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이 될 길의 기록
한국뱃길 - 목포에서 제주도 퀸제누비아2호 승선기 본문
오월은 계절의 여왕이 아니라,
오월은 두 번의 공휴일이 있어 행복한 달이다.
어린이날의 대체공휴일이 낀 삼일간의 연휴,
집을 베이스캠프로 '하루 하루 어디를 가노'란 고뇌를 하느니,
차라리 속 시원하게 제주도나 갔다올까, 싶었고 엄마에게는 힘든 여정이지만 그리 하기로 했다.
문제는 제주도를 오가는 교통편이었다.
뉴스에서는,
관광객이 급감을 한다니, 엔저로 대신 일본을 찾는니, 해샀지만,
막상 주말에 부산발 제주행 항공권은 구경조차도 못하는 실정이다.
한국뱃길 - 목포에서 제주도 퀸제누비아2호 승선기 (2024.5.4)
제주도로 간다.
그러기 위해서 317km 서쪽에 있는 항구 목포로 가야한다.
03시20분에 집을 나서,
순천영암고속도로 보성녹차휴게소에 딱 한 번을 정차하고,
전남 목포시 산정동 '삼학부두'에 도착을 하니 07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다.
여든넷 엄마의 제주행 뱃길을 응원이라도 하듯 하늘은 더 없이 맑았고,
올해 2월에 목포~제주간 항로에 투입된 '퀸제누비아2호'의 자태는 웅장했다.
저걸 타고 제주도로 간다.
제주도를 가기 위해 목포로 온 것이 아니라,
저걸 타기 위해 목포로 왔고 그래서 제주도로 가는 것이다.
부산발 제주행 항공권을 구하지 못한 넋두리는 퀸제누비아2호가 주는 설레임에 사라졌다.
현재 남해안 여섯 곳의 항구들이 제주도를 오가는 여객항로를 가지고 있다.
그 중 해남의 우수영을 제외한 다섯 곳은 대형카페리호가 취항을 하고,
특히 내 사는 곳에서 가장 가까이에 위치한 삼천포에서 제주도를 오가는,
'오션비스타제주호'의 주말 승선권은 항공편 못지 않은 품절로 매 번 그 득템을 실패하고 있다.
항공편을 구하지 못했으니 배편을 찾았고,
그마저도 삼천포는 매진이었고 여수는 이미 승선을 했기에 이번은 목포를 택했다.
그 승선에 매 번 애를 먹는 엄마이지만,
나는 그런 엄마를 데리고 육지와 제주도를 오가는 모든 뱃길들을 섭렵할 작정이다.
선사에 양해를 구해 조금은 덜 힘든 승선을 도모했지만,
만선의 혼잡함에서 엄마는 두 층의 수직 이동을 하고서야 승강기를 타고 5층의 객실로 올랐다.
그리고 그 고난의 댓가는,
목포의 파란 하늘과 목포의 푸른 바다를 보며 선상에서 먹는 아침식사였다.
승용차 기준 최고치 선적료가 부가되는 차까지 선적을 하면,
객실의 등급과는 상관없이 그 운임은 저가항공사의 주말운임을 능가한다.
이왕 타는 거 엄마를 위해서라도,
안락한 등급의 객실을 원했지만 그 마저도 여의치가 않았다.
식사 후 아침약을 복용한 엄마는,
떠나는 목포의 풍경도 못 본 채 곧장 객실로 가 누웠고,
엄마가 편안해졌음을 확인한 나는,
그제서야 현존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여객선 '퀸제누비아2호'의 갑판으로 나왔다.
여든넷 노모를 데리고,
목포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로 간다.
지금까지와 앞으로의 내 삶에서 회상이 될 어느 날임에는 틀림이 없다.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도시, 목포에 참 많이도 왔다.
천사대교 건너 다이아몬드제도의 섬들로 가기 위해,
다이아몬드제도의 섬들에서 배를 타고,
목포해상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그리고 오늘은 제주도를 가기 위해...,
08시45분 퀸제누비아2호는 삼학부두를 이탈했다.
목포항을 빠져나와,
진도와 가사도 사이, 진도와 하조도 사이 해협을 관통해,
제주도로 가는 망망대해 장장 다섯시간의 긴 항해에 들어섰다.
분명 나는 지금 아름다운 시절 속에 있다.
엄마와 목포에서 제주도로 가는 뱃길에서,
엄마는 풀풀 잠이 들었고 잠이 오지 않는 나는 선상을 서성인다.
진도와 가사도 사이 해협을 지날 때쯤,
맑은 하늘이 점점 구름으로 가려지기 시작했다.
내일은 비가 많이 내릴거라 했고,
이럴 때 기상청의 예보는 틀린적이 없다.
제주도에 비가 와도 상관은 없다.
내 차를 가지고 가는 제주도이기에...,
여든을 넘긴 엄마를 데리고 이미 세 번을 간 제주도,
거기에 더하여 우도와 가파도 그리고 마라도로 가는 뱃길에도 올랐기에,
이번에 간들 딱히 서성일 곳은 없고,
국립제주박물관을 방문하고 산방산에서 온천욕이나 하면 그만이다.
그러한 떠남에도 설레임은 인다.
두 시간여 떡실신에서 정신을 수습해,
폰에 지도를 띄우니 내가 있는 위치는 제주항부근이었다.
13시30분 퀸제누비아2호는,
4시간45분의 항해를 끝내고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제주항 제6부두에 접안을 했다.
나는 또 엄마를 데리고,
이번에는 목포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로 왔다.
이러함이 내 생인기라~
한국뱃길 시리즈 39 「목포 삼학부두 → 제주항」
□ 항해거리 : 93마일 / 4시간45분
□ 운항선사 : 씨월드고속훼리(주) 퀸제누비아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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