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이 될 길의 기록
이순신길 20 - 보성만(3) 본문
해를 따라 서쪽으로 간다.
불멸의 삼도수군통제사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1545~1598)장군께서 살다가신 그 바닷길을 잇는다.
이번 회차는 쉬어야 했다.
일어난 토요일 아침 하늘을 보니, 하늘이 아니라 파란나라였다.
하늘이 파란날의 바다색은 보고 느낀이만이 알고, 이미 나는 그 색에 중독된지 오래였다.
간다!
인생사 세상사에 썩어줘도 세상사는 인생사에 술 한 잔 안사주더라~
이순신길 20-1 장흥반도 동부해안 (2019.03.16)
버스를 타고 순천을 경유해 장흥으로 갈까도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빨라도 16시는 넘어 도착이 될 것이고, 트랙 형성은 하지 못한다.
사천휴게소에서 나는 짱꽤를 차는 디젤을 각자 빨고,
무조건 주쎄리 쳐밟아 장흥읍에 도착을 하니, 13시45분쯤이었다.
14시05분 관산행 시외버스를 탔고,
관산정류장에서 택시를 불러 회차의 시점 '죽청마을로 가니 14시32분이었다.
[이순신트레일 30회차-시점 (전남 장흥군 관산읍 죽청리)]
이순신트레일 제30트랙은,
제 1일차,
죽청마을에서 보성만 서부해안을 따라 장흥반도를 남진하여,
회진대교를 이용 노력도를 밟고 나와 보성만이 장흥반도에 숨겨놓은 회진항으로 간다.
회진항에서 역(易)으로 온 남해안길종주대와 독킹후 '회진별곡을 읇는다.
제 2일차,
회진항을 빠져 나옴으로서 보성만 바닷길과 작별을 하고,
마량의 해안지선을 따라 이순신트레일 열네번째 도시 강진군에 들어 선다.
마량항을 지나면 바다는 강진만이고, 만의 동부해안 어느 지점에서 트랙을 끝낼 것이다.
제30트랙은,
장흥반도를 형성시킨 보성만과 강진만을 잇는 트랙이다.
정해진 당일에 걷지 않았다면...,
차후 마음에 의욕은 있어도, 시·종점으로의 접근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어 결국은 누락이 되었을 것이다.
[장환도 가는 길]
14시34분, 늦은 출발이었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걷고 있음이다.
유추한 거리는 25km, 예상시간은 4시간30분, 19시경 회진항에 도착을 하면 그만이다.
섬이었어나 간척사업으로 육지가 된 장환도에 들어섰고, 그 해안선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섬을 일주한다.
[바다 건너 소록대교]
뭍에서는 보이지 않는 섬의 동부해안을 걷는다.
인간이 표현하고 지칭하는 색명(色名)이 얼마나 가소로운 형용인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비워진 풍경속,
맑은날의 하늘색과 바다색이 오늘 내 행로를 있게한 이유였다.
운이 있었는지? 섬을 돌 때는 만조가 한창이었다.
푸른 날에,
해안으로 밀려오는 바닷물이 내는 소리, 그 소리들을 들으며 섬을 돌아나왔다.
[고마방조제]
방조제 뚝길로도 갈 수 있었지만,
봄이 오고 있음에 들녘으로 나있는 농삿길을 실컷 걸었다.
[관산제방]
그리 길지 않은 두 직선을 끝내고나니,
사금으로 가는 곡선의 예쁜 해안길이 오후의 햇살속에서 아련한 그 곳으로 가는 길이 되어준다.
[사금마을 가는 길]
참 멀리도 와 있다.
마흔일곱 어느 여름날에 나는 무작정 해파랑길에 들어섰다.
쉰하나 어느 봄날에 나는 보성만 해안지선의 끝을 향하고 있다.
구지 살아가면서 이뤄야 할 일은 없다.
목표를 세웠기에 달성을 하여야 한다는 논리를 나는 자기학대로 본다.
살다보면 거기까지 가는데..., 구지 아둥바둥 할 이유가 없다.
