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이 될 길의 기록
최후의 방어선 - 박진전쟁기념관 본문
부곡온천에서 신반시장으로 가는 길,
낙동강 박진교를 건너기 전 '박진전쟁기념관'을 찾았다.
모레가 현충일이기도 했지만,
6·25전쟁을 겪은 엄마에게는 회상의 공간이 될 법도 했다.
최후의 방어선 - 박진전쟁기념관 (2023.6.4)
전쟁은 인류애를 저버린 악마들의 광기가 일으키는 최악의 참사이고,
악마와 동조한 인간들 역시도 악마와 다를 바 없다.
1950년 6월 25일 이전에,
북위 38˚ 한반도 북쪽지역에 산 사람들 중 과연 얼마의 사람들이 전쟁에 동의를 했을까?
한국전쟁 역시도,
이데올로기에 미친 악마의 광기로 발발을 했고,
전쟁을 일으켜 민족을 학살시킨 놈들은 죽지를 않았고,
의지와는 상관없이 전쟁에 나가게 된 무고한 사람들만이 죽었다.
포털에서 검색을 해 정리를 하자면,
박진전투는,
한국전쟁 당시 미 육군 2사단 제23연대가 5배가 넘은 북한군을 상대로,
16일간 낙동강 최후의 방어선을 지켜낸 전투로, 그 결과 전쟁의 판도는 바뀌었다.
박진전쟁기념관은,
박진지구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고자,
창녕군 남지읍 월하리 월상초등학교 폐교 터를 활용 2004년 6월 25일 개관했다.
열살일 때,
하늘엔 제트기가 날아다니고,
시내는 미군과 피난민들로 가득했다고...,
한국전쟁 부산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진 엄마가 그 회상을 풀어냈다.
아직도 북침이라고 시부려샀는 년,놈들이 있고,
여전히 주체사상을 숭배하는 년,놈들 또한 숨어있다.
왜 지들의 조국으로 가지 않고 여서 지랄들을 하며 사는지 모르겠고,
왜 그런 년,놈들을 그들의 조국으로 보내지 않는지, 대한민국정부 역시도 이해가 안된다.
참전은 조국의 명에 따라서가 아니라, 본인의 의사에 따라야 한다.
전쟁의 승패보다는 개인의 자유가 더 중요하다.
푸틴, 그 미친 독재자가 일으킨 러시아-우크라이나전에 강제적으로 징집이 된,
러시아 젊은이들의 표정엔 죽음의 공포만이 가득했다.
김일성이 일으킨 한국전쟁으로,
전쟁 당사국도 아닌 미국의 젊은 청춘 3만7천여 명과, 짱개 18만3천여 명이 죽었다.
그 외에도 자유를 수호하고자 파병을 해 준 15개국의 숱한 청춘들이 한반도에서 죽었다.
허나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은,
종전 후 그 어떠한 책임과 반성도 없이 온갖 특권을 누리며 지 명대로 살다갔다.
대한민국을 지키내고 산화한 모든 청춘들에게,
대한민국의 감사는 영원해야 하고, 그들이 준 자유 평화는 절대 왜곡되지 않아야 한다.
공정과 정의는,
김일성보다 더한 그 3세를 치켜세워 국민이 낸 세금으로 북을 유람했을 뿐이고,
자유와 평화는,
징병제의 나라에서 군대도 가지 않았다.
나는 어릴적 수술을 한 병력에 따라,
징병검사 6개월 방위병 판정을 받았지만, 군의관에게 떼를 써 30개월 현역병 만기전역을 했다.
6·25전쟁 낙동강전선 최후의 보루를 지켜내고 산화한,
미국 육군 2사단 제23연대 소속 전사들을 기리며 박진전쟁기념관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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