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이 될 길의 기록
해파랑길 1코스 - 승두말에서 미포 본문
강물처럼 흘러가는 세월이다.
그냥 그렇게 세월따라 나도 흐르고 있다.
느리지도 바쁘지도 않았고,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았다.
아직은 청춘이고 싶고, 늙어가더라도 잘 늙어가고 싶을 뿐이다.
하루가 끝나면 어딘가에서 서성이고, 주말이 오면 또 어딘가에서 서성인다.
심심해서 오르는 산은 내가 나에게 가하는 학대였다.
편안하게 술집에서 마셔도 될 술을 구지 텐트를 치고 마실 이유도 사라졌다.
부산의 승두말에서 동해안을 따라 고성의 말무리반도로 이어지는 트레일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서성이더라도 길에서 서성여야지..., 싶었다.
해파랑길 1코스 - 승두말에서 미포 (2016.09.10)
약 600km에 달하는 선을, 약 800km로 늘려 50마디로 쪼개 놓았다.
득은 쌓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지은 죄는 씻는다는 마음으로 끝까지 가 보리라!!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했음 좋겠고,
혈연, 지연, 학연, 사회연 이런 분류의 인연이 아닌 다른 인연도 길에서 한 번 만나고 싶다.
그리고 이 고행을 행함에 있어 염원이 있다면,
엄마가 지금의 모습으로 늘 내곁에 머물러 주길 바라고 또 바란다.
2016년 9월 10일 08시30분 집을 나와,
부산 시내버스 중 최장의 선형을 가진 131번을 타고 선의 시점인 오륙도해맞이공원에 닿으니 11시18분이었다.
강물처럼 흘러 온 세월을 거슬러 오르는 심정으로 해파랑길 첫 걸음을 뗐다.
제주올레는 대한민국 트레킹 테마의 시작이었다.
벤치마킹된 제주올레는 테마의 부족에 시달리던 각 지자체에 희망의 길이 되었다.
부산 역시도 해안을 중심으로한 길들을 엮어 갈맷길이라 명명했다.
해파랑길 1코스는 갈맷길 8-2구간으로도 설정이 되었다.
그래서 두 번을 걷는다.
아니 세 번인가?
제법 걸어오니, 바다 건너 마린시티가 보인다.
어제 내린 비에 질퍽해진 해안산길,
앞서 가는 사람들을 제낄 여유조차 없는 좁은 길,
나름 속보(4.8Km/hr)로 해안산길이 끝나는 동생말까지 왔다.
12시35분쯤 도심의 해안도로에 들어섰다.
걸어야 할 길들도 보였지만, 내 살아온 날들도 보였다.
장어구이가 일품인 섶자리 어촌계를 지난다.
13시15분, 광안리해변을 지난다.
떠나는 여름을 붙잡은 사람들이 흐린 하늘밑 멋 없는 바다를 배회하고 있었다.
부산광역시 수영구의 자매도시를 중,
울릉도에서는 3박의 야영으로 섬의 일주와 성인봉을 올랐고,
구례에서는 2박의 야영으로 피아골에서 주능선으로 올라 성삼재를 갔다오기도 했다.
수영강 하구에서 광안대교는 동래방향과 기장방향으로 나뉜다.
교량은 두 갈래로 나뉘지만, 길은 그 교량밑을 지나 다시 해안선을 따라가게 해 놓았다.
동백섬을 지나면 미포가 보일테지만,
아직 수영강도 건너지 못했는데 조금은 걷기가 싫어졌고 무엇보다 따분했다.
아직 남은 거리도 만만찮은데...,
다이나믹 요즘이다.
다이나믹이 없던 시절엔,
목욕을 하고, 짜파게티를 먹고, 전국노래자랑을 보고,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통닭을 시켜 맥주를 마시고, 개콘을 보고나면..., 그러면 일요일은 끝났다.
휴일이면 매주는 아니어도 산에 자주 올랐다.
산을 지우개로 삼아 머리속에 든 잡다한 상념들을 지우고 싶었지만,
막상 오름이 시작되면 빨리 정상이 나타났음 좋겠다는 그 생각만이 간절했고,
내림의 길에서는 오름보다 더 지루한 조바심에 지우개는 개뿔이고 인내의 한계에 달한 짜증만이 났다.
수직의 굴곡에서 해방된 길이라서 그런지,
영화의 거리에서는 자연스레 한국영화에 대한 비평을 시작했다.
"친구"와 "명량"이 왜 천만을 넘었는지? 도통 이해불가였다.
바름이라고는 없었던 놈들의 성장기..., 졸작이었다.
그저 이순신에 기댄 관객몰이..., 졸작이었다.
그러했음에도 천만이었다.
파제벽에 일정 간격으로 도열된 영화 판넬들이 혼자 걷는 따분함에 솔솔한 재미는 주었다.
APEC하우스까지 왔고,
돌아보니 걸어 온 길이 제법 멀게 보인다.
거둴난 근력을 지루함이 채우니 지침은 배가 된다.
걸어도 나오지 않는 미포는 이사를 갔나? 싶었다.
동백섬을 돌아 드디어 해운대해변에 접근을 했다.
종점인 미포도 보였다.
풀린 다리로 해변을 터벅터벅 지나는데 족욕장이 보였다.
잘 됐다 싶어 족욕장으로 올라서니, "신발을 벗고 올라와야지" 하며 영감 하나가 핀잔을 준다.
내 보기에 구지 신발을 벗고 탕의 부근으로 오를 이유도 없는데, 말이다.
순간 상당한 불쾌감이 성질을 돋군다.
좋은 기분 망치기 싫어 그냥 돌아섰지만,
저런류의 영감들 때문에 사회적으로 행하는 어른 공경은 차별성을 가져야 됨을 또 한번 느꼈다.
해파랑길 시작이어서 오늘 참았다.
영감탱구 오늘 운 좋은줄 알아라! 그러고 싶었지만, 그 마저도 참았다.
16시 정각, 1코스 종점인 미포에 도착을 했다.
강물처럼 흘러가는 세월에서 긴 선의 마디 하나를 거슬러 올랐다.
이 마디가 계속 이어지길..., 나는 나에게 바랬다.
나는 더 이상 없는데...,
아직도 길에 묻어 있는 내가 추억속을 서성이고 있는 조금은 가슴 시린 해파랑길 1코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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