생은 살다가 가는 것이다.
먼데, 아픈데, 만류를 하는데, 그래도 와야 하는 지금 이 짓이 뭔지?
아주 심한 자기학대를 하고 있다.
[사금방파제]
드디어 오늘 길의 내심 걱정이었던 삼산방조제로 들어서는 길목에 닿았다.
나는 직선의 길이 미치도록 싫다.
나는 바다를 메워 된 땅 또한 미치도록 싫다.
지금 그 땅을 있게 한 3.0km의 방조제를 걸어야 함에 뇌가 서서히 미칠라한다.
이 방조제만 지나면 오늘 길의 7할을 넘어서지만...,
직선의 40여분을 버틸 인내는 시작도 하기전 임계점이다.
그런 수모까지 당하면서도 연예인, 배우 그게 그렇게도 하고 싶었을까...,
참판까지 오른 놈이 뭐가 부족해, 그런 곳에서 그런 더러운 짓을 쳐하고 다녔는지...,
주먹질 한 번에 모두가 숨겨 온 추악함을 세상에 까발리게 된 그 나이트 임원은 지금 어떤 심정일까...,
길의 여정이 아무리 힘들어도 광주를 돌아서 오지는 않아야 하는데...,
이런 저런 잡다한 생각을 하며,
시선을 아래로만 하고 쉼 없이 걸어나갔지만, 방조제는 그 끝을 쉽게 내어주지 않았다.
한참을 걷고 고개를 들어 앞을 보면,
방조제 길은 그대로인데, 그 끝에 우뚝 선 정남진전망대만이 시나브로 선명하게 보였을 뿐이다.
17시05분, 혼자 걸어 더 지겨웠던 개직선 방조제를 탈출했다.
정남진전망대로 가는 길을 외면하고 우산선착장으로 곧장 길을 이었다.
우산선착장에서 우산마을로 가는 왕갯바위 너덜해안에서 다소 지체가 된다.
까닥하다가는 소리소문 없이 작렬한 최후를 맞이하겠구나~ 조금은 두려운 해안지형이었다.
전망대를 오르지 않더라도, 그냥 아스팔트길로 갈걸~ 후회를 하면 조심스레 바위를 타고 넘었다.
급 저혈당의 조짐이 느껴져 바위틈에 주저 앉아 주전부리들을 먹어며,
산위에 우뚝선 정남진전망대를 본다.
수도권이 비대해질수록, 지방은 가냘파지는게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을 하면, 그들의 대다수는 그렇게 고향을 떠나 서울사람이 된다.
그들이 버린? 그들의 고향은 지금 소멸만을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뭐를 해 먹고 사냐고요?? 고흥군의 택시기사가 내게 한 말이다.
정남진전망대는, 인구 4만의 장흥군이 어떻게든 버텨보고자 발버둥을 친 산물처럼 보였다.
장흥의 정남진이 강릉의 정동진에 버금가는 명소로 그 유명세를 떨치길 기원했다.
우산마을 해안길을 돌아나오니, 서풍도 불어오고 해는 서산에 근전해 있었다.
채 10km도 남지 않은 길이지만, 바쁜 걸음에 조바심이 인다.
[정남진방조제]
아따~ 방조제, 방조제...,
하나 지나면 또 하나가 나타나고, 뭔 놈의 방조제가 이리도 많은지...,
대한민국 농업이,
단순 생산을 넘어, 6차산업의 고부가를 창출할려면 이 지긋지긋한 방조제부터 축조를 하지 않아야 한다.
어쩌면 지금의 쌀값 하락 원인은,
이 쓰잘때기 없이 바다의 땅을 논으로 만든 방조제가 단단히 한 몫을 했다.
나는 무조건 그렇게 본다.
[신상삼거리]
[대리마을]
신상마을에서 대리마을까지,
얼핏봐도 200여호가 넘는 큰 촌락이었지만 마을은 비워지다시피 조용하다.
집집마다 한,두분의 어르신들만이 살고 있을 것이고,
그 분들이 남은 생을 살아가는 이유는 객지로 떠난 자식들의 서퍼트를 위함일 것이다.
