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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이 될 길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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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길 - 낙도바닷길

아리랑길 011 - 남해도(5~6)

경기병 2018. 9. 5. 16:52

01시에 집을 나와 한 밤의 고속도로를 달려 삼천포터미널에 도착을 하니 02시쯤이었다.

이내 종주대가 도착을 했고...,

 

출발지점인 남해군 서면 노구리 유로로 가니 03시가 조금 넘어 있었고, 바다 건너 여수가 보였다.

 

 

 

 아리랑길 011 - 남해도5 (2018.09.01)  

사촌해변

 

19회차는,

 

남해섬 서부해안 가운데쯤에 자리한 유포를 출발하여,

77번 국지도와, 지방도 1024호선을 따라 남진을 하여 홍현리 부근에서 제1일차를 끝내고,

 

다음날, 

노도가 떠 있는 앵강만 해안지선을 돌아 벽련항으로 간 다음, 

바래길루트를 이용 두모, 소량, 대량을 거쳐 지난 17회차의 종점 상주해변에서 트랙을 종료 시킨다. 

 

 

 

[이순신트레일 19회차-시점 (경남 남해군 서면 노구리)]

 

 

각자의 계산은 달라도,

확실한건 이번 회차에서, 오륙도 동,남해 분기점 기준 1,000Km 지점을 통과한다는 것이다.

 

출발전 유포농산물집하장에서, 조용히 그 자축을 했다. 

 

남해읍에 차를 갖다 놓고,

다시 유포로 와, 04시32분 혼자서 제19트랙이 숨어 있는 어둠속으로 들어 갔다.

 

 

 

[바다 건너, 여수반도에 켜진 불빛]

 

 

 

 

 

 

 

 

나는 스스로 생각하건데, 의지를 떠나 실천이 참으로 어려운 사람이다.

그 예로 아직도 줄기차게 담배를 태우고 있다.

 

나는 스스로 생각하건데, 그 실천을 함에 있어서도 요령을 참 많이 피우는 사람이다.

그 예로, 남들은 770Km의 누적거리를 기록한다는 해파랑길을 나는 채 600Km를 채우지 못한다.

 

그런 내가 이순신길에서는 지금까지 모든 회차에 참여를 했고, 

100%에 가까운 트랙 준수율로, 어느새 1,000Km를 걸어 왔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건 아마도..., 이 누나 때문인 것 같다]

 

 

서상항 2Km전에 위치한 길가 쉼터에 다달았을 때,

해가 없이도 날은 밝았지만 잠시 소강 상태였던 비도 내리기 시작했다.

 

모기에게 두 방을 물리고 담배 두 대를 연달아 태우고 있으니, 빗속을 뚫고 남해안길종주대가 오고 있다.



 

 

 

 


 

 

 

서상항 입구에 있는 정자에서 아침을 먹었다.

비바람도 불고, 싸 온 도시락도 없고, 술도 없고..., 왠지 서글퍼지더라~

 

 

 

 

 

 

 

[둘은 어디를 가냤고?]

 

 

 

남해군은 대한민국 동계훈련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 중심에 서면에 조성된 '남해스포츠파크가 있고, 우리는 지금 그 곳에 들어 와 있다.

 

 

 

 

 

 

 

 

 

 

 

 

 

 

 

 

 

해안을 따라 쳐걷고 싶은 마음을 돋구는 길이 나 있었고,

쳐걷지 않는다면 절대 쳐볼 수 없는 비 내리는 바다를 보며 스포츠파크를 둘러 나왔다.

 

비야~ 제발 쫌 그만 내리면 안돼?

안돼!

이런 니이미~~

 

길에 빗물이 고이고,

바지를 타고 신발로도 물이 조금식 들어 온다.

 

장항을 지나고, 구미를 지나고, 아난티남해를 지날때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cu가 나타났다.

 

편의점 처마밑에 앉아 막걸리 한사발을 쭉 빨았다.

그러고나니 비가 좋아졌다.

