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50코스 - 마차진해변에서 통일전망대

이뤄지기를 원하는 두 바램을 가지고 혼자서 해파랑길에 나왔다.

남겨진 다섯코스를 끝내고 50코스의 시점에 와 있었다면 두 바램은 어쩌면 오늘 다 이뤄졌을 것이다.

 

1코스에서 이뤄졌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는 바램 하나는 50코스에서 이뤄졌다.

 

길에서 인연을 만난다는 것!

낯선이에게 먼저 다가서질 못 하는 나이기에 천요하우낭요가인의 심정이었다.

그러다가 그 바램은 오늘 50코스에서 이뤄졌다.

 

 

 

 해파랑길 50코스 - 마차진해변에서 통일전망대 (2017.10.28) 

 

 

 

22km를 북진하여  09시50분, 40코스 시점인 통일전망대출입신고소에 도착을 했다.

 

50코스 걷기행사가 열리는 집결지에는 아직 아무도 없다.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고, 모자 사 스고,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있으니,

도로 건너 맞은편 대형주차장에 배낭을 맨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해파랑길 50코스는,

그 절반이 민통선내에 위치한 관계로 차량으로의 이동만 가능했다.

해파랑길을 운영하는 주체에서 당국의 협조를 얻어 오늘 하루만 걷기가 가능해졌다.

운이 있었는지 내게도 그 기회가 주어졌다.

 

행사를 주최하고, 행사내내 최선을 다한 안내를 해준, 모든 관계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대형주차장 다소 한적한 그늘에 앉아 주최측에서 준 떡을 먹어며,

119명의 해파랑트레커들이 타고 올 버스를 기다렸지만, 좀처럼 나타나질 않는다.

 

처음엔 설렜였지만,

집결시간이 가까워져오니 설레인 마음이 두근거림으로 바뀐다.

 

간성에서 출발한 버스가 왔고,

30여분뒤 서울에서 출발한 두 대의 버스들도 도착을 했다.

 

내리는 한 명 한 명을 유심히 쳐다봤지만,

바라는 마음이 부끄러워져 찾고자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도통 촉이 무력해진다.

 

 

 

 

 

 

해파랑길을 걸어면서 해파랑길을 걷는 사람들이 궁금했다.

포털의 검색창에 해파랑길23코스를 치니 여타의 글과는 차원이 다른 포스팅을 접했다.

 

 

 

[해파랑길 50코스 시점 - 강원도 고성군 현남면 마차진리]

 

 

 

좀 부끄럽고, 좀 떨리는데...,

 

내 마음 알길 없는 인간이 다가와 사진을 찍어달란다.

동해안자전거길을 남진을 하는 라이더들의 단체사진을 찍어주니, 대열이 출발을 시작했다.

 

 

 

[또 편안한 길을 놔두고, 틀림 없이 산길로 들어 가겠지!]

 

 

 

대열의 앞에 서서 스치는 사람들을 검문하듯 볼 수는 없어,

길 건너에서 출발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보았지만, 도무지 누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이제 방법은 하나!

일전에 나는 댓글, 답글을 통해 일방적으로 누님이라 칭한다 했고,

28일 걷기 행사때 맨 앞에서서 걸을테니 나를 찾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PC밖 대면이 부끄러웠는지? 그에 대해 이렇다 할 답변은 없었다.

 

 

 

[119명을 제끼고 대열의 맨 앞으로 갔다]

 

 

 

종합안내판이 없는 곳은 왜 그런지?

왜 멀쩡한 바닷길을 놔두고 산길로 가도록 했는지?

청진까지 코스를 발굴해라! 등등...,

 

인솔하시는 분과 나에게 선두를 내 준 분들과 한참 말을 썩고 있는데,

"경기병님 맞나요?" 누군가 묻는다.

그것도 내가 생각하고 추론한 나이대의 여자분이...,

 

"예" 그리고 인사를 드리려하니...,

본인이 아니고 "찾는 분은 뒤에 있어요"라 하신다.

부끄러워서 못 오시고 대신 오셨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명파해변까지 치열한 선두다툼을 한 두명의 남자와, 봄여름가을겨울산악회 해파랑진행자 해미대장님]

 

 

 

인사를 하고자 백을 할까?도 싶었지만,

이미 찾은거나 진배 없다고 생각을 하니 선두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이후 세 명이서 명파해변까지 입에 개거품을 문 치열한 선두 다툼을 벌였다.

