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이 될 길의 기록
성삼재에서 소막골 - 1박2일 지리산 성대종주 본문
지난해 4월,
유평에서 중봉을 거쳐 천왕봉을 오른 다음,
장터목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삼신봉을 거쳐 청학동으로 내려오고자 했다.
막상 써리봉으로 오르는 초입에서,
겨울 동안 이렇다 할 산행을 하지 못한 걸음의 중압감과,
치밭목에서 천왕봉까지의 구간이 산불통제기간이라 산에 들지 못했다.
준비한 먹거리들을 소막골에서 소진시키고,
텅빈 야영장 데크에서 둘이 한 숨 오지게 퍼질러 잔 후 그렇게 산을 내려왔다.
그리고 1년 4개월이 흘렀다.
지리산이 그리워졌고 마음에 머물고 있는 번뇌 하나를 떨쳐내고자 그 산으로 갔다.
성삼재에서 소막골 - 1박2일 지리산 성대종주 (2016.8.4~5)
1. 산행요약
1) 제 1일차(2016년 8월 4일)
○ 이동(집→성삼재)
05:05 서창(자차) → 05:20 금정체육공원(도보) → 05:30 노포역(지하철) →
07:00 부산서부시외버스터마널(영화여객) → 10:45 구례터미널(농어촌버스) → 11:08 성삼재
○ 산행(성삼재→벽소령대피소)
11:20 성삼재 → 11:55 노고단대피소 → 12:10 노고단고개 → 13:05 피아골삼거리 → 13:55 노루목 →
14:17 삼도봉 → 14:48 화개재 → 15:35 토끼봉 → 17:05 연하천대피소 → 18:35 벽소령대피소
2) 제 2일차(2016년 8월 5일)
○ 산행(벽소령대피소→대원사)
07:10 벽소령대피소 → 08:15 선비샘 → 09:11 칠선봉 → 10:00 영신봉 → 10:15 세석대피소 →
10:45 촛대봉 → 11:50 연화봉 → 12:05 장터목대피소 → 13:25 통천문 → 13:45 천왕봉 →
14:20 중봉 → 15:08 써리봉 → 16:04 치밭목대피소 → 18:45 유평 → 19:10 대원사
○ 이동(대원사→서창)
19:10 대원사(도보) → 19:30 대원사버스정류장(부산교통) → 20:40 진주시외버스터미널(경남버스) →
22:40 부산종합터미널(도보) → 23:00 금정체육공원(자차) → 23:25 서창
화엄사를 산행 시점으로 염두에 두었지만,
구례에서 1박을 하지 않는 한 당일 10까지 화엄사에 도착이 될 방법이 없었다.
더불어 무넹기까지의 긴 오르막을 혼자서 오를 인내도 없었다.
그래서 화대종주가 성대종가 됐다.
휴가시즌이라 그런지,
구례터미널에서부터 지리산을 찾는 이들이 제법 보인다.
줄거면 그냥 줄걸..., 하는 후회도 들었지만,
성삼재 길목을 장악한 채 몇 십 년째 자행되고 있는 천은사의 갈취에 화가 치밀어 큰소리를 내고 말았다.
유순한 마음으로 산에 들고 싶었는데, 말이다.
지리산이 동네 뒷동산도 아니고,
종줏길이 반나절 거리도 아니기에 보름 전부터 나름 체력을 다듬었다.
득분인지는 몰라도,
올를 때 마다 지루하기만 했던 성삼재에서 노고단고개까지의 길이 가뿐하다.
해마다 여름이면 달궁에 왔었고 달궁에 오면 노고단은 꼭 올랐다.
그 많은 이정푯말이 붙은 기둥 중 유독 피아골삼거리에 위치한 기둥만이 심하게 기울어져 있다.
피아골에서 오른 이들이 그랬을까?
그랬다해도 이해를 해줘야 한다.
산, 산, 하는 사람들은 화엄사에서 대원사까지 당일 종주도 한다지만,
그게 내게는 접근시간 0.5일을 뺀 1박1.5일도 성립이 불가한 신의 산행이다.
짊어짐의 가중되는 고통을 알기에,
최소한의 채비만을 꾸렸고 식수는 산이 내어주는 것에 기대기로 했다.
삼도봉에서 반선에서 올라 왔다는 부녀를 만났다.
