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이 될 길의 기록
이순신길 02 - 낙동강하구 본문
살다살다 구포역에서 부산역으로 가는 무궁화호를 탔다.
것도 02시55분에...,
시대가 변했다해도 무궁화호는 무궁화호다.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간다는 것은 예비군훈련을 하루종일 받는 것과 다를바 없다.
녹초가 된 종주대를 무궁화호 열차안에서 만났다.
것도 03시에...,
아리랑길 002 - 가덕도1 (2017.11.18)
하튼, 악명 높은 부산역 총알들이다.
같은 부산사람으로써 민망할 정도로 주쎄리 처밟아 30분만에 길의 시점인 가덕도 선창마을에 도착이 되었다.
성인봉을 오르지 않고서는 울릉도에 갔다고 말하지 마라!
그 말에 현혹되어 나리분지에서 성인봉을 올라 도동으로 내려오면서 그 입을 찢고 싶었다.
연대봉을 오르지 않고서는 가덕도를 갔다고 말하지 마라!
그런 말은 없는데, 루트에 포함이 된 연대봉을 꼭두새벽에 곡소리를 내며 올랐다.
발 아래 펼쳐진 장군의 바다를 보고, 장군께 삼배를 올렸다.
제를 지냈음 음복은 당연한 것이었다.
근데, 너무 심하게 빨아 하산길에서 제법 힘이 들었다.
지양곡으로 내려오니 아침 햇살이 가덕도를 기분 좋아지는 섬으로 만들어 주었다.
보이는 바다에 펼쳐진 세상 풍경에 취한 뇌는 행복했다.
가덕도가 이리도 좋았단 말인가? 내심 놀라웠다.
이 아름다운 섬을 지척에 두고,
멀리 떠나 북적이는 인파속을 헤집고 다녀야 여행이고 탐방이었다.
같은 것일지라도 전라도에 있음 멋과 맛이 된다.
그럴지언데, 부산은 이 좋은 섬을 알리기는 커녕 왜 숨기고 있었는지? 싶었다.
비경 비경 햇쌌지만...,
못 본 풍경의 접함이 비로소 비경이었다.
갈맷길 5-2구간으로 설정된 가덕도 동부해안은 절경이었고,
해안산기슭 좁다란 오솔길을 오르내리는 가뿐 숨은 보이는 풍경에 느껴지지도 않았다.
낙석주의구간을 통과하니, 해안가 작은 기도원이 나왔고, 이내 눌차도로 건너가는 동선방조제가 보였다.
가덕도와 눌차도 사이의 내해를 눌차만이라고도 한다.
눌차만 만입부에는 두 섬을 연결한 동선방조제가 있었고,
피풍을 위해 방조제 사석더미에 앉아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 호호록쩝쩝후 눌차도로 들어섰다.
아리랑길 003 - 눌차도1 (2017.11.18)
눌차도 남부해안으로난 길을 걸어 선창으로 곧장 가면 좋으련만,
국수봉을 오른 다음 북부해안가에 있는 정거문화마을을 경유해 간단다.
사람 미치고 환장하겠더라~
만약 해파랑처럼 혼자 걸었다면 나는 벌써 신호동에 가 있었을텐데 하며,
사경을 해메이는 심정으로 섬의 뒷동산을 종횡으로 돌고 돈다.
눌차도-국수봉을 내려오니 정거문화마을이 나왔다.
이렇게 볕이 짧은 터에 뭣한다고 이래 집을 짓고 사노~ 그런 애잔함이 묻어 있는 마을이었다.
정거문화마을, 담벼락에 그려진 그림마저 애처롭게 보였다.
온 바다에 송창이 꽂혀 있었다.
굴과 가리비 생산을 위해 온 동네가 바다에 목숨을 걸고 있는듯 보인다.
14시25분, 천가교를 건너 출발지점인 가덕도 선창으로 돌아왔다.
영도의 1.4배에 달한다는 가덕도와, 가덕도의 1/20 크기의 눌차도를 각기 그 꼭대기까지 경유한 디질로드였다.
부근의 하나로마트에서 누군가 내 몫처럼 계산대에 올려 놓은 막걸리 한통을 들고 나와,
주차장에 퍼질러 앉아 망나니 칼질 직후의 꼴로 내리 두사발을 들이키니 그제서야 살 것 같았다.
그리고 섬을 빠져 나오려데, 굴집앞에서 오라는 손짓을 한다.
양식하는 꼬라지로 봐서는 그냥 줘도 안먹는다는 생각을 한 굴이었는데,
주인 여자가 담은듯한 김치에 굴 뭉탱이 하나를 싸 먹어니 그 맛이 가히 기겁을 할 만큼 맛이 있었다.
