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이 될 길의 기록
아리랑길 006 - 거제도(02~03) 본문
지난 이순신길 06회차,
견내량에서 건너 대한민국 두 번째 크기의 섬 거제도에 입도를 했고 성포항까지 걸었다.
앞으로 4주차 8일을 걸어야만이 이 섬을 빠져 나갈 수 있다.
오늘 내일 섬의 중심부 고형항을 거쳐 서북부해안을 따라 칠천도를 돌고 나와 장목항까지 간다.
아리랑길 006 - 거제도02 (2018.02.03)
03시 50분쯤 종주대가 고현터미널에 도착을 했고, 서나대원의 바디블로를 한방 맞았다.
제법 센데? 그간의 부부싸움에서 익힌 파워가 틀림 없다.
지난 6회차에 참여한 멤버에서,
일정상 참석을 못하신 무명초형님을 제외하고는, 지난 6회차에 참석을 한 그 멤버 그대로다.
[01시30분 집을 나와 거제도로 간다(거가대로 침매터널 구간)]
[거가대로 거가대교 2번째 사장교]
[04시10분, 출발지점인 성포항에 도착을 했다]
[이순신트레일 7회차-시점 (경남 거제시 사등면 성포리)]
비교적 그 폭이 넓은 길어깨였지만,
질주를 하는 차량들의 위험이 상당한 14번국도를 따라 모래실로 가는 해안데크길이 나올 때까지 쉼 없이 걸어야 했다.
잘 만들어진 해안데크길이 끝나고,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뒤로 난 오솔길에 접어 들었지만 길의 끝은 막혀 있었고,
할 수 없이 다시 14번국도로 나와 고현항으로 가는데, 조선소 출근시간과 맞물려 그 위험이 대단했다.
5분 일찍 일어났음 저리 생생 달리지 않아도 될텐데..., 뭐 그런 욕이 입에서 튀어 나왔다.
3시간여, 14km를 걸어오니 완연한 아침이었다.
고현항 확장 매립지공사 현장내 가림막 쳐진 한적한 공터에서 아침터를 발견했다.
누가? 내가~
길에서의 밥맛은 절대 꿀맛이 아니다.
나는 밥이 먹기 싫다.
여럿이 우왕좌왕 한들, 혼자 하는 시간이나 진배 없어,
도우려는 종주대를 먼저 보내고 아침터를 수숩해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갔다.
고현항을 벗어나 한내로 가는 길에 접어더니 먼저 간 이들이 돌아 나오고 있었다.
원래 아침을 먹고자 한 자리를 식후 탐사를 하고 오시는 길이었다.
[계룡산 아래 거제도의 중심 고현이 잘 정비된 채 보여진다]
[몇년전, 맹골수도에 갔다 온 크레인바지선이 여기 있었네]
[석포로 가는 길]
라일라대원과 시부린다고 석포마을 앞 바다풍경을 찍지 못했지만, 후회는 없다.
내 과거사 일면의 쟝르에 즐거워 하는 그녀의 웃음소리가 이 더 좋았다.
석포, 덕곡으로 이어진 거제섬 북부해안이 숨겨 놓은 풍경에 반해 걷다보니,
오늘 종점으로 정한 칠천도가 바다 건너에 떠 있었다.
한산한 시골 보건지소옆 볕 좋은 공터는 여지 없이 점심터가 되었다.
지체 없이 물을 끓이고,
너나 할거 없이 씻지도 않은 손으로 수제비 반죽을 뜨기 시작 했다.
그 맛이 엄청 맛있다.
한 그릇 더는 없었고, 옆에 앉은 새댁들 것을 빼들어 먹으려 쳐다보니 혀로 설겆이를 하고 있었
다음엔 닭칼국수란다.
새댁 둘의 솜씨가 장난이 아니기에 다음을 기약하며 숟가락을 챙겼다.
[훌륭한 점심을 먹고, 칠천도를 향해 다시 걸음을 뗀디]
또 토요일 오후가 되었다.
나는 이순신트레일에서 이 시간 만큼은 전혀 지루하거나 힘들지가 않다.
더하여 이 시간만 되면 하늘색 바다색이 우째 이래 좋은지~
보이는 풍경은 또 우째 이래 평화스러운지~
앞으로 나아가 뒤에서 오는 일행들의 모습을 보면 한 없이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토요일 오후는 사람을 착하게 만들어준다.
[저 고개를 넘어서면 칠천도로 들어가는 다리가 보일테고...,]
[그래 보이네, 보여~]
15시08분,
더럽게 추웠지만 33.8km를 걸어 와 칠천량 그 바닷가에 섰다.
