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이 될 길의 기록
이순신길 14 - 여자만(1) 본문
해를 따라 서쪽으로 간다.
불멸의 삼도수군통제사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1545~1598)장군께서 살다가신 그 바닷길을 잇는다.
내게 걷는 기분을 들게 한 길은 해파랑이었다.
내게 길의 나아감에 대한 모티브를 부여시킨 사람은 해미누나였다.
다시 남해안길종주대에 합류를 했고, 그들은 가막만을 지나 여자만에 들어 서 있었다.
道方急 愼勿言我夜行
길이 급하니, 내 밤의 행로를 알리지 마라!
이순신길 14 - 순천만에서 벌교만 (2018.12.15)
2018년 12월 15일 01시,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복산리 863번 지방도 신흥분교장 부근을 시점으로 정하여,
여자만(汝自灣)의 순천만습지를 둘러 17시06분 보성군 벌교읍 벌교역까지 54.1km를 걸었다.
낯선 밤하늘에 초롱이 박힌 별빛에 의지해 23km를 어둠속을 뚫고 나가니 순천만이었다.
여명 속 8km를 더 걸어가니 여자만이 고히 간직한 화포가 나왔고, 그 곳에 해미누나가 있었다.
[이순신트레일 23회차-시점 (전남 여수시 소라면 복산리)]
원래는, 05시30분쯤 순천만습지에서 25회차에 나서는 남해안길종주대를 만나기로 했다.
부산에서 순천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의 출발시간은 22시30분이고,
00시30분 전·후에 도착을 해 종주대가 올 때까지 3시간30분여를 기다려야 한다.
나는 이순신트레일의 여수구간 4/5를 걷지 않고 있는 상태였고,
00시40분 여천에서 버스를 내려 기다리는 대신에 차라리 걷자라는 심정으로 택시를 탔다.
최대한의 속보로 걷는다면 07시쯤, 종주대와 화포부근에서 조우가 될 것 같았다.
나는, 나름 겁대가리를 상실한 삶을 살았고 살고 있다.
칠흑 같은 한밤중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한번도 가 본적 없는 길을,
희미한 렌턴 불빛과 숙지한 루트를 뇌에 장착하여 걸어가는데 어시시한 기분듦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맨 배낭에서 가끔식 장비들 부딪히는 소리가 났고 그 소리들에도 예민해진다.
길가 산기슭 풀섶에서 푸드득 날아오르는 새들의 날개짓에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와중에 별똥별은 왜 그리도 많이 떨어지는지...,
[이 손모가지 조형물도 무섭더라~]
드디어 첫 번째 맞이하여야 할 갈팡질팡 지점에 도착을 했다.
앞으로의 이순신트레일에서,
해상교량이 있어 입도가 가능한 섬들은 무조건 둘러 나온다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다.
01시30분쯤에 맞닥트린 달천도와 달천교!
가야 할 길이 멀고 지체 할 시간 없음을 떠나,
이 한밤중에 저 다리를 건너 불꺼진 섬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현실이 되었다.
압박감은 어느새 두려움으로 변했지만, 디지더라도 들어 가 보자~
최대한의 속보로 달천교를 건너 불꺼진 섬에 입도를 했고,
섬의 땅 두 발짝을 잽싸게 밟고 그대로 돌아섰다.
오장육부가 다 쫄깃해지더라~
나중에 종주대를 만나 손모가지 조형물 이야기를 하니,
먼저 걸은 그들은, 그 쯤이 여자만 바닷길에서 최고의 풍경이었다고 했다.
허나, 무수한 별똥별 떨어지는 한 겨울의 캄캄한 새벽 바닷길을 오롯이 혼자 걷는 기분도 좋았다.
[진목 부근]
반월마을에서 소댕이까지 가는 해안도로를 버리고, 지방도 863호선을 따라 두봉교를 향한다.
한 밤중 그럴려니 하고 달리는 차들이 나를 발견하면 놀랄 것이고,
나 역시 안전에 민감해져야 한다.
허나, 시간이 시간인지라 3km여를 걷는 동안 도로를 달리는 차들은 딱 한대뿐이었다.
두봉교를 지나면 행정구역은 다시 순천이다.
9할 이상을 미답으로 남긴 채 여수반도를 빠져 나왔다.
앞으로의 이순신트레일에서 나는 얼마나 더 여수를 찾아야 할지...,
[두봉교 (여수시 율촌면 상봉리 / 순천시 해룡면 성내리)]
2km를 가면 와온해변이 나오고,
와온해변이 나오면, 순천시의 걸작 남도삼백리길에 들어선다.
3km 더 가면 용산전망대가 나 올 것이고,
용산전망대를 넘어서면 순천만습지이고, 그러면 종주대와 만난다.
그게 암흑 속 유일한 희망의 빛이다.
[용산전망대]
뭣이 보여야 갯노을길이고, 남도삼백리길이고, 용산전망대고, 순천만습지이지...,
어둠에 숨은 풍경 속, 밤의 길 20km를 걸어 용산전망대에 올랐다.
