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이 될 길의 기록
한국뱃길 - 땅끝항에서 노화도 산양항 본문
한반도 서녘바다로 가지 않는다면,
엄마가 탄 차를 싣고 떠날 수 있는 처음 뱃길은 이미 동이 났다.
왕복 일곱여덟시간을 오가는 여정에 오롯이 운전을 해야하는 나도 그렇지만,
팔순을 넘긴 노모가 견뎌야 할 그 고됨은 오죽하겠나, 싶어 쉽사리 그 뱃길로 나서질 못했다.
일어난 토요일 아침,
일기예보에서는 그 뱃길에 눈이 내릴거라 했지만, 엄마는 멀리는 가지말자고 했다.
10시40분쯤 집을 나서 남해고속도로에 차를 올렸다.
한국뱃길 - 땅끝항에서 노화도 산양항 (2022.2.5)
엄마가 말하는 멀리는 경남도계를 넘어서는 거리다.
진주부근에서 지리산과 남해도 둘 중 한 곳을 선정하라고 하니,
오늘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곳이면 상관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낯섦의 풍경에 있고자 한다면 그 댓가는 때론 상상을 초월한다.
오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점점 멀어진다.
13시쯤 강진·무위사나들목을 나와 송호해변으로 가니 13시40분이었다.
작년 엄마에게 완도타워에서 완도항을 보여주고자 온 길에서,
땅끝까지 그 거리를 늘렸고 그 때 저녁을 먹고자 방문을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약 때문에 입맛을 잃은 엄마가,
제법 차려진 남도의 밥상에 밥 한 공기 비우길 바랬지만, 결국은 몇 숟가락을 남긴다.
식당을 나와 송호해변으로 가니 시나브로 눈이 내린다.
와~ 눈 온다!
송호해변에서 땅끝항으로 가는 길,
흩날리기 시작한 눈발이 함박눈으로 퍼붓기 시작한다.
땅끝항에 도착을 했다.
쏟아지는 함박눈이 거센 해풍을 만나 겨울바다가 장관이다.
내가 지금 이 곳에 와 있음을 알기라도 한 듯,
이 곳에서 남해안길을 끝내고 서해안길을 시작했던 형님·누님들로부터 전화가 왔다.
눈 내리는 땅끝항,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아름다운 시절은 아직도 진행형이었다.
갑자기 휘몰아친 눈보라에,
엄마는 꼼짝없이 히터를 올린 차안에서 눈을 보고, 나는 그 눈속을 서성였다.
일 없이 눈을 맞고 다닌다고 쓴소리를 들었지만,
간절히 바랬던 겨울바다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그 속을 안돌아다닐 수가 있나...,
중동의 사막에도 가끔 내린다는 눈은,
명색이 북위 36도에 위치한 부산에서는 아예 자취를 감췄다.
2015년 이후 부산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아기들은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한 번도 못 보았다.
근데, 배가 항구를 떠나니 거짓말처럼 하늘이 드러남과 동시에 눈이 그쳤다.
아놔! 이런~ 젠장 할!!
지난 오일간의 설연휴,
하루쯤은 한반도 서남권 해역을 오가는 뱃길에 있고 싶었지만,
엄마의 컨디션 저하, 팬데믹, 혼잡함, 등의 사유로 뱃길은 사량도만을 오갔을 뿐이었다.
오늘 여정이 엄마에게 다소 무리임을 알고,
낯섦의 풍경에 놓여짐에는 반드시 그 댓가가 있음도 알지만...,
생은 그렇더라~
하나 좋아지면 다른 하나가 안좋아지고, 안좋아지는 그 하나 때문에 좋아지는 하나를 놓칠순 없더라~
한반도 서남권역의 뱃길들을,
해를 따라 서쪽으로 가며 나타나는 순서대로 누적시켜야 함이 옳지만,
오늘 우째하다보니 금일도와 생일도 그리고 청산도를 제치고 노화도와 보길도로 가는 뱃길을 먼저 택했다.
섬이 대상이 아니라 그 뱃길이 우선이 된 요즘이다.
15시10분쯤, 노화도 북단의 산양진에서,
섬의 중심지 이목으로 가 보길대교를 건너 보길도 '윤선도문학관'을 둘러 본 다음,
다시 노화도로 넘어와 동천항에서 17시20분 완도 화흥포항으로 나가는 차도선을 탈 것이다.
두 섬을 두 시간만에 탐방하는 허튼짓일지라도,
지금 내가 사는 날들이 부여해준 시간은 그뿐이고, 그 그뿐에 만족을 하면 그만이다.
항해 30여분이 지나 횡간도를 스칠때쯤, 어~ 다시 눈이 내린다.
눈구름이 뱃길을 따라오고 있었다.
15시10분,
네 시간여의 육짓길과 한 시간여의 바닷길을 건너 노화도 북단 산양항에 내렸다.
함박눈은 펄펄 내리고,
팔순의 노모를 데리고 일 없이 찾아든 섬에서 뭐를 우째야할지..., 분간이 서질 않는다.
한국뱃길 시리즈 15 「땅끝항 → 노화도 산양항」
□ 운항선사 : 노화농협 노화카훼리5호
□ 운항거리 : 6.3마일 /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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