칠천량해전 (1597.08.28)
명나라와의 화의가 결렬되자, 일본은 1597년 1월 다시 조선을 침범(정유재란)했다.
당시 조정은 당쟁에 휘말려 이순신을 하옥하고 원균을 수군통제사로 임명한 상태였다.
일본군은 조선 수군을 부산 근해로 유인해 섬멸하려고 일본의 이중첩자인 요시라를 시켜 유혹했다.
이에 도원수 권율은 도체찰사 이원익과 상의해 원균에게 출전명령을 내렸다.
원균은 무모하게 출전해 보성군수 안홍국 등을 잃고 되돌아왔다.
그리고 한산도의 본영에 앉아서 경상우수사 배설이 웅천을 급습하도록 하였다.
배설이 전선 수십 척을 잃고 패하자, 권율은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원균을 태형에 처한 뒤 다시 출전하라고 명하였다.
원균은 부산의 적 본진을 급습하려고 삼도 수군 160여 척을 이끌고 한산도를 출발하였다.
원균은 부산 근해에 이르러, 이 사실을 미리 탐지한 적들의 교란작전에 말려들어 고전하였다.
더욱이 되돌아오던 중 가덕도에서 복병한 적의 기습을 받아 400여 명을 잃었다.
원균이 칠천량으로 이동하여 무방비 휴식 상태에 있을 때 적은 조선 수군을 기습할 계획을 세웠다.
도도·와키사카·가토 등 수군 장수들이 일제히 거제도 북쪽으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달밤을 이용해 일제히 수륙양면 기습작전을 개시하였다.
이에 당황한 원균과 여러 장수들은 응전했으나 적을 당해낼 수 없어 대부분의 전선들이 불타고 부서졌다.
전라우수사 이억기와 충청수사 최호 등 수군 장수들이 전사하였다.
원균은 육지로 탈출하였으나, 일본군의 추격을 받아 전사하였다.
경상우수사 배설만이 12척의 전선을 이끌고 남해 쪽으로 후퇴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로써 삼도 수군은 일시에 무너지고 적군은 남해 일원의 제해권을 장악해 서해로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우키타·고니시·모리 등은 쉽게 남원 및 진주 등지로 침범하게 되었다.
조정에서는 원균과 함께 탈출해 겨우 살아 나온 김식에게서 패전 보고를 듣고 크게 놀라,
백의종군하고 있던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해 수군을 수습하게 하였다.
아리랑길 007 - 칠천도1 (2018.02.03) 「칠천량해전길」
매운 해풍을 뚫고 칠천량을 건넜다.
역사의 쓰라림임 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칠천교]
칠천연도교를 건너 장안삼거리에서 2km여를 가니 칠천량해전공원이 나왔다.
채 4시가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공원으로 가는 오르막 따위는 이제 아무런 저항이 되지 못했고, 다들 마지막스퍼트를 해 무난하게 그 정점에 올랐다.
정점에서 본 칠천량은, 내가 아는 형용 미사구들로는 표현이 되지 않는다.
다들 전시관내 극장으로 꿀잠을 자러 갔고, 나도 한적한 벤치에 누워 잠시 졸았다.
다 걸어 왔기에 걷지 않는다. 그러니까, 엄청 추워진다.
식당도, 모텔도 없는 석양빛만 물들기 시작하는 섬에서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기분이다.
근사한 팬션을 비워두고 갯벌에 조개 캐러 간 주인이 올 때까지 그 기분은 가시질 않았다.
흥정은 윈윈이었고, 먹을거리를 구하러 팬션사장님의 차를 얻어 타고 내일 종점인 장목으로 나갔다.
장목삼거리를 서성이는데, 이 무슨 트레킹에 이런 기분이드노? 싶었다.
지난밤에 또 얼마나 부어라마셔라를 했는지...,
입안은 물론 목구멍까지 말라 비틀어지고 있어 할 수 없이 일어 나,
코드1의 환타를 나발로 다 마시고 다시 누웠는데, 바람소리 엄청 나 잠들수가 없었다.
이내 알람이 울렸다.
아리랑길 007 - 칠천도2 (2018.02.04)
엄청난 한파라고, 입춘이라고 뉴스가 혼동에 빠져있다.
한대 태우러 밖으로 나가보니, 입춘이 온게 아니라 남극의 한파가 와 있었다.
우째 걸을꼬...,
닥치고 무조건 걷는 것! 그것만이 상책이다.
삼십여분을 그렇게 걸어니 대하는 추위는 조금 가셨지만, 그래도 추웠다.
금곡방파제를 지나다가 얼핏 본 어두운 바다에 넋이 나간다.
샛바람에 밀려오는 너울에 묻은 달빛..., 그게 겨울이었다.