 

 

 

 

 

 

 

 

 

[평산항]

 

 

 

 

 

 

 

남해안길을 걷다보면, 지워지고 있는 길에 들어 설 때가 종종 있다.

그 어떠한 지도에도 표기가 안된 길, 심지어 마을 주민들마저 잊고 있는 길.

 

남해군의 바래길은,

그런 길들의 잃어 버림을 막고자 만든 길일지 모르겠다.

도저히 길이 없을 것 같은 지형인데, 막상 수풀을 헤쳐보면 거짓말처럼 길이 나 있다.

 

새로운 길의 생김으로, 그 동안 중추적 역활을 다한 길은 사람들에게서 잊혀진 뒤안길이 된다.

 

남해군의 바래길은,

섬의 맨 처음 길이었고, 이제는 희미한 선만이 남은 뒤안길이 된 길이었다. 

누군가 걷지 않는다면, 어쩌면 지워지는 길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 길을 유지하려 하는 남해군과,

그 길을 애써 걷고자 트랙에 반영을 한 해미누나,

득분에 의미 있는 바닷길 하나를 걸었다.

마이 마이 마이 로드 부라보~~

 

 

바닷가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행위를 "바래"라 하였고,

바래를 위해 어머니들이 다녔던 길들을 연결하여 "바래길"이라 했다.

 

바래길 주제곡이 "섬 집 아기"가 되었음 좋겠다.

 

 

    

 

 

 

 

 

 

[사촌해변 가는 길-1]

 

 

 

 

[사촌해변 가는 길-2]

 

 

[사촌해변-1]

 

 

[뭐야~ 거서 와 보이노?]

 

 

[허허이~ 만다고 거서 그라고 있노?]

 

 

[진정한 남해안길의 트래커야~]

 

 

 

 

 

이번 회차는,

칠흑 같은 어둠 속 장대비를 뚫고 불명확한 길의 유무를 감수한 채,

산으로 들어 갈 수는 없어 시점과 종점을 반대로 역보하는 트랙이다.

 

12시쯤, 당초 1일차 종점으로 설정된 사촌해변에 도착을 했다.

 

설정된 트랙은 무조건 걸어야 하는 해미누나와 몇몇분은 유구마을에서 해안으로 내려 갔고,

내려 가면 올라와야 함이 고달픈 나를 비롯한 몇몇분은 지방도를 따라 사촌으로 갔다.

 

텃세인가?

지도 토착층에 속함을 내세운 고양이가 연신 먹을 것을 요구하고,

개와 돼지가 종의 기원을 무시한 채 탄생을 시킨듯한 착한 동물이 어슬렁거리는 정자에서,

점심을 먹었다.

 

 

 

[사촌해변-2]

 

 

[선구마을 가는 길]

 

 

[다랭이마을 가는 길]

 

 

 

 

[설흘산과 다랭이마을]

 

 

 

15시쯤, 산을 옥답으로 만든다고,

한 평생을 얼반 생고생을 한, 조상님들 득에 더 없이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는 다랭이마을에 도착을 했다.

 

몇 번 쳐 왔기에 감흥이고 나발이고는 없었고, 막걸리에 파전이나 쳐묵했음 하는 생각과,

1일차 종점 홍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이 좋았을 뿐이었다.

 

 

 

 

 

[홍현리 가는 길]

 

 

 

 

 

 

 

 

 

 

 

 

 

 

 

 

 

가천에서 홍현리로 가는 길, 위로 지방도가 있었지만 풀숲으로 난 바래길을 걸었다.

 

위험한 해안비탈을 내려 가,

해산물을 채취 해 그것들을 이고,

지금 내가 걷는 길을 걸어 자식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간 그 어머니들이 가여웠고...,

 

집에 있는 엄마도 생각이 났다.

 

나는 감히 말한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될 수 있음에는,

바래길을 매일 같이 걸어, 자식들을 키워 낸 그 어머니들이 있었음을!

