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이 될 길의 기록
한국뱃길 - 영구결항 내 기억 속 엔젤호 본문
사량도에 가면,
상도의 지리산도 있고,
사량대교 건너 하도의 칠현산도 있지만,
사량도에 가면,
그 시절 육짓길보다 빨랐던 바닷길을 연,
대한민국 최초의 쾌속여객선 '엔젤호'가 있다.
한국뱃길 - 영구결항 내 기억 속 엔젤호 (2024.11.2)
오후에 그친다는 비가 내리는 토요일 오전,
엄마의 호흡기내과 진료에 따른 여타의 모든 절차들이 끝나니 11시쯤이었다.
때를 맞춰 비도 그쳤고,
그러니 오늘은 또 어디로 가야할지가 오후의 숙제로 주어진다.
그저 발길 가는대로에 따라,
합포만을 건너 고성평야 대가저수지 돌솥밥집으로 가 점심을 먹고...,
또 그저 발길 가는대로에 따라,
고성만 만입의 해안선을 돌아 가오치항에 도착을 하니 14시30분쯤이었다.
엄마의 지당한 작은 반대도 있었지만,
갈 곳이 없으니 오랫만?에 사량도나 갈까, 싶었다.
15시 항차로 15시40분쯤 섬에 들어,
늘 그래왔듯 상,하도를 반시계방향으로 일주하고 18시 마지막 항차로 섬을 나갈 것이다.
내 기억과 내 블로그 속에는,
열 번도 넘게 입도를 한 사량도 사계의 풍경들이 차고 넘친다.
그러하기에 오늘은 서성임 그 자체만을 누리고자,
하도부터 우선한 일주길에서 기록이고 나발이고는 생략을 한채 그 풍경들을 스치기만 했다.
그러다가 일주길이 끝나는 상도의 금평항에서,
언제나 그 출입이 막혀있던 엔젤호의 내부가 오늘은 개방돼 있음이 보였다.
1993년쯤인가?
거제도 성포항에서 타킷을 시준하는 데오돌라이트 망원경에,
선두에 세운 두 다리로 푸른 바다에 흰 포말을 일으키며 항으로 들어오는 여객선이 포착됐다.
엔젤호였다.
내 스물다섯살 때,
범호도 당당하게 거제도 성포항으로 들어오던 그 엔젤호에,
내 쉰여섯이 되어서야,
드디어 사량도 금평항에서 승선을 한다.
토목기술의 발전과 예산의 증가로,
한반도 연안의 섬들에 연륙교들이 걸쳐질수록 뱃길들은 사라지는 작금이다.
아주 오래전에 부산서 여수를 오고간 뱃길은 오래전에 영구결항이 됐고,
그 뱃길에 단 한 번이라도 승선을 했다면 이리도 아쉽진 않을텐데...,
어쩌면 그 뱃길보다는 그 시절이 그리워,
영구결항이 돼 뭍으로 올라 온 엔젤호에 승선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엔젤호, 성포항, 신현읍사무소 담벼락...,
문득 내 젊은 날이 그리워지 엔젤호 승선이었다.
17시30분쯤 금평항으로 돌아왔다.
상,하도 사이 해협으로 해는 떨어지고,
뭍으로 나가는 배가 오기를 기다리다 엄마는 잠이 들고...,
이제 와본들 별 기분조차도 들지않는 사량도이지만,
삶이 심심한 날 엄마를 데리고 또 올 것이다.
17시40분쯤 집으로 돌아가는 배가 나타났다.
떠나면 그만인 섬,
하지만 그 뱃길에서 엄마의 생은 아직도 굳건한 현재진행형이다.
2024년 11월 2일 18시,
사량도에서 가오치항으로 가는 마지막 항차의 철부선에는,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여섯 명의 여객과 두 대의 차량만이 승선을 했다.
아름다운 바다,
자란만과 고성만에 어둠은 내리고...,
아름다운 시절 속 아름다운 항해였다.
점심에 회덮밥이 먹고 싶었던 엄마를 위해 당항만 소포에 들러 저녁을 먹고,
줄기차게 처밟아 집으로 돌아오니 21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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