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이 될 길의 기록
갈바람길 02 - 변산반도(2) 본문
양옆의 침구는 이미 개져 있었고 모두들 나설 채비에 분주한데, 나는 몸도 눈도 움직여지지가 않는다.
두 시간만 더 잤음 소원이 없겠더라~
억지로 일어나 이불을 벽에 밀치고 한 대 처물고 숙소 밖으로 나가니,
반도의 중심 격포의 새벽은 우리만이 분주한건 절대 아니었다.
어제 땀도 좀 흘렸고 씻을까? 하다가, 누룽지 퍼먹는 옆에 자빠져 어제의 트랙을 보았다.
이런, 니이미~ 트랙을 꺼지 않아 택시를 타고 온 길까지 반영이 된 채 살아 있었다.
서해바닷길 첫 트랙부터..., 그래 그게 내 삶인기라~
05시30분,
조금뒤 다시 올 격포에서 택시를 타고, 오늘의 시점이 될 어제의 종점으로 가니 05시38분이었다.
갈바람길 02 - 변산반도2 (2020.10.18)
오랫만에 대열에 끼여 걷는 길이다.
해미누나만 따라가면 길을 선정해야 하는 번뇌도 없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밤의 심로도 없다.
더하여 방출된 체력 만큼 뿌듯해지는 기분으로 형님들과 부딪히는 그 한 잔은, 30km가 준 즐거움이다.
때론 그 한 잔이 진탕으로 이어지지만, 그 때의 진탕은 결코 그런 진탕의 취함이 아니다.
근데 문제는,
닭보다 먼저 일어나야 하고, 길을 짜르며 휑하니 갈 수 없음이다.
어둡고 긴 새벽 숲 길을 걸어 세상이 보일 때, 격포항이 수풀 사이로 나타났다.
격포!
언젠가 오게 되기를 아련하게 기렸던 곳이다.
위도를 가기 위해 조만간 다시 격포에 올 것이고,
그 때 어둠 내린 격포항 부둣가를 서성이며 소주를 마시리라~ 했다.
격포항 북쪽 해안가에 선 산이 닭아봉이고, 닭아봉 남측 해안절벽이 채석강이었다.
채석강에는 미안한데...,
수 차례 상족암을 본 눈은, 그리 그 절벽에 경이로운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
다행히 간조라서 절벽 밑 해안을 돌아 격포해변으로 갈 수 있었다.
사람은 곁에 최고를 두고도, 최고는 다른 곳에 있다는 착각을 한다.
형님은 남해안길부터 늘 길에 있었기에, 최고인줄 몰랐을뿐이다.
형님은 이미 정점을 찍었고, 지금도 정점에서 걷고 있다.
형님은 그러나 정점을 찍었노라! 말하지 않는다.
형님과 같이 걸어 기분 좋은 아침이다.
후박나무군락지를 지나면서부터는 해안으로 내려섰다.
호박돌과 거친 암반지형에 속도는 현저히 줄어들었고, 허기도 느껴졌다.
갯바위에 퍼질러 앉아 맛동산에 캔맥주로 아침을 먹었다.
변산반도를 휘감아도는 '부안변산마실길은,
1코스 시점 새만금홍보관에서 변산반도 해안을 따라 8코스 종점 줄포습지보호구역까지의 해안코스와,
내륙의 6선형(3-1, 9~13)으로 구성된 트레일이다.
팜플랫에 명기된 해안코스 8선형의 연장은 도합 66km이지만,
실제 선형을 준수하며 측정을 한 해안선형의 길이은 54km 남짓이었고,
무엇보다 일률적으로 산정된 5km/hr의 속도는 말이나 개가 아니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난이도였다.
싸이렌 소리가 갑자기 들렸다.
드디어 쏵 갈아엎을 제2한국전이 발발했나? 사뭇 기대를 했는데...,
실상은 어패류를 채취하는 사람들이 위험한 곳에 근접하면 울리는 경고음이었다.
길의 가장자리, 조금의 공터에는 어패류를 채취하러 온 사람들의 차들로 누더기가 되어 있었다.
쓰나미는 당췌 뭘 하는지??
성전항을 지나고, 고사포해변을 지났다.
연속된 오르내림의 참호길에서 길의 누림은 고달픔으로 변질 되었다.
또한 해변 곳곳에서 조개를 캐며 야영중인 사람들, 그 수가 놀라웠다.
나도 한 때는 야영에 미쳐 칠십이 넘은 노모를 여러번 텐트에서 모셨다.
그 하룻밤을 위해 15층에서 장비들을 내려 차로 옮겨 싣고,
현지에서 개짜증나는 펴고 접고를 처하고, 돌아와 다시 15층으로 올리는 엄청난 짓을 자행했다.
그 때는 몰랐다.
배낭 매고 걷는 지금이 얼마나 좋은지를...,
고사포해변이 끝나는 지점에 그럴싸한 식당이 보였다.
고달픔에는 반전의 누림이 필요했다.
참뽕막걸리는 참 맛도 없더라~
변산해변을 지나니, 새만금방조제와 고군산군도가 선명하게 보였다.
길의 끝도 얼마 남지 않았다.
채석강에서, 누나가 오늘은 볼게 많으니 끝나는 시간까지만 걷자고 했다.
그래도 새만금입구까지는 가야하지 않나 싶어, 줄기차게 걸어 13시 정각 새만금홍보관에 도착이 되었다.
딱 여기서 끝을 내면 좋으련만...,
14시까지 선을 늘리기로 하고 다시 걸음을 뗐다.
방조제에 갇힌 바다의 선을 따라 제시된 2km를 넘어 3km쯤을, 세월을 쫓아가듯 또 줄기차게 걸었다.
13시44분, 30번국도변 비득마을 버스정류소에서 걸음을 멈췄다.
세월은 더 멀리 내빼고 없었다.
13시44분, 채석강 적벽강 고사포해변이 담긴 변산반도 서부해안길 27km의 기록도 멈췄다.
처음 온 도시에서는 무조건 한 잔을 마셔줘야 한다.
짧게는 한 시간, 길게는 두 시간후에 모두들 부안을 떠난다.
시장통내 중국집에서 배갈 몇 잔에 간이 녹으니 기분이 좋았다.
15시40분에 부안을 떠나는 시외버스를 탔고,
16시50분에 전주에 도착이 되어, 또 1시간여의 시간이 남았다.
콩나물국밥을 시켜 녹은 간을 회복 시키고 고속터미널로 가는데..., 이게 떠도는 꼴인가? 싶더라~
집으로 오니 밤 열시였다.
그 꼴로 어데를 돌아댕기다 오노...,
꼴은 어데를 돌아 다니는데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다.
중요한건!
집구석을 박차고 나가는 그 순간, 목적한 선의 마디를 창출하는 의지의 실천, 그리고 집으로 돌아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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