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이 될 길의 기록
이순신길 17 - 보성만(1) 본문
해를 따라 서쪽으로 간다.
불명의 삼도수군통제사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1545~1598)장군께서 살가신 그 바닷길을 잇는다.
어느 날, 지인들과 술을 마시다가 누군가 그 부근을 말하면,
이 때다 하고 쓱 휴대폰을 꺼내어 지가 말하는 곳이 들어 간 트랙을 보여주기 위해...,
보성만, 그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바닷길을 걷고자 했음이다.
이순신길 17-1 고흥반도2 (2019.01.19)
이순신트레일 제26회차는,
고흥반도 남부해안지선을 돌아 소록도가 보이는 녹동항에서,
남해안길종주대 최정예 대원들과 전원 트랙 클리어에 대한 파이날회식후 떡실신을 하고,
다음 날, 소록대교 하부를 통과하면 만나는 바다!
보성만 동부해안을 따라 고흥만방조제를 건너, 만 속의 만 득량만에 위치한 풍류해변에서 그 끝을 낸다.
[이순신트레일 26회차-시점 (전남 고흥군 도화면 구암리)]
너나 할 것 없이, 이제 출발지점으로의 이동은 결코 만만한 일정이 아니다.
두번의 밤차로 광주를 경유 해,
고흥으로 온 남해안길종주대와, 07시05분 터미널내 식당에서 만나자마자 바쁜 숟가락질에 동참을 했다.
너나 할 것 없이, 07시20분 시점인 도화면 구암리 하동마을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
지죽도로 가는 군내버스는 07시50분 하동마을 입구에서 내리라 한다.
할 수 없이 지난번 종점인 마을 표지석이 있는 곳까지 업힐의 워밍업을 하고서야~
상동마을 부근에서 산길을 따라 조금 들어가니, 대한민국 11번째 크기의 섬, 거금도의 당당한 자태가 보인다.
(또, 저게 거금도니 아니니 설전을 한판 했지~)
구암선창마을을 경유 다시 군도로 올랐다.
[가회마을과 별학, 벼락, 천등,월각산(어느기 어느긴줄 모르겠다)]
아침을 먹고 출발을 했고, 그 시각도 평소보다 3시간정도 늦었기에...,
오늘 걸어야 할 거리가 30km가 채 안되다고 해도,
10km 지점을 넘어서는 풍양면 풍남항까지는 단번에 가고자 쉼 없이 빠르게 걸었다.
10시30분쯤, 김공장에서 방류되는 시뻘건 폐수가 바다를 조지고 있는 풍남항에 도착을 했다.
보건진료소옆 공터에 둘러 앉아, 시골점방에서만 파는 빵인지 도넛인지로 새참을 먹는다.
이경감이 준 이끼섬 보리소주로, 해미누나부터 시계방향으로 순배를 했다.
코드1 차례에서 "난 안마셔~" "아-마셔~~" 땡감을 치니, 코드1께서 쭉 들이켜 주신다.
(남들이 보면, "뭐 저런 예의 없는 놈이 다 있냐" 하겠지만, 예의는 그렇게 단순한 것만은 아니다)
나는 해미누나와 형님들과는,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의 같은 배열이 아니다.
그래서 처음엔 아주 어려웠고, 특히 형님들과 같은 방에서 잘 때에는 사춘기때 아버지와 같이 자는 심정이었다.
세월은 30회차를 목전에 두고 있다.
버릇 없이 쳐구는게 길에서의 일상이 되었다.
(남들이 보면, "뭐 저런 예의 없는 놈이 다 있냐" 하겠지만, 예의는 그렇게 단순한 것만은 아니다)
이런 형님들과 함께 주말을 보내다보니,
이제 주중에 만나는 주변의 손윗 남자들이 형님은 고사하고 아래로 보인다.
아주 심각하다.
근데, 더 심각한 것은 아래로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그렇게 언행도 하고 있음이다.
[풍남항]
12시25분, 소록도와 거금도를 잇는 '거금대교가 보이는 은전마을 방파제앞에 닿았다.
방파제의 끝으로 나아 가, 라면을 끓여 후루룩쩝쩝을 했다.
물론 술도 마셨다.
[거금대교]
[은전방파제]
은전에서 1km쯤 서진을 하니, 오마삼거리가 나왔다.
그리고, 그 곳에 '오마간척한센인추모공원이 자리 해 있었다.
리아스식해안을 가진 고흥반도에는 숱하게 많은 방조제들이 축조 되어 있었다.
