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이 될 길의 기록
이순신길 22 - 강진만 본문
가는 길에 펼쳐진 세상을 만난다는 설레임보다는,
그 길의 끝에 한시라도 빨리 닿고자 하는 조바심에 걸음은 이미 지쳤다.
뜻한바 이뤄진 그 곳에서,
지친 걸음에 묻어 있는 것들을 훌훌 털어내고,
조금의 아쉬움도 없이 후련히 돌아 서 집으로 오는 나를 꿈꾸며...,
2019년 4월 6일 10시,
부산발 광주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남은 이순신트레일 ]
혹자들은 국토의 최남단 갈두산 '땅끝'을 기준으로 남해와 서해를 가르고,
스스로에서 정의를 구하지 않은 채, 선답자들이 그러했기에 그렇게들 따르고 있다.
아직 확정·고시된 남해와 서해의 이렇다 할 경계는 없고,
그 경계에 해당사항이 있는 정부기관들 조차도 그 수역을 달리 규정하고 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지칭하는 남해, 서해는 세계수로기구에서는 독립된 명칭이 붙은 바다로 인정을 하지 않는다.
제주도를 기준으로 서북쪽은 '황해, 동북쪽은 '동해(일본해), 제주도 남쪽은 동중국해로 설정을 해 놓았다.
이순신트레일의 남해는,
부산 오륙도 앞 승두말에서 진도의 최서단에 위치한 세포항까지로 정했고,
세포항은 1997년 해양수산부가 정한 남해와 서해의 경계선(차귀도와 진도 서단을 잇는 직선)과 일치를 했다.
[이 완연한 봄날의 토요일, 나는 지금 여기서 뭘하고 있는지...,]
서부터미널에서 05시55분, 고속터미널에서 06시 20분 두 노선중 하나를 탄다고 해도,
길의 시점으로 가면 12시에서 13시쯤인데...,
일어 난 토요일 시계를 보니 09시였다.
엎친데는 덮쳐줘야한다.
유·스퀘어에서 14시 고금행버스는 매진이란다.
[에라이~ 밥이나 뭇자]
고금시외버스정류장에 내리니 17시15분이었다.
온갖 구박을 다받으면서도, 길을 이어야한다는 일념으로 집구석을 탈출한지 근8시간후였다.
일일생활권 같은 개소리가 난무하는 대한민국을, 전날 좋다고 퍼마시고 떡실신을 한 나를 원망하며,
일단 섬이나 빠져나가자는 심정으로 걸음을 뗐다.
아리랑길 028 - 고금도1 (2019.04.06)
이순신트레일 32회차는,
군자가 많이 살았다하여 이름 붙혀진 고금도 중심부를 시점으로,
마량해협을 건너 30회차 종점 마량항을 지나, 가우도 동,서에 놓인 인도교를 이용 강진만을 횡단,
해남반도 해안지선을 따라 완도로 들어가는 초입에 위치한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서 그 끝을 다했다.
[이순신트레일 32회차-시점 (전남 완도군 고금면 덕암리)]
얼마를 걷게 될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또 잠은 어디서 자고, 밥은 어디서 먹고, 일요일 집으로나 돌아 올 수는 있을지?
아무것도 모른 채...,
섬의 중앙을 관통해 신지도를 거쳐 완도로 이어지는 77번 국도를 따라 마량으로 간다.
섬에 녹아든 봄은 창궐했고,
청산도에서 무슨 행사가 열리는지? 앞유리 LED전광판에 청산도??이라 표기된 관광버스들은 남하를 한다.
아마도 완도항에서 오늘 저녁을 보내고, 내일 청산도로 들어가겠지...,
좋겠다.
난 지금 닥쳐오는 어둠에 대해 아무런 방안도 없이 걷고만 있는데...,
마량항까지 개략 8km쯤 되었고,
어둠이 짙어지기전에 고금대교를 건너야 한다는 생각에 다소 빠르게 걸었다.
[마량항]
[고금대교]
[마량해협 일몰]
[오늘 우짤래?]
다행히 일몰전 섬을 나왔다.
이순신길 22 - 강진만 (2019.4.6~7)
마량항에서 숙소를 잡지 않는다면, 강진만 동부해안을 따라 강진읍까지는 가야한다.
가다가 의욕이 상실되면 무슨 수가 생기겠지?
대책은 오직 위와 같았다.