오일을 일하고 이틀을 쉬는 작금에도,
쉽사리 오지 않는 보고픈 자식들을 기약도 없이 기다리며 살고 있다.
닫혀진 대문을 열며 '엄마'하고 집으로 들어서는 자식들이 많아졌음 정말 좋겠다.
[노력도]
풍경이 석양에 물들면 세상은 어둠에 묻힌다.
노력도 입구까지 왔다.
회진항에 도착을 했다는 해미누나의 전화가 왔다.
양해를 구하고, 입도를 감행했다.
집에서 먼 낯선 곳에서 맞이한 저물녁이지만...,
지척인 회진항에 종주대가 와 있는데, 어둠이 짙어진다고 뭔 걱정이겠노!
[노력도 가는 길]
[회진대교 북단]
[회진대교에서 본 보성만의 일몰]
[노력항]
[회진대교 남단]
[노력도 나오는 길]
비록 몇 발짝 찍고 돌아서 나온 섬이었지만...,
나는 노력도에 갔다.
그게 팩트다.
섬을 나오니 낯선 땅이 더 낯설게 보인다.
시계는 19시를 향하고, 아직도 걸어야 할 길은 2km가 남아 있다.
길가 사람의 집들이 밝히는 불빛들에 의지 해 그렇게 20여분을 더 걸어 갔다.
19시18분, 24.8km, 4시간40분을 걸어 장흥반도가 득량만에 숨겨 놓은 미항 '회진항에 도착을 했다.
[회진항]
아리랑길 027 - 노력도 (2019.03.16)
전라도의 횟집은 성에 차지가 않는다.
첫 번째 양식을 하지 않으니 조달을 할 고기가 부족하다.
두 번재 고기에 뻘의 냄새가 있어 먹기가 참으로 지저분한 기분이다.
그래도 회진항이라서,
나는 서진으로 종주대는 동진으로 와 회진항-파쇼다사건을 만들었기에 횟집에서 회식을 했다.
양옆에서 코를 곯아 잠마저 저녁에 먹은 회맛이었다.
이순신길 20-2 회진항에서 마량항 (2019.03.17)
2019년 3월 17일 오전 04시52분,
장흥읍에서 봅시다는 인사를 건네고 숙소를 나섰다.
아직은 한밤중 같은 어둠속,
어디로 가야하나..., 다소 막막해지는 기분으로 회진항을 빠져 나왔다.
오른쪽 발목 뒷축의 뼈가 신발에 닿을때마다 조금의 고통이 느껴졌고,
잘 자다가 사람만 지나가면 쳐짖는 개들 때문에 시작부터 신경이 곤두선다.
37km를 7시간30분내에 걸어, 12시쯤 강진만 동부해안에 위치한 하저마을해안까지는 가야하는데...,
어제와 같은 시속으로 걷기에는 무리라는 답답함이 걸음에 묻는다.
[바다 건너 금당도]
[선자마을]
선자마을 해안을 지나면서 보성만 바닷길은 끝이났다.
이제 바다는 장흥반도 남부해안 마량의 바다다.
삭금마을 해안도로가 끝나자,
미친방조제 하나가 새벽 바닷길에 장렬한 그 직선의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덕촌방조제]
[걸어야 할 직선(1)]
[걸어 온 직선(1)]
[걸어야 할 직선(2)]
[걸어 온 직선(2)]
[덕촌배수갑문]
이런 개염병 할...,
꼭두새벽부터 개직선 3.5km의 방조제를 아주 처참한 기분으로 걸어 나왔다.
허나, 끝남이 끝남이 아니다.
산모퉁이 하나를 돌면 또 방조제 하나가 더 있다.
이따구 바닷길이 싫어졌다.
직선의 지루한 길에서, 뇌에서 읽혀지는 잡다한 상념들 듦도 싫어졌다.
에라이~
걸어야 할 거리가 늘어나도, 돌아가더라도, 그래 바다를 버리자.
지도를 급검색 해, 차도로 올라서는 길을 찾았다.
