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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이 될 길의 기록

아리랑길 030 - 약산도 본문

아리랑길 - 낙도바닷길

아리랑길 030 - 약산도

경기병 2019. 4. 16. 15:26

어슴푸레한 저물녘,

완도항 수은등 불빛을 찾아 간...,

 

먼 훗날에,

회상이 될 기억 하나를 갖기 위해,

2019년 4월 13일 06시 온다간다 말도 없이 집을 나왔다.

 

 

 

 

[남은 이순신트레일]

 

 

 

강진땅 마량에서 해남땅 남창으로 가는 길은,

강진만 해안지선을 따라가는 육짓길과 완도권역 섬들을 연결한 77번국도 해상교량들이 만든 바닷길이 있다.

 

지난주,

고금도 중심지를 시점으로 삼아 마량해협을 건너 강진만으로 들어선 뒤,

만의 허리쯤에서 가우도 딛고 해남반도로 건너가 밤이 새도록 걸은 육짓길은 혹독하다 못해 너무도 참담했다.

 

이번주,

약산도 당목항을 시점으로 삼아 완도권역 다섯 섬을 관통하여 남창으로 간 바닷길 또한 혹독했다.

 

 

 

 

 

 

길 떠난다! 밥 챠려라~ 했다가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06시 집구석 탈출을 했다.

 

순천터미널에서 새우토스트 하나를 사고, 시점인 약산도 당목항으로 가니 13시 정각이었다.

 

 

 

[당목항 가는 길]

 

 

 

낙도에 산다는 것!

 

강진터미널에서 고금도를 거쳐 약산도 당목항으로 가는 강진군 농어촌버스를 탔다.

혹시나 종점인 당목항에 내리는 승객이 나 뿐이면 기사에게 조금은 미안해지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나 처럼 출발지에서 타 종착지에서 내리는 승객들이 꽤 있었다.

 

알고보니 1시간여 버스를 타고 두 개의 섬을 관통하고도 모자라,

또 여객선을 타고 각자의 집이 있는 바다 건너의 섬으로 가는 사람들이었다.

 

얼핏 나잇대는 짐작이 되었지만,

조금은 검게 탄 얼굴, 뭔가 폐쇄적 뉘앙스의 실루엣...,

딸과 함께 훼리호로 향하는 여인의 뒷모습에, 주제 넘게도 지레짐작으로 애잔함이 느껴졌다.

 

섬에 사는게 뭐 어떼서?? 할지라도...,

섬에 사는 남편들은, 같이 섬에 사는 아내를 더 없이 아껴주고 행복하게 해 주길 진정으로 바랬다.

 

더불어 대한민국 영해와 영토를 수호하며 사는 사람들에게는 세금의 공정한 집행은 이뤄지지 않아도 된다.

놓을 수 있는 연륙교들은 모조리 다 놓고, 낙도민에게는 특혜에 가까운 국가적 혜택들이 주어져야 한다.

 

섬이 만들어 놓은 길들을 걸을 때,

섬이 가진 자연과 그 섬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은 쉽다.

너무 화려하지도 말고, 내가 어디서 왔는데, 하는 그 따위 언행과 생각을 버려라!

 

낙도에 산다는 것!

그건 들어내지 않는 그들만의 숭고한 아름다움이었다.

 



[당목항]

 

 

 

 

 

이순신트레일 제33회차는,

 

제 1일차,

약산도의 당목항을 시점으로 지방도830호선을 따라 약산연도교를 건너,

고금도에 들어 묘량도 장군의 유적지를 참배하고 섬의 중앙부를 관통하여 장보고대교를 건너,

신지도의 송곡항 해안도로을 둘러나와 신지대교를 건너,

완도항 수은등 불빛을 찾아간다.


제 2일차,

완도의 동부해안도로를 따라 섬의 끝으로 가 완도대교를 건너 완도해협(가칭) 중앙부에 위치한,

달도를 가로질러 남창교를 건너, 지난 32회차 종점인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 도착을 한다.

