁에서 산 막걸리 한 통을 순식간에 비우고 꿈 같은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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