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이 될 길의 기록
캠프 하야리아가 있었다 - 부산시민공원역사관 본문
주말이면 07시쯤 눈알이 열린다.
더 자고 싶어도 더는 잠이 안오니 사람 미치겠다.
아침을 먹으며 반주를 몇 잔 했고,
그 기운에 한 숨 더 퍼질러자고 일어나니 12시였다.
약기운이 가신 엄마는 식탁에 앉아 콩나물을 다듬고 있었다.
점심을 이유로 나가자고 하니 엄마는 콩나물이고 대가리고 나발이고 당장 채비를 한다.
캠프 하야리아가 있었다 - 부산시민공원역사관 (2024.9.8)
어제는 왕복 640km 정읍을 갔다왔기에,
오늘은 맛있는 점심이나 먹고 부산시내를 조금 서성이다가...,
그리 생각을 하면서 광안리로 갔다.
동해안 뱃사람들이 선상에서 먹던 물회는,
뭍으로 올라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 결과 초창기 그 선상의 맛을 잃어버렸다.
근데 이 집은 그 맛이 조금 남았다.
더하여 매운탕은 일품이다.
14시쯤 광안리를 출발 14시30분,
부산광역시 진구 범전동 구.하야리아부대 터에 조성된 부산시만공원에 도착을 했다.
주차장에서 역사관까지 300m 남짓한 산책로를,
엄마를 태운 휠체어를 밀며 가는 데, 더워서 죽는 줄 알았다.
어머니 어서오세요...,
엄마가 탄 휠체어를 밀려 역사관으로 들어서니,
일요일임에도 출근을 해 일을 보던 주무관이 일어나 엄마를 반갑게 맞이한다.
너무도 고맙고 감사한 받음이다.
1995년 3월 우리 땅 하야리아 등 되찾기 시민대책위원회 결성.
사정을 모르는 이들이 보면,
마치 미군이 이유도 없이 우리 땅에 들어와 무단으로 점령을 한 줄 알겠다.
참 얼척도 경우도 없는 뻔뻔함이다.
지들이 지들 나라를 지킬 힘이 없을 때는 가만히 처있다가,
좀 살만해지고 필요성이 떨어지니 저런 배은망덕한 낯두껴운 지랄들을 하고 자빠졌...,
에라이, 우째 사람이 그렇노!!
캠프 하야리아가 떠나고 부산시는 그 터에 시민공원을 조성했다.
허나 나는 오늘 이전에 한 번도 이 곳에 온 적이 없다.
이런 유익한 역사관이 있는지도 몰랐다.
분명 미국은 대한민국의 우방이고,
미군의 주둔으로 사실상의 핵보유국 북한의 도발을 저지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그들만의 이유를 들어 미군의 철수를 주장한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북한 인민들 꼴이 나봐야 정신을 차리지...,
다이어트를 하지 않아도 살이 빠지는 국민이 돼봐야 정신을 차리지...,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한국전에 참전한 미군 3만 여명이 한반도에서 죽었다.
역으로 우리가 그러했다면,
대통령부터 면서기까지 모조리 적폐로 몰려 우리끼리 생 난리를 쳤을 것이다.
어쩌면 캠프 하야리야가 떠난 자리에 조성된 부산시민공원은,
떠난 미군의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어머니 안녕히 가세요...,
좀 더 공원에 머물고 싶었지만,
역사관을 나오니 땡볕에 그늘은 없고...,
장날인 남창으로 가 대목장을 좀 보고,
집으로 돌아오니 18시가 다된 시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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