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이 될 길의 기록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 이승복기념관 본문
더불어 살면서 가장 한심스럽게 보여지는 사람들은,
어떤 계기로 인해 자신의 생을 이념과 종교에 함몰시킨 년,놈들이다.
한반도 이북에는 이천만에 가까운 멍청한 년,놈들이,
끊어진 이데올로기의 끈을 부여잡고 돼지혈통 보존에 자기 인생을 바치고,
한반도 이남에는 보수와 진보로 갈라진 할 짓 없는 년,놈들이,
거의 매주말 광화문광장으로 모여들어 양 진영 정치잡배들의 선동에 놀아나고 있다.
총,칼로 위협하는 그 공산당 앞에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친,
아홉살 산골 소년이 보여준 순수 이데올로기는 사라지고,
상대를 적으로 치부하는 이데올로기만이 남았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 이승복기념관 (2024.11.24)
총,칼로 위협하는 그 공산당 앞에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친,
아홉살 산골 소년을 만나고자 10시30분 '국립대관령자연휴양림'을 출발했다.
내 삶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령의 동쪽(영동)에서 령의 서쪽(영서)으로 가는 고갯길, 그 정점에는 대관령이 있다.
그 대관령을 평생 영동고속도로로만 처넘다가,
오늘 드디어 대관령 옛길이라고 불리우는 456번 지방도를 타고 넘는다.
경북도 북부 내륙에는 BYC오지라고 애칭되는 봉화 영양 청송군이 있고,
강원도 남부 내륙에는 그런 애칭은 없어도 평창 정선 영월군이 그러한 오지가 아닌가 싶다.
스치는 모든 길이 낯설었지만,
영동고속도로 속사나들목을 나와 접한 길에 붙은 숫자는 전혀 낯설지 않았다.
내 사는 공간 속 기장일광IC교차로가 시점인 31번 국도,
그 31번 국도를 따라 5km쯤 북상을 하니...,
소년이 다닌 구.속사국민학교 계방분교장(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용평면)에 조성된,
'이승복기념관'이 있었다.
소년은 치를 떨며 절규를 하고 있었다.
그 입 모양에 미안스럽게도 잠시 웃음도 나왔지만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나도 공산당이 싫다.
소년이 칭한 공산당은 분명 북한 공산당이다.
북한 공산당도 싫지만,
북한 공산당보다 더 싫은 당은 그 공산당에 우호적인 대한민국의 정당들이다.
공산주의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공산주의는 욕구를 가진 인간에게는 애초부터 성립이 안되는 체제다.
전쟁이 발발하자 빨갱이로 돌변을 하고,
전쟁이 끝나자 그 빨갱이들에게 토사구팽을 당한,
박헌영 같은 등신들이나 신봉할 허구와 허상의 체제일 뿐이다.
어젯밤 휴양림에서 엄마한테,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한 아가 누고?'하고 물으니,
졸고 있던 엄마는 단 번에 '이승복이 아이가'라 했다.
내일 그 아이 살던 곳을 갈거라고 하니 엄마는 내심 반기는 눈치였고,
내일이 오늘이 된 11시30분쯤 엄마가 탄 휠체어를 밀며 '본관전시실'로 들어섰다.
그 악랄한 이데올로기는,
가난한 화전농의 아내와 세 명의 어린 자식들을 무참히 살해했다.
그 악랄한 이데올로기는,
아직도 한반도 북쪽을 장악한 채 더 악랄해지고 있다.
민주당이 배출한 세 명의 대통령들은,
그 악랄한 정권과 손을 맞잡으며 퍼주기식 지원에 방문까지도 했다.
허나 그 결과는,
완벽한 핵보유국이 된 북한의 남북공동협력사업 유형물 모조리 파괴였다.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어린 아이들까지도 그렇게 했어야 했는지...,
그 악랄한 이데올로기에 함몰돼 악마가 된 그들이,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지옥에서 온갖 고초 당하고 있기를,
가장 큰 비명 내지르는 이 스탈린과 김일성이기를 바라며 본관전시실을 나왔다.
본관전시실을 나오니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치미는 분노의 표출인자,
아니면 떨어진 기온 때문인지는 모르겠더라~
주로 팔랑귀를 갖고 태어난 년,놈들이 이념과 종교에 가스라이팅을 당한다.
이비인후과 또는 성형외과는 팔랑귀 치료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기념관은 꽤나 넓었고,
그 한 쪽에는 이승복 가족이 살던 집도 지어 놓았다.
가난하지만,
그렇게라도 살아가던 사람들을...,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북한놈들은 분명 하늘이 벌 할 것이고,
자국에서 자국민을 지키지 못한 국가에도 분명 그 책임은 있다.
12시10분 '이승복기념관'을 나와,
아홉살 산골 소년이 학교와 집을 오간 그 십리길을 따라,
12시20분 평창군 용평면 노동리 계방산 깊은 골에 자리한 '이승복생가'에 도착을 했다.
아-놔, 근데,
집이 아까 기념관에서 본 그 집이랑 똑같더라~
똑같은데 왜 왔지...,ㅜ
생가 옆에는 1968년의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법 큰 규모의 오토캠핑장이 조성돼 이념이고 나발이고는 안중에도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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