명파해변직전 계단에서 만난, 출발지를 명파해변으로 한 여성분들께 내 순위를 물으니 7등이란다.

 

이런~ 밥 먹고 보자!

 

 

 

 

 

[여기까지 1등인줄 알고 쾌재를 불렀는데...,]

 

 

 

 

 

산길을 내려오니, 명파리의 하늘과 바다가 더 없이 평화로웠다.

 

 

 

 

 

[통일전망대도 식후 경]

 

 

 

남기면 안될 것 같은 도시락을 억지로 억지로 먹는다.

도시락을 먹고 누님에게로 갈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추수렸지만, 맛도 없는 도시락이 발목을 잡는다.

밥퍼들이 보기전에 잽싸게 남은 잔밥을 처리하고, 물과 커피로 생난리를 친 가글을 했다.

 

그리고, 밥을 먹어면서 주시한 해미대장님이 있는 자리로 조심스레 갔다.

 

봄바람 같은 해풍이 불어오고, 봄 볕 같은 햇살이 내려쬐는,

38선 넘어 민통선이 보이는 해변에서 그렇게 나는 해파랑길이 맺어 준 인연들과 만났다.

 

해파랑에 나서면서,

혈연, 지연, 학연, 사회연..., 이 딴 고리의 연이 아닌 연을 한번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그런 인연을 만났다.

해파랑길 두 바램 중 그 하나의 바램이 이뤄진 순간이었다.

 

 

 

 

 

 

좀 부끄러웠지만..., 바램 하나를 이뤘다.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다시 시작된 레이서에 시동을 걸었다.

 

통제가 없는 실질적레이서의 파이날은 제진검문소까지였다.

아까 명파해변으로 내려오는 계단에서 만난 여성분이 "7등 아저씨네"라 했다.

 

그 말이 자극이 되었다.

인솔자를 앞서면 안됨니다고 나발이고..., 서로 레이스는 아닌척 했지만 피를 튀겼다.

 

 

 

[1등에게 주어지는 빈풍경(1)]

 

 

[1등에게 주어지는 빈풍경(2)]

 

 

[해파랑길 마지막 방향안내판] 

 

 

[1등에게 주어지는 빈풍경(3)]

 

 

[1등의 뒤돌아 본 풍경]

 

 

 

조금의 긴장감이 들었지만,

이제 해파랑길의 마지막코스이고,

어쩌면 혼자서는 절대 걸을 수 없는 민통선내를 걷는다는 것이 실감되기 시작했다.

 

줄을 서야 했고,

통제에 따라야했기에 더 이상의 레이서는 의미가 없어졌다.

 

 

 

[민통선내 해파랑길]

 

 

 

나처럼 혼자 걷는 사람들도 몇 있었지만,

대부분은 팀을 만들어 왔고, 최소 두 명은 함께 온 사람들이었다.

 

앞뒤에서 걷는 사람들이 같이 온 이들과 조근조근 대화를 나누며 걷는다.

그렇지! 이제 나도 혼자 걷지 않아도 된다.

 

걸음을 멈췄고 뒤에서 오고 있는 "아는 사람들"을 기다렸다.

 

 

 

[해파랑길 50코스 종점 -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명호리]

 

 

 

 

 

 

 

3년만에 다시 통일전망대 그 곳에 섰다.

 

낙타봉도 말무리반도도 그대로였지만,

그래도 펄럭이는 태극기를 보니 얼굴에 약간의 경련이 일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서 좋았고, 그 곳으로 가는 해파랑길을 걸을 수 있어 더 좋았다.

 

갈 수 없는 산과 바다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그리운금강산을 부르는데,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어 달랜다.

열번도 넘게 사진을 찍어줬고, 그 사진들 마다에 바다로 나간 말무리반도를 담아줬다.

 

 

 

[그리운 금강산의 낙타봉과 말무리반도]

 

 

 

간성에서 보자고 했는데...,

서울행과 지방행으로 나뉜 버스는 통일전망대를 나오며 흐트러졌다.

 

집으로 기는 길은 심히 멀고도 고달팠지만,

오늘의 이 기억을 가지기 위함에 있어 이 고달픔쯤이야~ 싶었다.

 

 

 

 

 

푹 자고 일어난 다음 날,

거울을 보니 내가 너무 착하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