오전에 이어 오후 또 한번 취기에 사로잡혔다.
생굴회를 그냥 먹을 수는 없지 않는가...,
해수면에서 해발459m 연대봉을 오르고, 두 섬을 일주하였지만..., 길은 끝나지 않았다.
이순신길 02-1 눌차만에서 신호포구 (2017.11.18)
대한민국 최대의 항만이 자리해 있는 바다이지만,
불과 몇 백미터는 옆은 굴 양식장이고, 그 틈에서 사람들은 낚시마저 하고 있다.
바람도 불고, 길도 추줍고, 잠도 오고...,
딱 집에 가면 좋겠더라~
견마교를 지나 송정동 매립지 둘레길에 들어섰다.
석양빛 물들기 시작하는 그 길을 따라 1일차 종점인 신호신도시로 향하는 길은 참 지루했다.
17시경, 낯선 신호신도시에 도착을 하자 짧아진 겨울해는 사라지고 없었다.
근동이지만, 멀리 와 있는 기분의 신호동의 밤이었다.
장림포해전 (1592.10.04)
부산에 주둔한 일본군을 격멸하기 위한 조선 수군의 4차 출정중 치른 첫 번째 전투로,
적선 6척을 격침시켰다.
이순신길 02-1 신호포구에서 다대포 (2017.11.19) 「장림포해전길」
05시55분 숙소였던 y모텔를 나와 인근의 편의점에서 막걸리 한병을 사고 있으니,
'경기병~'하고 나를 찾는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인지 모두들 옷이란 옷은 다 껴 입고 나와 떠날 채비를 하고 계셨다.
입은 옷가지 외에는 달리 옷이 없는 나는, 어제 장갑마저 잃어 버려 손을 주머니 밖으로 빼지도 못한 채, 걸어야 했다.
일렬로 신호항을 향해 출발을 했고, 해가 나오기전까지 달달달 떨면서 걸었다.
[신호매립지 둘레길에 들어서니, 해가 나오고 있다]
진해의 작은 어촌이 이렇게 변했나..., 걷는내내 놀라웠다.
촌놈 출세했다가 아니라, 촌구석 도시 됐다 였다.
신호매립지를 한바퀴 빙 돌아 나오니 도로 건너에 어제 숙소였던 모텔 밀집지역이 보였다.
[신호대교 입구]
서낙동강 신호대교를 건너면 삼각주다.
낙동강이 지금의 대동수문 앞에서 두 갈래로 쪼개져 만든 섬. 그 섬의 남단을 걷는다.
지금은 부산시 강서구이지만, 내 어릴적에는 경남 김해군 대저읍이었고 내 본적지다.
감회 같은건 없고, 빨리 밥을 먹었어면 좋겠다는 생각이 조금식 들었다.
해미대장님...,
연등누님이 블로그에서
해미대장 해미대장, 할 때에 나는 당연히 남자로 각인을 했다.
몇년전 산청의 지리산부근 폐분교에서 그 산에 미친 마니아들이 모인 캠프가 있었다.
그렇게 지리산을 각별하게 생각하지 않은 나였지만, 운좋게 지인을 따라 할 일 없는 나도 참석을 했다.
그 때, 나물을 팔러 왔나? 싶은 차림의 할머니 한분이 등장을 하니 사람들이 존경의 눈빛으로 그녀를 환대했다.
지리산을 몇백번 올랐고, 비법정탐방로 어디에서도 천왕봉을 오르신다고들 치켜 세웠다.
해파랑 50코스에서 대장님을 처음 뵈었다.
산청 폐교에서 본 지리산여제의 포스도 있었지만 뭔가 분위기가 확 달랐다.
덕지덕지 눌러 붙은 자연의 떼를 무슨 훈장처럼 달고 있는 그들에 반해,
자연에서 묻은 떼 한점 없는 투명한 네츄럴색만이 선명 해 보였다.
반드시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롱런의 대열을 이끌기 바란다.
[매서운 강바람이 불지만, 어쩔 수 없다. 강을 건너야 한다]
[명지매립지둘레길]
[어제 새벽 오른 가덕도-연대봉도 달달달 떨고 있다]
[건너 온 신호대교]
어디가 바다고, 어디가 강인지 구분이 없다.
고니가 보이니, 강이겠지....,
선두는 선두대로 걸어 나가고, 후미는 후미대로 선두를 따라 걷는데...,
아침 운동을 나온듯한 아주머니 한분이 선두의 배낭에 달린 시그널을 보고 또 본다.
그러더니 대장님에게로 와 같이 걸을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법 진지하게 묻는다.
부산멤버가 한명 생기나 싶어 내심 반가웠지만...,
아침을 먹기 위해서는 피풍이 되어야 하고, 철새보호구역을 벗어나야 한다.