[23번국도 오르는 길]
[23번국도내 장흥군과 강진군의 경계 (상흥천-하분교)]
하분교를 건너면 강진군이지만,
아쉬움 남음도 없는 장흥군이지만,
상흥천을 따라 들녘으로 난 농삿길로 들어서며 장흥군 땅을 조금 더 걸었다.
[그리고, 이 보잘 것 없는 다리를 건너 강진군에 들어섰다]
상흥천 하류로 간다.
왜냐고? 슬슬 바다가 보고 싶어졌거든...,
[고금대교]
고금대교가 선명하게 보이는 해안도로 파제벽에 앉아, 종주대에서 배분을 해준 곶감을 먹었다.
이번 회차는, 나는 서진이고, 종주대는 동진이라 같이함이 같이함이 아닌 여정이다.
더하여 깻다리형님을 위시한 세 분의 형님들이 동시에 불참을 했다.
만약 서진으로 같이 했다면,
고금대교가 보이는 지금 이 자리에서는 틀림 없이 마지막 남은 야관문주를 나눠 마셨을텐데...,
뭔가 부족하고, 뭔가 허전하더라~
[신마방조제]
이번 트랙에 산재한 마지막 방조제를 지나, 고금대교 하부로 왔다.
차단을 시켜 놓은 항만시설이 해안봉쇄를 해 놓았다.
길이 없더라도 갯바위를 타고서 마량항으로 가고자 했는데, 그 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할 수 없이 신마삼거리로 가, 27번국도내 신마교차로에서 언덕길을 올라 마량항으로 갔다.
[마량통문]
[마량항]
고흥군에는 녹동항이, 장흥군에는 회진항이 있다면, 강진군에는 마량항이 있었다.
화장실에 들러고나니 후련해진 느낌이 좋아 잠시 항의 수변공원에 넋을 놓고 앉아 바다에 멍을 빠뜨렸다.
더 걸어야하나? 여기서 때려치워야하나? 그건 차후의 문제였다.
마량의 바다나 실컷 볼란다.
30cm정도 다리를 벌렸을 때의 바지 안선 같은 강진만을 벗어나고,
완도군 다섯 섬을 들러 해남반도를 따라 그 끝으로 가면 종주대의 남해안길은 끝이 난다.
하지만 이순신트레일은,
땅끝에서 해남반도를 북상하여 화원반도 남부해안을 따라 울돌목으로 간 다음,
명량을 건너 진도의 동부해안을 돌아 지산면 가학리에 위치한 세포항까지 가야 그 끝이 난다.
돈도 벌어야하고, 병도 놔사야 하는데..., 갈 길은 멀기만 하다.
갈 길은 멀지만..., 오늘은 여서 때려치울란다!
[이순신트레일 30회차-종점 (전남 강진군 마량면 마량리)]
09시20분 곶감 두 개에 의지해 20km를 걸어 온 걸음은, 진녹색 너울의 바다 마량항에서 더 이상은 움직이지 않았다.
20여분 항을 서성이다, 트랙을 꺼 버렸다.
[10시05분 마량발 강진행 농어촌버스]
[강진버스여객터미널]
[부산으로 갈려면, 전남도 해안에 위치한 곳은 다 쳐들리는구나 아주~]
[10시45분, 10여분 거리의 장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11시쯤 장흥버스터미널로 왔다.
종주대에 연락을 하니, 아직 1시간은 더 걸어야 종점인 죽청에 도착을 한단다.
25km를 가지고 아주 떡을 치시고들 있구나...,
그래 할 일도 없는데 종주대나 데불러 가자~
[11시25분, 죽청수문]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마라, 청춘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두 번째 히어로!
초대 조선통감을 지내며 동북아를 손아귀에 넣은 이토히로부미의 전성기를 한 방에 끝내준, 안중근의사의 명언이다.
흘러 간 청춘에서 보이지 않았던 길들이, 늙어막에 왜 이리도 선명하게 보이는지?
심히 막막하다.
남해안 해상교량 시리즈 38 - 회진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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