시집 갈 나이가 된 딸이 아버지에게 퍼붓는 구박이 부럽다.
계획한 구간별 도착시간이 조금식 늘어진다.
삼도봉에서 데크계단을 따라 쭉 내려간다.
힘들게 오른 고통이 보람도 없이 내려간다.
화개제를 거쳐 다시 한참을 오르니 얄미운 토끼봉이 짠 하고 나타났다.
한동안 산을 외면하고 산 세월이었구나 싶었다.
"야이~ 토끼봉" 하면서 푯말뚝을 툭 쳤다.
나는 노고단에서 천왕봉을 향해 걸었고,
인사를 주고받으며 스치는 사람들은 천왕봉에서 노고단으로 향한다.
나처럼 혼자 걷는 사람도 있었고,
지인 몇몇이 또는 가족 혹은 연인끼리 걷는 사람들도 있었다.
평일이라 그런지 떼거지들의 그 추한 작태가 보이지 않아 더 없이 호젓한 산길이다.
갑자기 나타난 꺼벙이 한마리가,
몇 발짝 앞에서 마치 길 안내를 하듯 종종 걸음으로 앞서 가고 있다.
그 모습을,
나무가지에 앉아 도토리를 까 먹고 있는 다람쥐가 보고 있었다.
재작년 주능선종주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스친 연하천대피소가 확 바뀌어져 있었다.
다음에 지리산을 걷게 된다면 꼭 이 곳에서 산잠을 한 번 자고 싶어졌다.
의외로 어린이들이 많았고,
이른 저녁이지만 밥 짓는 풍경이 산속이라 그런지 더 정겨워 보였다.
오늘밤 정처로 삼은 벽소령에 빨리 도착을 해 나도 저러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연하천을 돌아나오니 벽소령대피소가 희미하게 보였다.
나도 모르게 걸음은 빨라졌고 마음엔 조바심이 인다.
대피소에서 도착여부를 묻는 전화가 오기 전에 도착을 하려했지만,
도착 15분 전 전화는 오고 말았다.
시점을 화엄사에서 성삼재로 바꾼것이 천먼다행이었다.
만약 화엄사에서 무넹기로 올랐다면 오늘의 정처는 성삼재가 되었을 것이다.
11시20분 성삼재를 출발해,
17Km 7시간15분을 걸어 18시35분 벽소령대피소에 도착을 했다.
자리배정을 받고,
저녁꺼리를 가지고 야외테이블로 나오니 오늘 내가 걸어 온 능선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소주 몇잔을 마시다 잠시 벤치에 누웠는데,
이 보다 더 좋을 순, 이 보다 더 행복 할 순 없었다.
운이 있었는지,
벽쪽 자리였고 옆의 분들 역시 코를 곯지않아 편안히 잘 잤다.
정신은 일어났는데 몸이 일어나질 않는다.
실눈으로 내무반 같은 대피소를 투시하니 같이 잔 절반 이상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남은 사람들도 곧 떠날 채비가 한창이다.
여긴 집이 아니라 대피소다.
그렇게 각인이 되니 벌떡 일어나졌다.
맛도 더럽게 없는 컵밥을 잔밥처리의 심정으로 억지로 삼키고,
07시10분 벽소령대피소를 출발했다.
흔히들 천왕봉에서 일출을 본다는 것은 삼대가 덕을 쌓아야 이뤄진다고들 했다.
덕을 쌓아준 윗대도 없을뿐더러 아랫대의 천왕봉 일출을 위해 덕을 쌓고 싶은 생각도 없다.
무엇보다 맨날 떠는 해를 구지 산꼭대기에 처올라 처볼 마음 더 더욱 없다.
08시도 채 안된 시각이었지만 천왕봉쪽에서 오는 사람들이 제법 스쳐지난다.
식 전 댓바람부터 산길에 삶의 파노라마가 바쁘게 돌아간다.
5.8Km 3시간여를 걸어 세석대피소에 닿았다.
대피소 앞 벤치에 퍼질러 앉아 하염없이 쉬고 있는데,
쉰을 조금 넘긴 남자가 대원사로 내려가는 길의 상태와 소요시간 등을 물어온다.
나도 초행길이지만,
준비를 함에 있어 알게된 사항들로 설명을 해 주었고, 나도 대원사에서 16:45분 버스를 탈거라 했다.