 

더하여 해남반도의 끝이자 한반도 최남단 땅끝까지 욕심을 내었지만,
발바닥에 물풍선도 생기고, 비도 종잡을 수 없이 쳐뿌려쌋고, 더 이상 쳐걷기는 무리였다.

 

 

 

 아리랑길 030 - 약산도 (2019.04.13) 

조약도라고도 불리우는 약산도

 

 

대한민국에는 섬으로만 형성된 시·군들이 제법 있다.

 

경상북도의 울릉군,

경기도의 강화군과 옹진군,

경상남도의 거제시와 남해군,

전라남도의 진도군과 신안군, 그리고 완도군까지...,

 

완도군은,

본 섬인 완도를 포함 고금도, 약산도(조약도), 신지도, 달도, 5개의 섬들이 연륙교를 통해 육지와 연결이 되었고,

그 외에 청산도, 노화도, 보길도, 소안도, 금당도, 생일도, 평일도가 각각의 독립된 읍·면을 유지하고 있다.

 

 

 

 

 

뒤돌아 본 당목항


 

암흑속에 갇혀 걸어야만 내일이 오는 처절했던 32회차후, 일주일이 흘렀다.
빨리 이 길의 끝으로 가, 후련히 돌아 서 집으로 오는 내가 되기 위해, 2주 연속 장군의 바닷길로 나왔다.

 

이 길이 아니었음,

혹은 조약도라고도 불리우는 이 섬에 올리도 만무했기에 지친 걸음에 억지로 기쁨을 덧칠해 걷는다.

 

 

 

 

 

 

 

 

이번 이순신트레일은 그 간의 회차들중 가장 많은 5기의 해상교량들을 통과한다.

 

일전에 나는,

해상교량들의 명칭에 닷붙혀진 연륙(聯陸)과, 연도(聯島)의 정의성 없는 쓰임에 다소 혼동과 짜증이 났고,

연륙과 연도에 상관 없이 바다에 놓여진 모든 교량들을 해상교량이라 칭하기로 했다.

 

연륙교(聯陸橋)는 글자의 뜻대로라면 육지와 섬을 잇는 교량인데,

작년 9월 준공이 된 거제도와 산달도를 잇는 교량의 정식 명칭은 '산달연륙교였다.

 

연도교(聯島橋)는 글자의 뜻대로라면 섬과 섬을 잇는 교량인데,

작년 탐방을 한, 추자도에서 상도와 하도를 연결한 교량의 교명판에는 '추자연륙교라 박혀 있었다.

 

기관별 무개념에 따라 일관성 없이 붙혀지고 통용되는 대한민국 오류에 심히 유감이었다.

 

이번 회차에 건너게 될,

완도군 5개의 섬에 놓여진 해상교량들을 상대로 연륙교과 연도교에 대하여 확실한 정의를 내가 내리겠다.

 

육지인 강진군 마량면과 섬인 고금도를 연결하는 '고금대교연륙교이다.

약산도와 고금도를 연결한 '약산연도교 또한 연륙교이다.

 

섬과 섬을 잇는데..., 그 간의 내 주장대로라면 약산연도교는 연도교가 맞다.

하지만, 약산연도교를 건너 고금대교를 건너면 육지인 마량이고,

혹은 장보고대교-신지대교-완도대교-남창교를 건너면 육지인 해남군 북평면이다.

고금대교와 남창교가 없다면 연도교가 맞지만, 분명 약산연도교는 육지로 갈 수 있는 연륙교이다.

 

그렇다면 약산연도교의 교명 변경이 이뤄져야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명위원회 상정 혹은 지역민의 의견 수렴 등의 잘차를 거쳐야 가능한데,

쏟아지는 무개념들의 니말내말을 들어며 이를 바로잡고자 나설 공무원 또한 없다.

 

나머지 장보고대교, 신지대교, 완도대교, 남창교, 모두 연륙교이다.