 

아버지는 뭐 했냐고?

그건 내 알바 아니고 모르겠다.

 

 

 

[노도]

 

 

 

 

 

 

 

제법 많은 비가 내렸고,

그 빗속 남해섬 서부해안 35km를 남진하여, 17시30분 흐린색이 선명해서 더 시린 홍현리에 도착했다.

 

하루 왠종일 그 많은 비를 받아 낸 바다도,

그 비를 뿌린 하늘도,

그 하늘밑 그 바닷길을 걸은 나도,

모든 것에 짙은 회색이 한껏 베여 있었다.

 

저물녁이 되었을 때는 더 짙어진 회색의 몽환에 사로잡혀,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아마도 돌아 버렸을 것 같았다.

 

보슬비는 내리고, 날은 저물고, 집에는 갈 수 없고...,

뭐 그 따위 기분에, 에라이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주쎄리 퍼마셨다.

 

 

 

 

 

 

 

 

흐린색의 시림을 못 견뎌, 있는 술 없는 술 다 퍼마시고 떡실신을 한 밤에,

자카르타에선, 참새 잡고자 대포부대를 파견한 대한민국 남자축구와 야구가,

군대 안갈라고 입에 개거품을 물고 그 위대한 목적을 이뤘다.

 

 

1988년 5월쯤인가? 망미동 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았다.

내 복부에 있는 수술자국을 본 군의관은 수술증명서를 떼 오라고 했다.

몇일뒤, 수술증명서를 떼 가니 6개월 복무의 5급 방위병 판정이 났다.

군의관에게, 나는 100m 달리기도 자신 있고 팔굽혀펴기도 50개는 한다고..., 의지를 표명했다.

군의관이 배시시 웃으며, 병적기록부에 금방 찍은 5급에 빨간줄을 긋고 30개월 복무의 1급 현역병으로 바꿔 줬다.

 

늠름하게 집으로 돌아 와,

당당하게 부모님께 그 말을 하니, 재떨이와 파리채가 동시에 날아 왔다.

 

 

 

 아리랑길 011 - 남해도6 (2018.09.02)  

앵강만과 노도

 

 

홍현리에 무엇인가 그리워질 때 다시 와야지..., 하면 제2일차 길을 나섰다.

 

 

 

[제2일차 시점(남해군 남면 홍현리)]

 

 

 

 

[두곡방파제]

 

 

 

 

 

 

 

이제는 토요일 오후 보다는, 일요일 아침의 걷기가 더 좋다.

물론 어느 시점에서 더 좋은 길이었냐?가 중요하지만...,

 

이순신트레일로 나오지 않은 일요일 아침은 끝까지 퍼질러 잔다.

마치 누가 늦게 일어나냐를 두고 시합을 하는 것 처럼...,

그리고 부시시 일어 나 밥을 먹고 또 쇼파에 누워 멍하니 테레비를 본다.

 

이순신트레일로 나온 일요일 아침이면,

이건 새나라의 어린이보다 더 일찍 일어 나,

테레비 대신 모든 것이 풍경이 되는 남해안을 누리며 해안트레킹을 하고 있는 나를 만난다.

 

그래서, 이제는 일요일 아침의 남해안길 걷기가 정말 좋다.

 

 

 

[미국마을앞 들판으로 난 길 (앵강다숲 가는 길)]

 

 

[앵강만과 노도]

 

 

[화계방파제]

 

 

앵강다숲의 제1숲이 있는 화계에서 아침상을 깔았다.

 

참치볶음밥을 한숟가락 먹고 배낭에서 뭘 꺼집어 내고 나니, 후라이팬만 있더라~

다음번에 더 많이 만들어주지!!

 

 

 

[앵강다숲 제2숲] 

 

 

[앵강다숲 제3숲] 

 

 

 

 

[원천방파제]

 

 

[미쎄스고구마? & 미쎄스마늘?]

 

 

[앵강다숲 제4숲] 

 

 

2018년 9월 2일, 앵강만 아침길은 더 없이 좋았다.

