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이 될 길의 기록
갈맷길 2-2구간 (동남해분기점 ~ 수영교) 본문
추석이다.
아이다, 마 그냥 나흘연휴다.
4일중에 하루는 섬트레킹을 하고도 싶었지만,
섬이 고향인 사람들의 온전한 고향 누림을 위해 외지인은 어슬렁거리지 않아야 할 것 같아서 참았다.
대신에 내 고향 바닷길이나 걷자 싶어, 그 첫째날 용호동 오륙도해맞이공원으로 갔다.
[해작사방파제와 영도]
[오륙도]
[오륙도스카이워크]
11시쯤 집을 나왔지만,
3번의 시내버스를 타고 용호동 오륙도해맞이공원에 도착을 하니 14시쯤이었고, 하늘은 더욱 흐려져 있었다.
갈맷길 2-2구간 (동남해분기점→수영교)
- 농바위 가는 해안길
강원도 강릉의 사천진해변을 따라 나있는 길에는 다섯개의 도로명이 붙혀져 있다.
7번국도, 동해안자전거길, 강릉바우길, 낭만가도, 해파랑길...,
길 하나를 상대로 정부, 지자체, 민간단체들이 저마다의 길로 명명을 해 놓았고,
그 길에는 각종 안내판과 이정표들 그리고 잡다한 시그널들이 낙서처럼 늘부러져 있다.
(에라이~ 당장 다쳐뜯고, 다쳐지우고 싶었지만 참았다)
오늘 내가 걷는 부산의 오륙도해맞이공원에서 민락교까지의 해안길 역시도
갈맷길이자 해파랑길이고 더하여 이기대산책로이기도 하다.
(에라이~ 당장 다쳐뜯고, 다쳐지우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만들 좀 하길 진정으로 바란다.
가야할 아련한 길의 선만이 보이는 그런 호젓한 풍경, 그 속을 나는 걷고 싶다.
[갈맷길 2-2코스 출발지점]
처음엔, 리마인더 해파랑길로 테마를 정해 걸어야지~ 했다.
그러다가 민락교를 지날때쯤 제수씨의 전화가 왔고,
만남의 장소인 동래로 가기 위해서는 해파랑길 1코스 종점인 미포보다는 센텀으로 가는게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리마인더 해파랑길이 갈맷길이 되었고,
그래서 나는 앞으로 차를 타고 멀리 가기가 싫은 날에는 갈맷길이나 걸어야지~ 했다.
블로그에 등재를 시키는 길의 기록은 리얼이어야 한다.
한번 걸은 길을 상대로 해파랑길 카테고리, 갈맷길 카테고리에 두번을 써 먹을수는 없다.
당췌 나는 지금 이 길을 몇번이나 쳐걷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다섯번은 걸었지 싶다.
태풍 때문이겠지?
농바위에서 치마바위로 가는 해안데크길 곳곳이 심하게 파손이 되어 있었다.
저 사람들은 추석도 없나?
한국사람보다 외국인이 더 많이 걷고 있었다.
40여분을 걸어, 동백섬과 달맞이고개가 선명하게 보이는 어울마당까지 왔다.
해안 산기슭을 깍아 만든 길이어서 다소 힘이 들었고, 오랫만에 나온 걸음이라 속도가 붙지 않는다.
초고층의 마린시티와 엘시티가 이제 달맞이고개의 풍경마저 바꾸고 있는 해운대를 무심히 보며,
한참을 쉬었다.
유산소운동(걷기)을 꾸준히 하면,
혈압 유지도 되고 체중조절도 된다고들 쳐씨부려샀지만, 내 경험상 다리만 망친다.
그래도 내가 장거리 해안트레킹을 하는 이유는,
비워지는 뇌에 기억될 풍경속을 그저 걷는 것이 좋아서일뿐이다.
하튼 쉬면, 잡다한 생각들이 들어 안된다.
또 걷자!
[동생말 부근에서 본 광안대교]
1시간15분, 4.7km를 걸어 동생말전망대에 도착을 했고, 해안산길은 끝이 났다.
이제 도심의 해안도로로 접어든다.
색동저고리를 입은 어린 소녀가 할아버지 손을 잡고 매립지 데크길을 거닐고,
중학생으로 보이는 소년이 낚시대로 작은 메가리를 건져 올리고,
강아지와 산책을 나온 여고생이 벤치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
추석 대목날의 용호만매립지 풍경이었다.
[용호만]
[광안대교 용호동측 진입부]
[광안리해변으로 가는 길-1]
부산광역시 수영구,
원래는 남구였지만, 1995년 남구에서 분리 되었다.
수영이란 지명은 아마도 경상좌수영에서 유래되었지 싶다.
한양에서 하삼도를 내려다 볼 때, 경상도의 좌측부에 위치하며 왜(倭)의 침범시 최전선이 되는 곳이었다.
누군가 통영에 갔을 때,
여수가 원래 조선수군의 본영인데, 왜 이 곳이 통(제)영이라고 불리우는지 의문스럽다고 했다.
그건 아마도?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여 극대화를 시키는 전라도의 특색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소한 것들도 전라도에서는 멋과 맛이 되니까...,
여수는 이순신의 전라좌수영이었고,
해남은 이억기의 전라우수영이었고,
통영은 원균의 경상우수영이었고, 그러다가 임란후 삼도수군통제영이 되었다.
그리고 이 곳 수영(동래)은 경상좌수영이었고,
정유재란 당시 경상좌수사는, 칠천량해전 직전 12척의 전선을 몰고 도망을 친 배설이었다.
통영과 여수 그리고 해남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