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이 될 길의 기록
난선조선난파 13년의 상고생 - 하멜기념관 본문
세월은 또 그렇게 흘러,
봄꽃은 또 그렇게 피어나니 아니 떠날 수가 없었다.
흔히들 땅끝기맥이라 처시부려샀는 해남반도 산등선 월출산에서,
그 화려한 기세를 받아 남서쪽으로 펼쳐져 솟구친 흑석산을,
엄마의 자연휴양림 열다섯 번째 한뎃잠터로 정하니,
그 곳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 어느 화란인의,
13년 조선 억류를 증명한 기념관 방문은 필수가 됐다.
난선조선난파 13년의 상고생 - 하멜기념관 (2025.3.29)

해남의 흑석산을 아니,
강진의 하멜기념관을 가고자 10시쯤 엄마와 함께 집을 나섰다.


불이 나고 피어난 매화는 잊혀진 봄꽃이었지만,
불이 꺼지고 피어난 벚꽃은 맞이하는 봄꽃이었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꽃을 보러가는 봄날,
모처럼 남해고속도로가 밀렸다.


저거 아버지가 살고 있을 뿐인데,
그러함을 이유로 어느새 장흥이 노벨문학도시가 돼있었다.
그 어이없는 도시를 지나,
13시30분쯤 하멜기념관이 위치한 전남 강진군 병영면에 이르렀다.


점심을 먹고자 한 식당은 길까지도 만석이라서,
우선은 기념관부터 찾았다.



타이베이에서 일본으로 가다가 풍랑에 휩쓸려 조선에 상륙을 한 이 네델란드 선원을,
대한민국 지자체들(서귀포, 여수, 강진)은 숭배에 가까운 기념을 한다.
그 기념의 절정,
강진 '히멜기념관'에 엄마가 탄 휠체어를 밀며 입장을 했다.


여긴 분명 그 경계에서 꽤나 떨어진 전라도 강진인데,
주차장서부터 찐한 부산말들이 허공을 지배하고 있었다.
관광버스들의 투어에 들 만큼 여가 그리 유명했단 말인가...,



내 듣기로 그는,
난파로 상륙을 한 조선에서,
디질랜드 13년을 보내고서야 겨우 떠날 수 있었다.







딱 안죽을 만큼의 상고생이었다.
그에게는 악질 국가였던 조선의 후예 대한민국은,
지금이라도 그에게 굴욕의 13년에 대한 응당의 보상을 해줘야 한다.
이따위 기념관이나 처만들어 그의 굴욕을 알리기에 앞서...,




조선인 홍어장수 문순득의 표류기에는 못미치지만,
화란인 선원 하멜의 표류기 또한 파란만장한 풍랑의 대서사시였다.



오늘이 엄마와의 세 번째 병영면 방문이다.
그간 두 번을 온 이유는,
이곳에서 구워내는 연탄불고기가 맛있다고들 어찌나 칭송을 하는지,
서남권의 남도 여행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저녁을 먹고자 들렸을 뿐이다.
그런 이유로 하멜기념관이고 전라병영성이고는 모조리 생략이었다.





기념관은 전라병영성의 홍보관이기도 했다.
기념관 옆 진짜 성은 비워놓고,
왜 남의 기념관에서 지 자랑을 하는지 모르겠더라~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
하나를 넘어선 복합이 돼야 사람들이 몰려온다.
강진은 이미 복합이었다.


송곳처럼 육지를 짜르며 들어찬 바다가 강진만이다.
그런 바다가 있어,
누군가에게는 설레이는 강진이지만,
그런 바다가 있어,
누군가에게는 떠남이 버거운 강진이기도 했을 것 같다.


기념관을 나서니 그리 많이 올 비는 아니지만 추적추적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산도 없는데...,


그래봤자 거서 거지..., 그렇게 치부를 하며,
지금까지는 다소 한적한 길 건너 병영서가네를 갔지만,
오늘은 작심을 하고..., 웨이팅 한 시간여를 하멜기념관에서 떼운 후,
브레이크타임 직전에서야 입장을 해 상을 받았다.
허나 거서 거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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