 

바다에서 불어 오는 바람에는 가을이 이미 묻어 있었고,

숲의 나무들은 곧 떨어질 잎사귀들과 헤어질 준비를 하는지 무심해 보였다.

 

만의 내선을 돌아 나올때는, 앵강만이 너무 작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쉽기까지 했다.

 

 

 

[벽련항 가는 길]

 

 

[원천항]

 

 

 

 

 

 

 

 

 

 

17회차 북미조항에는,

국토를 세로로 종단하는 3번과 19번 두 국도의 시점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었다.

그 중, 하나인 19번 국도를 따라 벽련항으로 간다.

 

국도를 따라 최종 목적지 상주로 가면 8km 남짓이지만,

이순신길은 남해안길은 해안지선을 고수해야 함이 원칙이라 벽련마을 입구에서 국도를 버렸다.

 

 

 

 

 

[길마저 버리고...,]

 

 

[앵강만 건너 어제의 길들이 설흘산 아래로 보인다]

 

 

19회차 시점인 유포가 있는 서면에서 시작을 해,

남면과 이동면 그리고 상주면까지 남해군의 총 4개면 해안지선을 따라 걷는다.

그리고 이제 벽련에서부터는 앞서 언급한 바래길로 설정된, 숲에 숨어 있는 옛길들을 찾아 걸어야 한다.

 

길의 일부가 사유지라 표시물도 재대로 부착하지 못한 사정에,

길 마저 막아 놓은 소유주의 재산권 행사에 더하여 관리주체들의 다소 미흡한 안내체계 등등,

그 모든 것을 감수하며 7km를 걸어 가야 한다.

 

당초에 계획한 12시 상주해변 도착은 이미 성립이 불가해졌고,

15시 서울행 버스나 무탈하게 탑승이 되기만을 바라며, 진등산으로 들어 갔다.

 

      

 

[두모 가는 길]

 

 

 

 

 

 

[두모 포구]

 

 

 

 

 

 

 

 

 

 

 

벽련에서 두모로 가는 바래길,

길의 초입에 있는 밭은 철책으로 둘러처져 있었고, 그 다음 길목엔 타조까지 방사를 해 놓았다.

 

한 동안, 그 길의 입구를 찾지 못해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물론, 아무리 다수를 위한 것이라 해도 개인의 재산권은 보호가 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허나, 그 재산권 보호에 있어 피해의 우려가 없다면 조금의 배려는 더 없이 고마울 것이다.

안타까운 바래길의 길목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애써 작목을 한 수확물일수도 있는데, 쉽게 손을 데고...,

누군가의 소중한 공간일수도 있는데, 비워져 있다고 막 들어가고...,

그러했기에, 더 이상의 배려가 없을 수도 있겠지!

 

 

 

[대량 가는 길]

 

 

 

[소량 포구]

 

 

 

[상주해변 가는 길]

 

 

 

 

 

벽련에서 두모, 소량, 대량을 거쳐 상주로 가는 길,

해수면에서 시작해 해발 170까지의 고저차가 주는 고달픔을 안은 채,  

산에 숨어 있는 숲길과, 끝이 없을 것 같은 아스팔트고갯길을 번갈아 가며 걸었다.

 

때론 길을 잃어버려 숲을 헤메이기도 했고,

때론 네발로 산을 기어 오르는 내 모습에 웃음도 났고,

다리에 경련이 일어 오도가도 못하는 해미누나의 안스러움에 다가갈 힘 마저 없어졌지만,

길이 있어, 걸어감에 후회는 없었다.

 

그리고, 13시를 조금 넘긴 시간 19트랙의 종점 상주해변이 보였다.

 

 

 

[이순신트레일 19회차-종점 (경남 남해군 상주면 상주리)]

 

 

 

남해터미널에서 쏵 씻고, 터미널내 기사식당에서 조금은 늦은 점심으로 김치찌개를 먹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김치찌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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