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이 될 길의 기록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답사기 - 고령 지산동고분군 본문
갈치조림과 계란말이를 보니,
반주를 아니 마실 수가 없어 아침부터 소주 반 병을 마셨다.
왕복 700km를 넘긴 어제의 진도행이 다소 피곤했는지,
한 숨 더 퍼질러 자고 일어나니 12시쯤이었다.
날도 좋은데, 딱히 갈 곳이 없다.
가끔 엿보는 블로그를 살피니 그럴싸한 정처가 나타났다.
그래 오늘은 저나 가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답사기 - 고령 지산동고분군 (2024.1.14)
13시쯤 전국노래자랑을 보고 있는 엄마를 독려해,
두 줄의 사실로 백 줄의 역사를 조성한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를 가고자 집을 나섰다.
남해고속도로 칠원분기점에서 오랫만에 구마고속도로에 들어섰다.
남동임해공업지역의 약진으로,
한 때 영남이 수도권을 압도하던 시절 대구와 마산을 연결한 고속도로다.
구마고속도로는 중부내륙고속도로의 일부가 되고,
대한민국 10대 도시로 당당했던 마산은 창원의 속구가 됐다.
이제 엄마와 나선 길에서는,
공정여행이고 나발이고 가급적 고속도로휴게소내 푸드코트를 이용할 것이다.
모든 면에서 훨씬 더 이롭다.
15시쯤,
6가야 혹은 7가야들에서 우월적 국력을 자랑한 반파국의 도읍지,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에 도착을 했다.
무슨 오일장이 이리도 크게 서는지, 온 읍내가 다 장터였다.
숱한 역사팔이 강사들의 등장으로 한반도의 역사는 소설이 되고 있다.
마치 지가 옆에서 본 것 마냥 처시부려싸는 꼴,
너무도 역겹다.
유년시절을 김해에서 보낸 나는,
김수로 왕의 금관가야 외에는 다른 가야들을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살만해지니,
그 가야들에 뿌리를 둔 지자체들이 자신들의 가야사를 세상에 내놓기 시작했다.
내 알기로는,
대가야의 고령을 필두로 김해의 금관가야, 고성의 소가야, 함안의 아라가야가,
가야연맹을 깨고 치열한 경쟁이 한창이다.
2023년 9월 17일,
제45차 세계유산위원회는,
한반도 동남부에 산재한 가야시대 고분군 7곳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그 7곳의 지정지 중,
오늘은 반파국이라 불린 대가야의 고령 지산동고분군으로 왔고,
갈 곳이 생각나지 않는 일요일이면 나머지 6곳의 고분군 또한 엄마를 데리고 탐방을 할 것이다.
먼저 '대가야박물관'을 관람하고,
연접한 '왕릉전시관'으로 관람의 동선을 이었다.
뭐라,
산 사람을 죽여 같이 묻었다고?
이런 파퓨아뉴기니 원주민보다 못한 야만의 역사를 봤나...,
여기가 홀로코스트냐...,
조선의 노예제도는 악랄했다.
자신과 같은 말을 사용하는 같은 민족을 노예로 삼아 그 일생을 갉아 먹으면서도,
지들은 학문을 익히는 선비이고 삼강오륜을 행하는 유림으로 자처한,
그 반인륜적 반민족적 인간들을 왕이 죽었을 때,
같이 순장을 시켰어야 했다.
순장의 쟝르에서 열을 받아,
옳케 보다않고 왕릉전시관인지, 학살의 전시관인지를 나왔다.
16시쯤 다시는 찾지 않을,
아니 차라리 오지 않았음 더 좋았을,
순장이란 억울한 죽음들의 영혼이 잠든,
유네스코 지정 대한민국 세계문화유산 16 '지산동고분군'을 떠났다.
흔히들 역사는 역사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처시부려샀는다.
그렇다면,
순장도 흘러간 역사이니 그저 그랬구나,
조선의 노예제도도 흘러간 역사이니 그저 그랬구나,
일본이 반성과 사과를 하지 않아도 흘러간 역사이니 그저 그랬구나, 하면 돼?
영주에 가면 선비세상이란 테마공원이 있다.
같은 민족 인권유린의 세계적 실력자, 조선 선비들의 부도덕함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었다.
대동에서 국수 한 그릇씩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니 18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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