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이 될 길의 기록
꿈꾸는 들녘을 바라보는 집 - 노무현 생가 본문
13시30분쯤 망미동 고려제강 수영공장터를 나왔다.
뭐로 점심을 먹을 것인가?도 화두였지만,
이 더운날 이제 어디로 가노?가 더 큰 화두였다.
신호를 받고 선 수영교,
직진을 해 해운대를 가고자 했는데 선 차선은 좌회전이었다.
달려오는 차들 틈에 끼여들면 날도 더운데 거리는 또 클라션 소리로 짜증이 배가 될 터이고...,
도처를 정하지 않았으니 좌회전을 한들 어떠랴...,
꿈꾸는 들녁을 바라보는 집 - 노무현 생가 (2023.8.13)
수영교에서 좌회전을 해,
번영로를 탔고 번영로에서 경부고속도로에 올라,
14시25분쯤 중앙고속도로 상동나들목을 빠져나왔다.
오랫만에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추어탕집으로 왔다.
이맘때쯤이면 녹조라떼 가득해야 하는데,
상류에서 뭔 일을 겪었는지 흙 칠갑을 해 바다로 흘러가는 낙동강을 보며,
날도 더운데 뚜껑마저 뜨거운 솥밭에 펄펄 끓는 메기매운탕으로 뜨거운 점심을 먹었다.
계산을 하며,
카운터 뒤 벽에 걸린 사진과 방문록을 보니 저나 갈까, 싶었다.
15시40분쯤,
솥밭의 누릉지까지 박박 긁어 먹고 새록새록 잠이 든 엄마를 데리고 봉하마을에 도착을 했다.
토요일이었다.
끝을 내야하는 업무가 있어 출근을 해 앉았는데,
누군가 문을 열고 놀란 표정으로 들어와 그의 죽음을 알렸다.
붓이 총을 이긴다지만,
총에는 납작 엎드렸던 언론은 붓을 든 그에게만은 재임낸내 힐난을 퍼부었고,
퇴임 후 고향으로 돌아와 일상의 나날을 보내고자 한 그를 검찰과 보수언론들이 가만둘리는 없었다.
치욕을 대신한 투신이었다.
엄마와 서너 번 봉하마을로 왔지만,
엄마의 안타까워하는 혼잣말을 들으며 쉭 둘러보고 떠나기 일쑤였다.
또 쉭 둘러보고 가기가 오늘은 왠지 미안해,
그 때는 보이지 않던 생가 길 건너 '노무현기념관'에 들었다.
엄마는 경노우대가 적용돼 무료입장이었지만,
묘역참배를 또 생략했기에 그 길가에서 팔고 있던 국화 한 송이 값을 입장료로 대신 치뤘다.
엄마와 나는 틈틈히 역대들의 생가를 예방하고 있다.
다행히 역대들의 생가는 대부분 내 사는 경상도에 분포를 하고 있었지만,
고 김대중 대통령의 생가만은 목포하고도 두 시간여의 뱃길 저 멀리에 있어,
안좌도 복호에서 하의도로 가 생가를 예방하고 신의도 동리에서 목포로 나온 그날은 너무도 고행이었다.
엄마는 아비 朴이 최고였고,
오늘 기념관을 살피는 관람태도로 보아 아마도 그 다음이 두 번째 盧가 아닌가? 싶었다.
살아서는 절대 대접을 받지 못한 대통령의 기념관은,
그게 미안해서인지 너무 잘 꾸며져 있었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
그의 일대기를 견준 관람동선에 '사람사는 세상'의 그가 있었다.
진보도 보수도 그렇다고 중도도 아닌,
국방의 의무를 다한 세금내는 아나키스트인 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더 솔직히 말해,
그에게 열광하는 사람들의 아우성이 싫었다.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이전에,
국가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바라는 사람들 같았다.
국민이 원하는 나라를 만들고자,
철옹성의 대한민국 아집들과 싸운 대통령...,
고 노무현 대통령의 명복을 빌며,
16시30분쯤 이제 그만 집에 가자는 엄마의 닥달에 기념관을 나왔다.
8월14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신복 중 신복이었던,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광복절특사로 안양교도소를 나서는 초췌한 모습이 뉴스로 보여졌다.
죗값 하나 치뤄내면 또 다른 죄로 구속가 석방을 되풀이하는 그였지만,
아무리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 나음에는 이의를 달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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