방조제(防潮堤)
바다를 육지의 일부로 조성하고자 할 때,
새로 조성되는 육지의 끝과 해수면의 경계에 축조되는 제방이다.
방조제의 내면에 편입된 바다의 땅은,
매립이 되어 농경지 또는 필요에 따라 각종 부지로 개발 되거나, 용수 저장을 위한 담수호로 활용 된다.
최근에는 도로의 개설을 위해 축조 되기도 한다.
남해안 리아스식 해안지선을 걷는 이순신트레일에서,
방조제는 걸어야 할 거리를 확실히 줄여주는 지름길 역활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 목적의 효율성 유추도 없이 축조된 방조제와, 버려지듯 방치된 매립지들을 볼 때마다,
키우지도 못할 자식 왜 낳았을까? 싶더라~
그리고, 이제 대한민국에서는 방조제나 매립지는 필요가 없다.
밥들 잘 안 드시니 농경지는 남아 돌고, 산업용지는 넘쳐나고, 4대강 수문 다 열어 놓아도 물은 마르지 않잖아~
바다는 바다이어야 한다.
그게 해파랑길과 이순신길을 걸어면서 내린 내 결론이다.
[위의 사진들 속, 사람들이 만든 바다의 땅]
오마간척한센인추모공원을 내려 와, 그들이 만든 방조제길을 걷는다.
이제 이 길만 지나면 녹동항은 지척이다.
천사 하나가 동행길에 따라 붙었다.
우리를 따라 계속 오면, 나중에 저거집을 못 찾아 갈 수도 있는데...,
오마방조제를 지나고 물 빠진 해안지선을 돌아나오니,
오늘 걸음의 종착지 녹동항이 보였고, 가냘픈 빗방울들도 떨어진다.
흩어진 대열이 동봉마을에서 다시 만났다.
조우를 했으니 한 잔을 해야지~
사실은 종착지 녹동항이 보였기에 한 잔을 하였다.
[고흥군 도양읍]
16시10분, 녹동만남의다리를 건너,
녹동항내 361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하여 만든 인공섬에 입도를 했다.
부질 없는 겨울비가 스산하게 내리는 날 오후,
내 생에 처음으로 말로만 듣던 녹동항에, 나는 왔다.
[녹동항과 소록대교]
겨울이라서,
날씨가 지랄 같아서,
그 유명세에 늘 붐빌거라 생각한 항은, 예상외로 한산했지만 상관할바 아니었다.
처음 온 녹동항, 어둠 내린 그 선창가에서 또 뭔가 시려서 열나게 퍼마셔 주었지!!
이순신길 17-2 녹동항에서 풍류해변 (2019.01.20)
정말 일어나기 싫은 새벽이었다.
우째될 값에 잠 좀 더 퍼질러 잤음 소원이 없겠더라~
2019년 1월 20일 05시15분,
소록대교하부를 지나 보성만으로 들어서는데, 뭔 바람이 이리도 쳐불어대는지...,
어둠속, 보성만가에 기대어 사는 사람의 집들에서 반짝이는 불빛들,
그 속에서 아직도 자고 있을 사람들이 어찌나 부러워지는지...,
개들은 왜 안 쳐자빠져 자고 일어 나 쳐짖는지...,
다음부터는 아픈척하고 숙소에서 게기다, 해가 뜨면 기나와 잽사게 걸어 대열을 따라 잡아야지...,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며, 뇌가 얼어 아무 생각이 들지 않기를 바라면서,
2시간30분을 줄기차게 걸어 신흥마을까지 왔다.
[내가 처음 본 보성만]
해안으로의 길이 끊겨, 신흥마을에서 상하해변(가칭)까지는 산길을 걸었다.
산이 바람을 막아주는 피풍의 장소에서, 꿀꿀이죽을 끓였다.
맛대가리가 없어 먹다가 땔챠뿟다.
"경기병~ 산에서는 고통분담 차원에서 억지로라도 먹어줘야 한다"
해미누나가 말씀을 하셨다.
그래도 먹지 않았다.
[건기 위해서 먹는가? 먹기 위해서 걷는가?]
[겨울, 매서운 해풍이 불어오는 보성만 바닷길을 걷는 남해안길종주대]
신흥에서 상하들녁까지의 산길 일부를 제외하고는 계속 바닷길이다.
길로까지 바닷물을 던지는 매서운 바람은 쉼 없이 불어 왔다.
누군가에게 말하는 소리마저 바람이 날려 버린다.