[지난 회차에 쳐걸었던 길을 또 쳐걷는다]
[2019년 4월 6일의 마량항 저물녁]
광주에서 고금도로 오는 버스에서, 점잖게 보이는 60대 남자의 통화를 본의 아니게 듣게 되었다.
마량항에서 동창모임이 있는 듯 했다.
마량항 횟집들을 지나며 식당들의 내부를 얼핏 보았다.
해안벽지라면 벽지인데, 식당마다 제법 사람들이 모여서들 즐거운 자리를 가지고 있다.
그 모습을 보는데, 아- 난 왜 이지랄을 하며 돌아다니는지...,
지금 부산에 있었다면 나도 저런 저녁이었을텐데...,
낮에 유·스퀘어에서 14시 고금도행 버스가 매진이었을 때, 그냥 돌아갔어야 했는데...,
후회가 밀려 들수록, 어둠만이 짙어졌다.
무소의 뿔 모드에서는,
인쇄된 스카이뷰에 가고자하는 루트를 미리 긋고, 그 선을 보며 나아가는데 어둠이 내리면 갈팡지팡이 된다.
인쇄된 지형과 눈 앞에 보이는 지형을 맞추는데 있어,
어둠으로 인해 눈앞의 지형들이 숨어 버리면 나아갈 길의 가늠에 종종 애를 먹는다.
하지만, 이번 트랙에 형성될 길들은 90%이상 해안으로 나있기에 걱정은 없는데,
자꾸만 서글퍼지는 기분 듦은 어쩔수가 없더라~
깜깜해진 해안도로를 따라 마량면과 대구면의 경계에 이르렀고,
더 이상 해안으로 가 봤자, 발품만 더 팔것 같아 23번 국도로 올라섰다.
아- 갑자기 이 밤길을 걸어 갈 마음이 일순간 확 사라지고 무조건 집으로 가고 싶어졌다.
국도를 따라 강진읍 방향으로 5분정도 걸어가니 버스정류장이 나왔고,
정류장 벽에 붙어 있는 시간표를 보니 강진읍으로 나가는 막차는 19시30분이었다.
시계는 19시50분을 쳐돌고 있는데...,
집에는 못가더라도, 더 이상 밤의 길에 있기조차 싫어진다.
천만다행으로 정류장과 연접한 곳에 모텔이 있었고,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배낭엔 조금전 마량항 편의점에서 싼 맥주도 빵도 있다.
뉴스를 보고난뒤 '슬플때사랑한다를 보다가 잠들면 되겠다 싶었다.
그리고 새벽녁 일찍 일어나져도 걱정은 없다.
나와서 걸어면 되니깐...,
근데, 들어 간 모텔방에 티비를 틀고 자빠지니...,
아놔~ 갑자기 깝깝증이 들기 시작하는데, 사람 미치겠더라~
밤을 지세워 걷는다면 북평면 남창을 넘어 송지면 땅끝까지도 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내가 팔자에도 없는 강진만 모텔방에 혼자 쳐갇힐려고 8시간 버스를 타고 왔나...,
오면서 간간히 잤기에 잠은 쉽게 오지 않을 것이고...,
에라잇!! 배낭을 매고 그대로 모텔을 나와 버렸다.
그리고, 다시 트랙온을 시키고 어둠속에 파 묻힌 장군의 길로 들어갔다.
[대구초등학교 앞]
[고려청자박물관 입구]
모텔을 나오니, 그제서야 갈등은 종지부를 찍었다.
조금은 서글프고,
조금은 힘이 들테지만,
나는 오늘 밤 갈 곳이 없기에, 밤새 디지도록 쳐걸어 무조건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까지는 갈 것이다.
그 방법외에는 달리 오늘밤을 버틸 방법이 없다.
해안지선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강진만 만입의 끝으로 가 탐진강하류를 돌아, 해남반도 해안길로 접어들어야 하는데...,
대구초등학교에서 백사마을 해안으로 잠시 내려 갔을 뿐,
자칫 길의 혼동이 있을 수 있어 다시 23번국도로 올라서고 말았다.
확장공사중인 국도는 걷는 사람은 안중에도 없이 질주하는 차들이 주는 위험성이 대단했다.
지금 이 판국에 거리를 늘려 좋을건 없다는 생각에, 가우도 동,서에 놓여진 인도교를 이용 강진만을 건너기로 했다.
[마셔라! 그리고 밤새도록 한번 걸어 보자!!]
