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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이 될 길의 기록

제주올레 3코스 - 표선~온평 본문

제주올레 - 탐라바닷길

제주올레 3코스 - 표선~온평

경기병 2020. 12. 2. 09:44

맞바람이다.

이 바람을 뚫고 15km를 전진하자니 막막할 따름이었다.

 

그래도 간다.

 

 

 

 제주올레 3코스 - 표선~온평 (2020.11.28)  

곧 겨울인데, 우짤라고 피어났니?

 

 

표선해변으로 내려오니 귀에 난리가 났다.

안그래도 마스크 끈 때문에 테두리가 아프고 건지러웠는데, 바람 소리에 고막까지 터질라 했다.

 

 

 

 

표선해변의 개미친 바람

 

 

이래 처불어제끼는데 우째 걷노~ 싶었다.

저번에 간 곰탕집으로 가 술이나 퍼마시고 돌아갈까? 싶기도 했다.

 

 

 

 

 

 

 

 

바람소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이라 했지! 않는가...,

 

어떻게 해서 나온 길인데...,

이대로 돌어서 집으로 가기에는 나중에 들 후회 때문에라도 닥치고 걸어야 될 것 같았다.

아니, 공항주차비가 아까워서라도 걷기로 했다.

 

 

 

 

 

 

모래와 돌로 형성된 그 지랄 같은 해안을 걷기 싫어 1132번 지방도로 걸었다.

그러다가 해안지선과 너무 멀어짐에 밀감밭을 지나 다시 해안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제주도는 밀감색이지만,

언제부터인가 내게는 검은색이 제주의 색이 되었다.

 

 

 

천미천 하류를 건너는 길

 

 

 

 

 

천미천 하류에서 대여섯 마리의 개 떼를 만났다.

착한개들이었고 나를 졸졸 따라왔다.

 

따라오지마라고..., 몇 번을 손짓해도 뒤돌아서면 또 따라와 있었다.

개들에게 먹을거라도 주고 싶었지만 배낭엔 내 먹을 것 조차도 없었다.

사람이던 개던 따라오는데 못 오게 함은 참으로 마음 저미는 일순간이다.

 

따라오는 개들 때문에 정신이 없어 해안 대신 들길로 진행이 되었다.

근데, 그 길에 달린 올레깃발은 또 뭐냐...,

 

신천리마을 한복판에서 좀 벅벅대다가 다시 해안길로 내려갔다.

 

 

 

 

 

 

 

맞바람속 5km를 걷고, 배가 고파 보이는 정자로 가 배낭을 디졌다.

 

유통기한 같은 소리하고 자빠질 처치가 아니라서,

언제 넣어놨는지 모를 제리 두 개를 꺼내 파워에이드랑 같이 먹었다.

 

 

 

 

 

내가 제주도는 검은색이라 해서 그런가? 제주도의 진짜 색들이 평원에 쫙 깔려 있었다.

 

 

 

 

제주올레 3-B코스의 제1경은 신천목장 해안평원이었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아니다.

강풍이 불어오는 곳, 그 곳이다.

근데 밀감껍질은 왜 말리고, 바람에 왜 안날리는지? 아주 궁금했다.

 

 

 

 

 

 

 

 

 

 

신풍목장을 지나 해안가 촌락을 지난다.

마을들 이름에 코지라는 단어들이 붙어 있었다.

 

코지가 뭘 뜻할까?

지형을 나타내는 제주만의 어원이고, 아마도 반도의 지형을 코지라 지칭하는 건 아닌지?

아니면 말고..., 허나, 나는 그렇게 각인을 할란다.

 

 

 

 

 

 

시계를 보니 어쩌면 16시쯤에 온평포구에 도착이 될 듯 싶었다.

 

맞은편에서 소대규모의 대열이, 뒤에서는 분대규모의 자전거들이 오고 있어,

바닷가 쉼터로 내려가 대규모 대면을 피했다.

 

이노무 길을 아직도 못 끝내고 이 지랄을 하며 돌아다니는 내가 조금은 한심스러웠다.

 

 

 

 

 

 

 

 

 

갈가에 세워진 마을안내판을 보니 얼쭈 다 왔지..., 싶었다.

걷지 않음 추워서 걸었는데..., 다 왔다.

 

 

 

 

 

 

 

 

 

16시02분 온평포구에 서 있는 큰 말에 도착을 했다.

그러니까..., 올 2월15일 16시쯤에 이 곳을 떠난지 9개월이 지나서였다.

 

두 번이나 왔지만, 바람 불어 날은 춥고 갈 곳은 없었다.

정처 없이 걷는자만이 누리는 서글픔이었다.

 

 

 

온평포구에서 바라 본 섭지해안과 성산일출봉

 

 

한 대 물고 포구를 좀 서성이다가 시계를 보았다.

잘 하면 돌아가는 비행기 시간을 조금은 당길 수 있겠다 싶어 그렇게 포구를 떠났다.

 

 

 

 

 

 

아이구 시발 사람 죽겠다.

 

 

 

 

당초 20시에서 한 시간을 당긴 19시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니, 21시가 조금 안된 시간이었다.

 

왔나? 하는 엄마를 보니, 그 전에 내가 길로 나갔다가 돌아오면 맞이하던 그 표정이었다.

그 표정에 연로함은 묻어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