오라는 황덕교 조명의 유혹을 저 버리고 대곡고개에 오르니,
거제시가 야심차게 만들어 놓은 섬엔섬길 칠천량해전길 1구간으로 오르는 푯말이 보인다.
물안해변을 가기 위해 굿등산으로 오르는 산 길,
어랏??
요즘 발에 길이 짝짝 달라붙는 두 여제가 주저 없이 치고 오른다.
그렇다면 뒤쳐질 수는 없지..., 묵시적으로 따라 붙는데, 폐가 터질것 같다.
제법 경사가 있는 야트막한 산을 딱 한번 쉬고 그대로 오르니,
새벽 여명5분전의 칠천량이 곱게 숨겨 놓은 속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정상부근에 잘 놓여진 데크에서 모두들 거룩하게? 아침을 먹었다.
어제밤,
먹다 남은 목살을 잘게 짤라 볶음밥을 한 다음, 것도 부족해 지리매운탕의 뼈까지 골라 내고 잤다고 했다.
오르지 않았다면, 볼 수 없는 풍경속으로 내려 왔다.
추웠지만, 지 나름의 색을 선명하게 보이는 것들의 당당함에 더 이상 움추리고 있을 수 만은 없다.
일개의 면으로 치부 되지도 못하는 작은 섬이지만,
섬이 가진 것들이 하나 둘 보였고, 그 섬에 살고 있는 사람의 집들이 한 없이 정겹게 다가선다.
해파랑이 발아를 시켜 준 고운 씨앗 두개가,
해미, 레인저, 해리랑, 깻다리 그늘에서 무럭무럭 자라 남해안에서 만개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라일라데원은 이제 나 없이도 쉘터를 혼자 설치 할 수가 있고, 서나대원은 날이 갈수록 배낭이 무거워지고 있다.
그녀들의 남해안길 선택과 집중이 있어, 종주대에 아로나민골드가 되고 있다.
그런 그녀들을 바라보는 대장님과 형님들의 표정이 더 없이 흐뭇해 보인다.
물안해변부터 시작된 칠천도의 더 없이 평화로운 해안도로를,
따스해져오는 햇살을 받으며 아무런 걱정이 없는 사람의 표정으로 계속 걷는다.
입안에 든 달콤한 사탕이 아쉽게 녹듯이,
그렇게 1시간여를 걸어 장안삼거리에 도착을 했고, 곧장 칠천교를 넘어 섬을 빠져 나왔다.
더 없이 좋았던,
섬에서의 하룻밤과, 새벽녁 오른 굿등산에서의 해돋이...,
세월이 흐르면 그 기억에 배시시한 웃음이 나올 것 같다.
도륙을 자처한 촉매는 당쟁이었고,
당쟁이 정치인 조선 조정은 모함일지라도 당쟁을 위해 장군을 옥에 가두고 파직시켰다.
당쟁의 수혜자는 원균이었고,
수혜자는 칠천량에서 조선수군의 전부를 잃어버렸다.
09시15분,
그 때의 당쟁이 자초한 처참함이 넘실대는 칠천량을, 40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당쟁중인 나라의 국민은 건넜다.
아리랑길 006 - 거제도03 (2018.02.04)
이제 장목항으로 간다.
고향에서 한 잔하고 집에 가애지...,
왠지 의무적으로라도 한잔은 해줘야 했는데,
어제 저녁 뭐한다고 그 많은 술을 다 퍼마셨는지? 굿등산에서 절실한 후회가 들었다.
6km 남짓 남은, 이번 회차의 종점 장목항으로 가는데,
도저히 지나칠수 없는 편의점이 입지를 해 있고, 모두들 주저 없이 그 곳에서 걸음을 멈춘다.
차갑기 보다는 오히려 시원한 기분의 막걸리 한사발을 하고,
오직 걷는것 자체에 든 기쁨으로 30여분 아무 생각 없이 걸어니 아~ 장목항이더라.
[이순신트레일 7회차-종점 (경남 거제시 장목면 장목리)]
10시42분, 장목파출소앞에서 트랩을 종료시켰다.
추운날에, 조금의 굴함도 없이,
당당하게 목적한바 그대로 달성을 시킨 남해안종주대 6인의 트래커에게 경의를 표한다.
남해안 해상교량 시리즈 008 - 칠천교
'아리랑길 - 낙도바닷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리랑길 008 - 미륵도 (0) | 2018.05.02 |
---|---|
아리랑길 006 - 거제도(10) (0) | 2018.04.26 |
아리랑길 006 - 거제도(08~09) (0) | 2018.04.13 |
아리랑길 006 - 거제도(06~07) (0) | 2018.03.26 |
아리랑길 006 - 거제도(04~05) (0) | 2018.03.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