03시30분경 순천터미널에 도착한 남해안종주대에게 먼저 출발을 권고 했다.
[용산전망대→순천만습지]
조금은 헥헥대며 용산전망대에 올랐고, 조금은 지루하게 전망대를 내려왔고,
일 없이 습지내 미로 같은 데크 탐방로를 빙빙 돌았다.
습지내 망각의 강처럼 흐르는 개뻘의 수로를 건넜다.
시간은 06시, 걷기 시작한지 5시간이 지났지만 종주대와 조우를 할려면 지체 없이 걸어야 한다.
철새의 보호를 위함인지, 사람의 보호를 위함인지?
길목마다 설치되어 있는 차단휀스를 뚫고 대대들 해안지선을 1시간여 걸었다.
07시쯤 날은 밝았고, 대대들 해안을 거쳐나와 별량장산마을 어귀를 걷고 있다.
조금식 보이기 시작하는 여자만의 풍경이 장관이다.
더하여 일출 전 바다에 그려지는 여수반도 산그리메에는 넋이 나가버렸다.
내가 본 최고의 바다 풍경이지 않나! 싶을 만큼...,
07시30분 31km를 걸어 남해안길종주대가 아침을 먹고 있는 화포에 도착이 되었다.
오랫만이었다.
순천에서 보성으로 가는 해안길,
여자만이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였는지? 실감을 한다.
갯벌의 바다색에 매료된 사람들에게 질투를 느꼈는지? 하늘색 또한 그 색이 절정이다.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을 감수하면서까지 남해로 오는 사람들,
오늘 바다와 하늘은 그들에게 내어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내어주고 있는 듯 했다.
담배가 떨어졌고, 40km여를 걸어 온 발에서는 물집이 잡히는지 걷기가 다소 불편해졌다.
군도를 이용해 벌교대교로 곧장 가, 한숨 퍼질러 자면서 대열을 기다릴까?도 싶었다.
[용두방조제]
용두방조제에서, 해미누나표 과메기무침을 김에 싸 푸지게 먹었다.
볕이 참 좋은 곳이었다.
방조제를 쭉 따라 2번국도내 동막2교를 건너니,
이순신트레일의 12번째 도시 보성군이었고, 맵을 보니 종점 벌교는 기어서라도 갈 것 같았다.
양식장이 나왔고, 사람들은 두갈래로 나뉘어진 벌교만 초입을 향해 저마다 선택한 길로 갔다.
신발을 벗어 배개로 삼고, 길에 누웠다.
얼마나 잤을까?
서나대원의 전화에 잠이 깼고,
아무도 보이지 않는 들판길을 걸어, 먼 발치에 보이는 벌교읍을 향해 걸어 나갔다.
가다쉬다를 수 차례 반복한 끝에 남해고속도로 벌교대교 하부에 도착을 했다.
신발을 벗어 오른쪽 발바닥을 확인하니 물집투성이다.
손톱으로 생체기를 내어 물집을 짜 내고, 에라이~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또 길가에 드러 누웠다.
그렇게 또 한참을 길에서 퍼질러 잤다.
[아스라히 보이는 벌교읍내]
[벌교시장 부근]
15시50분쯤 일어나, 벌교읍 대도모텔 301호를 찾아 가는 길은 고행이었다.
17시쯤 벌교역부근에 도착을 하고, 저물녘 벌교천변에 쪼그려 앉아 노을지는 하늘에다 담배 연기를 뿜어됐다.
아무런 생각도, 그 어떤 삶의 의지도 없는 방랑자의 꼴로...,
[이순신트레일 23회차-종점 (전남 보성군 벌교읍 벌교리)]
또 종줏길이 회식하러 온 사람들로 인해 유희의 길이 된 저녁이었다.
걸은 사람들은 구석떼기에 처박혀 조용하고, 걷지도 않은 사람들은 한 가운데서 난리를 친다.
그 와중에 그들을 손님으로 대접한답시고 설쳐대는 꼴은 가관이었다.
그 목적에 반하는 사람들의 등장,
그로해서 유희에 희석되는 고행의 종주길이 너무도 짜증스럽다.
일어난 새벽,
발바닥은 아작이 나 있었고, 남의 이음에 끼어든 사람들과는 걷기가 싫어 다시 누워버렸다.
열시쯤 일어나니 창밖엔 처량한 겨울비가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해미누나에게 전화를 넣고, 걷지 않았음에 회식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하에 벌교를 떠나왔다.
[벌교공용터미널]
남해안 해상교량 시리즈 30 - 달천교
'이순신길 - 남해바닷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순신길 17 - 보성만(1) (0) | 2019.01.23 |
---|---|
이순신길 15 - 여수반도 (0) | 2019.01.02 |
이순신길 13 - 광양만 (0) | 2018.10.08 |
이순신길 - 섬 나들이 (0) | 2018.07.17 |
이순신길 11 - 사천만 (0) | 2018.07.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