내 말에 남자가 알 수 없는 웃음을 짓는다.
구름 속 숨어 있는 세석평전과 연하선경을 오르내린 끝에 12시쯤 주능선의 마지막 대피소 장터목에 도착을 했다.
이제 천왕봉까지 남은 거리는 1.7Km...,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대피소는 시장통이었다.
그 틈에 비집고 듦도 그렇고,
그 틈에서 물을 끓이고 라면을 삶고 그런 지랄 행함도 그렇고,
대피소 마당에 앉아 마지막 남은 비스킷과 환타로 점심이랍시고 주섬주섬 먹었다.
매점에서 초코바 두 개를 사고, 비워진 물통을 채우고...,
아스라한 돌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제석봉을 지났음에도 구름 때문인지 천왕봉은 보이지 않았다.
길은 수직으로 서고, 숨은 거칠어지고, 옷은 땀으로 누추해지고...,
시들어 간다.
이제 천왕봉까지 0.7Km가 남았다.
천왕봉에 처음 오르는 것도 아니고,
이번 산행의 목표치도 아닌데 왜 이리 그 곳에 닿지 못해 안달이 생기는지 모르겠다.
통천문을 통과하니 천왕봉이 보였다.
후련하게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길을 내어주는 척, 몇 번을 쉬었는지 모르겠다.
난간에 기대어 머리를 쳐박고 있으니 내려오는 여고생이 위로를 전한다.
"아저씨 바로 저기에요, 힘내세요, 다 왔어요"
주능선길 25.5Km를 모두 걸었다.
시발~
생에 두 번째 천왕봉에 올랐다.
(어디서 이런 열정과 의지가 나왔는지 사뭇 의문스러웠다)
맥이 빠져 그런지 아무런 감격도 없었다.
(감격보다는 곧 닥칠 하산길이 걱정이었다)
산을 내려감에 있어,
계획대로 대원사로 가는냐? 아니면 중산리로 바로 가는냐? 잠시 갈등을 했다.
당초의 목표는 화대였고, 어제의 실천은 성대였고, 오늘 변덕은 성중?
그건 아니다 싶었는지! 걸음이 대원사로 향한다.
중봉을 지나자 건너 보이는 산에서 토목공사를 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는 내려왔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 잘못된 짐작이 하산길을 더욱 길고 더욱 지루하게 했다.
세석에서 만난 그 분의 웃음이 뭘 뜻했는지 알 수 있었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하산길이다.
내가 이 짓을 왜 하게 되었는지?
이 짓을 하지 않는다면 끝을 낼 수 없다는 사실이 절망으로 느껴졌다.
이런 멍청한!!
중봉을 지나 써리봉으로 내려서면서 본 토목공사장은 치밭목대피소였다.
이후 치밭목에서 유평까지의 내리막이어야 할 하산길은 절반 이상이 오르막이었고,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고, 기겁을 해도 또 오르막이 나타나는 심히 괴롭고 괴로운 하산길이었다.
대원사정류장에서 16시45분발 진주행 시외버스를 탈려고 한 계획은 말 그대로 계획이었다.
유평마을 500m 전,
계곡에서 10분정도 입수를 하고나니 19시30분 막차 시간도 맞추기 빠듯했다.
그래도 이제 산은 다 내려왔다.
19시30분에 진주로 가는 막차를 타지 못한다면 모든게 복잡해 진다.
유평에서 대원사까지, 대원사에서 소막골까지, 2.2Km 사력을 다해 걸었다.
두 번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길이었다.
치밭목에서 유평으로 내려오는 길에서는 중산리로 가지 않음을 줄기차게 후회했고,
지난 주능선종주때 거림으로 내려오면서 산을 미워했던 그 마음보다 두 배는 더 산을 미워했다.
다행이 소막골정류장에 도착을 하니 19시24분이었다.
진주로 가는 막차에 겨우 시들어진 몸을 실었다.
[총 산행거리]
성삼재---------------노고단고개---------------천왕봉---------------대원사---------------버스종점
2.5Km (2.5Km) 25.5Km (28.0Km) 11.7Km (39.7Km) 2.2Km (41.9Km)
악몽 같았던 산행이었다.
악몽을 꾼지 십여일이 지났다.
기록이고 나발이고 생각조차 하기 싫었던 그 산이 오늘에서야 지리산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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