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이 될 길의 기록
서성임, 북위 38º30'37" - 2024 추석 동해 최북단 여행기 본문
해마다 꼭 한 번은 그곳으로 간다.
올해는 추석연휴가 그때였다.
갈 때의 아득함이 닿으면 또 다른 이득함으로 바뀌는 곳,
북위 38º30'37"...,
서성임, 북위 38º30'37" - 2024 추석 동해 최북단 여행기 (2024.9.14~15)
오랫만에 만난 그와 자정이 넘도록 술을 마셨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내일 엄마를 데리고 마차진에 가야지' 하며,
그 낡디 낡은 숙소의 예약을 해버렸다.
북위 38º30'37"를 가고자,
북위 35º24'23"에서 10시쯤 북상의 길에 올랐다.
위도차는 3º6'14",
위도 1º는 개략 110km,
3.1038... x 110 = 341, 하지만 굽은 길의 길이는 426km...,
영해휴게소에서 한 번을 정차하고,
경북도와 강원도의 도계를 지난 임원항에 두 번째 정차를 하니 13시30분이었다.
그새 가격은 오천 원을 올려 이만 원을 처받고 있었지만,
너무도 무성의한 개나 소나 만들 수 있는 싸구려로 회덮밥으로 변질된 맛은 만 원도 아까웠다.
이런 집구석 방문은 애써 찾아가 헌납을 하는 꼴이었다.
북위 38º30'37"에서의 베이스캠프는 늘 금강산콘도다.
여관급 시설에 고물상급 비품들이지만,
방구석에 뻗어 마주하는 바다에는 시린이 풍경으로 넘실된다.
그 시린 바다를 방구석 창밖에 두고자 한다면,
체크인 시작 15시 전,후로 도착을 해, 선착순으로 배정되는 오션뷰 객실을 득해야 한다.
근데 오늘은 출발부터가 늦었다.
16시쯤 거진항에 도착을 했고,
수산물판매장에서 활어회 삼만 원치를 포장해,
남은 북상길 10km가 끝나는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마차진리에 도착을 하니 17시였다.
오션뷰고 나발이고는 주차장을 채운 차들을 보며 다시 한 번 포기를 하고,
체크인을 하는데...,
어! 오션뷰 객실을 원하면 이만 원을 내란다.
해파랑길 49코스에서 마차진해변을 가리고 선 이 콘도를 보았다.
엄마를 데리고 꼭 한 번은 와야지 한 바다와 콘도,
오늘이 엄마와의 다섯 번째 방문이다.
언감생심 리모델링은 고사하고,
죽으라 아니 때려죽인다해도 시설 개선을 않을 이런 지독한 숙박업소는 어디에도 없을 듯 싶다.
바다만 처믿고...,
그간의 방문에서 오늘 배정된 201호는 최악 중 최악이었다.
박물관에나 있을 듯한 보온이 안되는 밥통과 되레 뜨거워지는 냉장칸을 가진 냉장고,
곰솥인지 냄비인지는 달랑 하나뿐이고 후라이팬은 아예 고철에 가까운 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바다만 처믿고...,
언제나 그래왔듯이,
저녁을 먹은 엄마는 티비를 보다가 잠이 들고,
반술이 된 나는 그런 엄마를 두고 마차진으로 밤마실을 나갔다.
꺼지는 듯 흔들리는 도시의 가로등~
가슴에 흐르는 너 나의 슬픔이~
한 조각 슬픈 노래 소리로~
어둠에 흩어져 가네~
오늘따라 자꾸만 흥얼거려지는,
이 노래를 부르며 아무도 보이지 않는 대진2리해변으로 내려섰다.
길도 시리고,
바다도 시리고,
그 사이에 서 있는 가로등 불빛도 시리다.
그 시림이 좋아서 나는 오늘 또 엄마를 데리고 북위 38º30'37"의 바다로 왔고,
이 시리고 이 어둔운 바다를 서성인다.
또 이 바다로 와,
또 그단새 이 만큼 늙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늙지 않았다, 단지 반술에 잠시 몽롱해졌을 뿐!
해변이 좀 길었음 좋으련만,
그단새 대진1리해변이 끝나는 길모퉁이를 지난다.
그냥 홀로 서성이는 밤길이 좋다.
마차진리에서 대진리로 가는 밤길을 서성이는 지금,
나는 또 법환포구 그 밤길과 승일교에서 고석정으로 간 그 밤길이 그리워진다.
이런 저런 그 어떠한 생각도 들지 않는 길,
1km 남짓을 걸어 역시 가로등 불빛만이 깨어있는 대진항으로 넘어왔다.
주문진, 아야진, 공현진, 거진, 대진...,
내 사는 곳에서는 그 이름만으로도 설레이는 북녘의 포구들이다.
나는 지금 그 중 최북단의 포구 대진항을 서성인다.
이래 살라고 태어났음 얼마나 좋겠노...,
길에는 사람이 없지만,
길가 사람의 집들은 불을 밝히고 있었다.
이 길 어딘가에 내 집도 있어 여서 사는 내가 되고도 싶었다.
거진에서 부산가는 버스도 있는 데...,
생은 타고난 팔자대로 살아야 한다.
그 팔자가 정해준 내 생의 베이스는 부산이다.
부산가는 버스가 있다고 거진에 살 수 있음도 아니다.
우짜다가 이래 한 번씩 오면 된다.
위로를 받을 그 어떠한 슬픔도 없는 팔자인데,
마치 내가 나를 위로하듯 걸은 마차진~대진리 순환 밤마실은 21시쯤 끝이 났다.
밤마실 성적이 우수했는지,
누군가 쏘아대는 폭죽이 마차진해변의 밤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일어나니 예보대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를 맞는 바다는 춤을 추고...,
엄마는 비소리 파도소리에 일어날 생각이 없고...,
휴일이면 일곱시도 안된 시각에,
특히 여행을 온 휴일엔 여섯시도 안된 시각에 눈알은 자동으로 열린다.
사람 미치겠다.
다 들 자고 있는데 혼자 깨어남은 비극이다.
아침을 먹고나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오늘 여서 서울 갈낀데...,
일년이 지나면 다시 올낀데...,
하면서 10시쯤 미련없이 마차진을 나섰다.
서울 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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