이 두조건을 성립시킬 곳이 쉽사리 나타나지 않아 한참을 더 걸어야 했다.
10km를 걷고 나서야,
길 건너 부산시수산자원연구소를 주차장 양지 바른곳에다 아침상을 차리고 모두들 희덕거렸다.
[배를 채우고, 을숙도를 향한다]
[울숙도대교(명지측) 하부]
[명지포구]
[을숙도로 들어 가는 하구둑]
[고가 횡단교를 건너, 을숙도시설내로 들어 갔다]
지척에 있어, 그동안 철저하게 무시한 곳들이 이채로움으로 다가 왔다.
그 동안, 무조건 차를 타고 내 사는 곳을 벗어나야 탐방이고 답사였다.
그렇게 무시한 낙동강하구가 이렇게 변해 있었다니..., 새삼 놀라웠다.
신호동에서 출발을 해,
신호대교를 이용 서낙동강을 건넜고, 하구둑을 이용해 낙동강을 건넜다.
이제 잘 조성된 강변대로 가장자리로 난 탐방로를 쭉 걸어 다대포로 가면 된다.
허나, 그 길이가 길어도 너무 길다.
[진짜 샌줄 알고 잡을뻔 했잖아...,]
추위도 추위지만, 뭔 바람이 이리도 쳐불어대는지...,
[을숙도대교(사하구측) 하부]
[다 왔어용~ 힘 냅시다]
[다대포 해변]
[드디어 다대포에~]
다대포해변 빈지로 난 데크길을 따라 몰운대로 간다.
산꾼들에게는 낙동정맥의 끝이라는 상징성도 있지만,
남해안길을 걷는 우리에게도 해안지선에 위치한 중요 포인트니 갈 수 밖에 없다.
[끝이 나도, 끝난게 아닌 기분은..., 아마도 축포를 너무 빨리 발사 했음이야]
[다대포객사]
[몰운대 입구]
[지도를 보니 쥐섬이라는데...,]
통영에 가면 무수한 섬들이 바다에 떠 있다.
그 수가 얼마나 많았으면 관리를 위해 욕지권, 한산권, 사량권, 추도권 등으로
섬들을 일정권역으로 분류를 해 놓았다.
어느날 지도를 보다가, 섬 하나를 발견 했다.
묘법연화경에는
「극락세계 연화대의 두미를 욕지코져 하거든 문어 세존하라」라는 불경 구절이 있다
연화도, 두미도, 욕지도 그리고 갈도 넘어 멀리 세존도까지 지도에서 확인을 하고나니 다소 놀라웠다.
연화도, 욕지도는 소시적에 가 봤고, 세존도는 입도가 불허라 간다해도 갈 수가 없었다.
두미도는 그 주 돌아 오는 토요일에 탐방을 했다.
두미도를 탐방하고 몇달이 흐른뒤,
사석에서 술을 마시다가 언 놈이, 은사님이 오시기로 했다며 양해를 구했다.
연배 차이도 나고, 주연에서 조연으로 된 기분이라 닥치고 쳐빨만하고 있었다.
그 은사님의 말씀 도중 갈도라는 섬의 명칭이 나왔다.
70년대 그 섬에서 2년정도 근무를 했고, 정말 폐쇄적이었고, 특이한 점은 주민들이 쥐를 숭배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두미도와 세존도 사이에 위치한 아- 그 섬이구나!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쥐섬이라 하니, 지난날의 그 기억이 떠 올랐을 뿐이다.
[몰운대를 돌아 나간다]
마지막 남은 에너자이저를 다 쥐어짜 몰운대를 한바퀴 돌고 나왔다.
몰운대를 돌아 나오는 길,
입에 개거품을 물고 시게 한번 당겨 보았지만, 다들 일정 간격을 유지하며 금새 따라 붙는다.
이 분들은 인간이 아니다.
아마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 기어 나오신 다음,
산부인과나 조산원을 퇴원할 때에는 엄마손을 잡고 걸어 나오셨을 것 같다.
[다대포 낙조분수]
[이순신트레일 2회차-종점 (부산시 사하구 다대동)]
13시 22분 다대포항 공판장에 도착 했다.
지난 1회차를 끝낸 지점이기도 했지만, 부산구간을 끝내는 지점이다.
리아스식해안으로 보기만 해도 "우쨌걷노" 싶었던 부산구간을 의외로 쉽게 끝을 낸 기분이다.
대장님의 뚜렷한 목표 달성을 위한 리더쉽이 빛을 발한 결과이기도 했고, 모두들 묵묵히 걸은 결과이기도 했다.
대방어 한마리와 제철이 시작된 숭어 두마리로 모두들 푸지게 먹어며 부산구간 완주를 자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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