자정이 다된 시각,
칠흑 같은 어둠속 바다를 건너 낯선 섬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조금은 심적 부담으로 느껴졌지만...,
아리랑길 029 - 가우도 (2019.04.07)
[가우도 남측 해안 산책로]
[아이구~ 놀래라!! (밤에는 좀 덮어라, 사람 기절할뻔 했잖아~)]
[출도 (서측 출렁다리)]
한 밤중 미친객 하나가 동에서 섬으로 들어와 서로 나가더라~
그게 내 가우도였다.
훗날에 가우도에서 누군가에 이 이야기를 해주면, 믿겠나 싶었다.
나는 사람만 지나가면 쳐자빠져자다가도 벌떡 쳐일어나 쳐짖는 개색히가 너무도 싫다.
가우도를 나오는데,
한 개를 시작으로, 두 개, 세 개, 그리고 온동네 개들이 일제히 개망동에 가세를 한다.
몇몇 개들은 내가 한참이나 떨어진 논정방조제 중앙부에 다달을때까지 바다 건너에서 계속 쳐짖었다.
짖지 마라 제발!
안그래도 빼도박도 못 하는 심정으로 걸어야만 내일이 오는데..., 니들마저 그러면 더 서글퍼진다.
가우도를 딛고 강진만을 횡단해 해남반도 해안길에 들어섰다.
[마지막 가로등]
강진만을 건너기전부터 밤이었지만, 건너 온 23시30분부터는 암흑이었다.
그 이후 해남군 북일면소재지까지의 5시간 동안,
길을 지나가는 단 한대의 차량도 없었고,
사초리 해안가 외딴집을 지날 때, 개가 짖으니 나와 본 단 한사람외에는 아무도 만나지 못했고,
사내방조제 직전에 위치한 수산물가공공장의 불빛과 방조제 배수갑문의 불빛,
그리고 내동마을 안길을 비추던 그 가로등 외에는 그 어떤 불빛도 켜져 있지 않았다.
[논정방조제]
쉬지 말고 쉬지를 말고 달빛에 길을 물어..., 지금 내가 딱 그 짝이구나! 싶었다.
그 나그네는 무한의 달빛이라도 있었지만, 나는 그믐밤 맛이 갈려는 렌턴빛 밖에는 없다.
것도 방전이 될까 싶어,
직선의 방조제도로에서는 렌턴을 껀 채, 도로에 긋어진 희미한 백색 라인마킹만을 보고 걸었다.
[사내방조제]
[사내방조제 배수갑문]
시간은 새벽 02시를 넘겼고,
사내호 풀섶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에 애써 담담한척,
참담하기 형언할 수 없는 심정으로 어둡고 길고 끝나지 않을 직선의 사내방조제를 걷고 있다.
그 가운데를 지나며,
강진군의 바닷길은 끝이 났고, 이순신트레일의 열일곱번째 도시 해남군에 들어섰다.
3.3km 사내방조제 직선을 끝내고,
루트의 선형을 해안길에서 북일면소재지로 가는 내륙의 길로 바꿨다.
좀 돌아가더라도, 사람의 집들이 밝혀 둔 빛은 없더라도, 가로등 빛이라도 있었음 하는 바램으로...,
내동마을에 들어서니,
그제서야 마을 안길을 비추고 있는 가로등 불빛들이 보였고, 암흑속을 헤치고 나온 기분이었다.
그 빛이 닿는 곳에 버스정류소도 있었다.
착한마을은 개도 키우지 않아, 모처럼 안정감 속에서 오랫도록 쉬었다.
내동마을에서 북일면소재지로 가는 4.4km의 길에는 다섯 곳의 버스정류소들이 있었다.
용일입구 정류소에서는, 인근의 우사에서 켜놓은 라디오를 들어며 30여분을 잤다.
(다행히 비가 온다고 하여 챙겨 온, 해미누나가 준 판쵸우의를 덮고...,)
이후로 1km 남짓을 걷고,
정류소가 보이며 자고, 자다가 오소소 해지면 걷고를 서너번 더 반복했다.
[북일면 소재지]
[버스야 일어나라! 잠 든 모든 것들을 다 깨우고 싶다]
이제 55번 군도를 따라,
북일면소재지에서, 북평면의 남창버스정류소까지 9km 정도만 가면 된다.
조금만 더 걷다보면 날은 밝아질것이고,
걸어 가는 길가에 사는 사람들도 일어나, 걸어오는 나를 보며 '저런 미친색히..., 이랄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