앞서 나가며 뒤를 돌아본다.
뒤처져 앞서 나가는 그들을 본다.
그저 걸어만 가고 있는데, 나는 그 모습이 너무도 감동적이다.
마치 칠천도의 굿등산에 오를 때 처럼...,
[길이 없어도, 주쎄리 쳐 걸어가면 그게 길이 된다]
서서히..., 빨리 종점에 닿고 싶은 갈망이 인다.
용동해변까지는 가고나서, 할 갈망인데 말이다.
지도를 보니 용동해변까지는 아직 5km를 더 가야하고, 영귀산이란 야트막한 산 하나를 넘어야 한다.
[영귀산으로 오르는 길]
영귀산을 내려오니, 나올건 바다밖에 없다.
이제 오늘 걸어야 할 몫의 8할을 넘어선 기분이다.
해변으로 난 길을 따라 가면 고흥만방조제가 나올 것이고, 방조제를 지나면 종점이다.
길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심정으로 걸음에 포르테를 붙혔다.
11시50분 고흥만방조제 초입에 위치한 '고흥지구남해안관광사업개발공원에 도착을 했다.
트랙을 보니 24km를 걸어 왔고,
뒤를 돌아보니 모두들 줄기차게 걸어 오고 있다.
상점이라도 있음, 막걸리와 주전부리들을 사 놓고,
불편한 걸음이지만, 포기를 모르는 깻다리형님을 방긋하게 해 드리고 싶었는데...,
[고흥만방조제 시점]
고흥만방조제는 3km에 육박하는 직선이다.
20회차 광양구간에서, 직선길에 대한 심한 거부감을 갖게 된 나로서는 보이지 않는 그 끝에 대한 조바심이 인다.
반드시 걸어서 이어야 할 길이라 별 도리가 없지만, 길에 짜증이 묻기 시작한다.
담배 한대를 피워 물고, 일단은 앞서 나가는 서나대원을 졸졸 따라 방조제길로 들어 섰다.
안되겠다 싶어, 시선을 길바닥에 고정을 시킨 채 걸음 수를 세아린다.
1,000보를 세아리고, 1km가 되는 가산보 300보를 세아리고,
300보의 가산보 30보를 세아리고, 30보의 가산보 3보를 세아려,
1,333보에서 고개를 들어 방조제의 끝을 조심스레 봤다.
이런~ 니이미!! 아직도 그 끝이 선명하게 보이지가 않는다.
또 담배 한대를 피워 물고, 그런 나를 지나치는 서나대원을 또 졸졸 따라 갔다.
안되겠다 싶어, 또 시선을 길바닥에 고정을 시킨 채 이번엔 길가에 세워진 보조전봇대의 스치는 수를 세아렸다.
100~150m 간격으로 세워진 보조전봇대 5기를 스치고 고개를 들어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 끝을 본다.
이런~ 개 염병!! 아직도 그 끝에 있는 도로표지판의 글씨가 보이지 않는다.
방호벽에 앉아 있으니, 서나대원이 또 지나간다.
할 수 없이 서나대원을 따라, 죽여라 죽여~의 심정으로 힘 없이 걸었다.
[고흥만방조제 종점]
[고흥만방조제 외해]
잘하다가는 협심증이 생길 것 같았던, 방조제를 건넜다.
질러 가는 직선의 방조제길 보다, 늘어지더라도 곡선의 원래 해안을 돌아 걷는게 정신 건강에 이롭지 않을까? 싶었다.
이제 길은 끝이 났다.
비록 고흥읍으로 나가기 위해서 1.5km여를 더 쳐걸어, 풍류마을까지 가야 했지만...,
그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질 못했다.
왜냐고?
그 것은 곡선이었거던...,
[이순신트레일 26회차-종점 (전남 고흥군 두원면 풍류리)]
그 수치차는 미약했지만, 1일차보다 2일차가 더 긴 회차였다.
집으로 돌아 가는 길,
쏟아지는 졸음에, 5km 간격으로 설치된 과속단속카메라에, 주말의 고속도로 정체까지...,
진주휴게소에서 한참을 자빠져자다 일어나니 5시를 넘겨 있다.
딸기우유를 사와 유자빵 두개를 먹고, 손가락에 묻은 물엿인지 꿀인지를 혀로 닦고, 시동을 켰다.
같이 출발을 못하더라도, 가급적 차를 가지고 가지는 않아야 할 것 같다.
고흥유자빵 맛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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