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섬진대교 (3)
회상이 될 길의 기록
8월의 마지막날,그래도 더웠고 그래도 갈 곳은 없었다. 내가 갈 곳을 찾지 못하면,엄마는 늘 장을 보러가자고 했고,오늘은 말린생선과 액젓을 좀 사야겠다고도 했다. 그렇다면...,오랫만에 이순신대교 건너 여수나 갈까..., 이순신대교 통과 그리고 - 이순신대교홍보관 (2024.8.31) 여수로 가는 나만의 루트에는,명불허전 해상교량 1기와 역시 명불허전 터널 1기가 있다. 이제 닿는 거기가 정처가 아니라,지나는 거기가 정처여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여수수산시장에서 갈치조림으로 점심을 먹고자 했지만,15시를 넘겨 도착이 될듯 해 이순신대교를 건너기 전 광양에서 점심을 먹었다. 인생사, 광양에서 밥 한끼 먹은 기억 가짐도 괜찮았다. 남해안 철의 도시 광양을 벗어난..
섬진강 하구에는 섬진대교를 사이에 둔 두 곳의 아담한 포구가 있다. 경상도측 하동의 나팔포구에서 전어를 먹고, 전라도측 광양의 망덕포구를 좀 서성이고자 12시쯤 엄마와 함께 집을 나섰다. 포구기행 - 나팔포구 전어 (2023.7.29) 지난주 술상항에서 먹은 2023 햇전어는 너무도 맛났다. 갈사만 끄트머리에 자리한 나팔포구가 내놓을 전어 맛 또한 기대 한 가득이다. 그날은 아주 길에서 죽는 줄 알았다. 04시쯤 남해도 서단 유포를 출발해 노량을 건너 갈사만을 돌고도 모자라, 섬진대교를 또 건너 광양제철소 담벼락길을 따라 태인도와 금호도를 딛고 광양시내까지 간 날이었다. 그날 그 대장정의 길에서, 섬진대교를 건너기 직전 스친 포구가 나팔이었다. 휴가시즌을 맞은 고속도로는 곳곳이 정체였고, 축동에서 곤양까..
출발 당일 예상치 못 한 인생사가 발목을 잡았다. 이순신길로 나간다면 미안해질 것이고 두고두고 원성을 들을텐데..., 결장대원의 속출로 20회차 참여인원이 다섯명으로 줄어 들었다. 출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노량대첩(1598.12.16) 戰方急 愼勿言我死..., 이 말을 남기고 노량의 관음포에서 그는 떠났다. 명나라 수사제독 진린은 배의 바닥에 세 번 엎어지면 말하길, "고금에 그 같은 자 다시는 없다"하였다. 임진왜란 마지막 대규모 해전으로, 명량에서 대패한 일본은 고니시 등이 이끄는 500여 척의 전선을 구축 노량과 왜교 등지에서 공격해 왔다. 이순신과 진린의 조명연합함대는 200여 척의 전함으로 맞서 싸워, 적선 200여 척을 격파하고 1만에 가까운 적을 참살하였다. 관음포 방면으로 달아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