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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이 될 길의 기록

거제도 해금강이 자리한 반도의 지형을 사람들은 갈곶이라고 불렀다. 해금강 주변을 운항하는 유람선의 선장이 말하길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그렇게 불러왔다고 했다. 한반도 서남해역으로 가지 않는다면 나 역시도 갈곶과 맞닥트린 심정이다. 주중엔 꼼짝없이 집안에서 투약의 고통을 버티는 엄마는, 내가 회사를 안가는 주말이 바깥 바람을 쐬는 유일한 이틀이고, 그 이틀이 투약에 지친 심신을 바다를 보며 위로를 받는 날들이기도 하다. 일어난 토요일 아침, 담배 한 개비와 지도를 띄운 폰을 들고 발코니로 나갔다. 여기저기 아낌없이 쏘다닌 결과 마차진에서 마량까지의 해안선에는 더 이상 낯섦이 남은 바다는 없었다. 엄마에게 보여준 바다 - 갈 곳 없는 바다1 (2022.2.19) 정오가 다돼서야 집을 나섰다. 정처 없이 떠..
출발 당일 예상치 못 한 인생사가 발목을 잡았다. 이순신길로 나간다면 미안해질 것이고 두고두고 원성을 들을텐데..., 결장대원의 속출로 20회차 참여인원이 다섯명으로 줄어 들었다. 출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노량대첩(1598.12.16) 戰方急 愼勿言我死..., 이 말을 남기고 노량의 관음포에서 그는 떠났다. 명나라 수사제독 진린은 배의 바닥에 세 번 엎어지면 말하길, "고금에 그 같은 자 다시는 없다"하였다. 임진왜란 마지막 대규모 해전으로, 명량에서 대패한 일본은 고니시 등이 이끄는 500여 척의 전선을 구축 노량과 왜교 등지에서 공격해 왔다. 이순신과 진린의 조명연합함대는 200여 척의 전함으로 맞서 싸워, 적선 200여 척을 격파하고 1만에 가까운 적을 참살하였다. 관음포 방면으로 달아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