 

 

 

 

 

 

 

 

 

 

태초에 화려하게 자리한 섬,

그 어떤 계기로 유명세를 가지게 된 섬,

 

오늘 내가 탐방을 하는 약산도와 고금도는 화려함도 유명세도 없는 그저 사람 살아가는 섬이다.
나는 이런 섬들이 되레 더 좋다.


이번 회차 완도권역 5섬을 상대로 한 루트는,

약산도 당목항에서 고금도 중심지까지는 지방도830호선을, 

고금도 중심지에서 신지도를 경유하는 완도항까지는 국도77호선을,

다음날 완도항에서 달도를 경유해 남창교로 가는 길은 구.국도13호선을 따라만 간다.

 

해안지선에 근접한 섬 길을 취해야하는데..., 나는 지쳤고, 빨리 이 길의 끝에 닿고 싶을뿐이다.

 

 

 

 

 

 

 

 

 

의외로 약산도가 기네 길어~

이런 생각들을 하며 섬의 동서를 축으로 하는 830번 지방도를 따라 걸음을 이어 간다.


당목항에서 잠시 든 설레임은 사라지고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걸음에 따분함이 붙는다.

 

 

 

 

 

 

 

 

 

 

약산면소재지를 지나 빨리 약산연도교가 보이기를 고대하면서 다소의 수직굴곡이 있는 길을 그저 걷는다.

 

이제 혼자 걷는 길에서의 나름 재미였던 보행의 질주는 당분간 행하지 못한다.

그러니 혼자 걷는 길의 즐거움은 없다.

 

 

 

 

 

 

 

 

 

 

 

 

이제 고개 하나만을 넘어서면,

고금도 덕암산이 보일테고 약산연도교도 짠하고 나타날 것이다.

 

 

 

 

 

 

 

 

학생의 수는 마약하겠지만 고등학교까지 있는, 두시간여의 약산도 탐방을 끝냈다.


이 섬의 끝에서 또 다른 섬으로 가야만이 집이 있는 사람들이 훼리호를 타던 당목항 오후의 풍경과,

면사무소쯤에서 잠시 같이 걷다가 이내 집이 있는 득암항 방향으로 간다는 소녀의 토요일 오후 뒷모습이,
먼 훗날에 약산도란 말을 들었을 때, 희미한 기억으로 생각나면 좋겠다.

 

 

 

 

 

 

 

 아리랑길 028 - 고금도2 (2019.04.13)  

장보고대교

 

 

 

약산연도교를 건너 고금도로 들어 왔고,

지방도830호선을 이탈 해 길의 방향을 섬의 동부 해변길로 틀었다.


바쁠 이유도 없지만, 아무리 바빠도 이 길에서는 제척을 시키지 않아야 할 곳이 있다.
그 곳으로 우선 간다.

 

 

 

약산연도교에서 내려다 본 고금도 덕동마을

 

 

 

 

 

 

 

 

2019년4월13일 15시21분,

노량대첩에서 전사한 장군께서 장지인 아산으로 가시기 전, 83일간을 머물러야 했던 그 곳에 도착을 했다.

 

 

 

 

 

묘당도 충무공 유적지

묘당도는 고금도와 연접한 작은 섬이었지만, 왜란 당시 조선수군의 마지막 본영있던 곳이다.

남해와 서해로의 이동이 수월한 좁은 수로는 군사적 요충지로 충분했다.
1598년 2월 17일 장군은 목포에서 8천여 명의 수군을 인솔해 와, 이곳에 진영을 설치했고,

수군의 재건과 동시에 전선을 건조 수리하는 등 7년 전쟁의 종식을 위한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다.
몇 개월후 명나라 수군 진린의 함대가 도착함으로서, 연합수군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다.
1598년 11월 19일,
7년전쟁을 끝내는 결정적 해전이었던 노량대첩에서 전사한 장군의 유해는,

이곳으로 모시어져 83일후 장지인 충남 아산으로 떠났다.

 

 

 

 

 

 

 

 

사실이었다고 해도,

사실을 입증하는 증빙사료들이 있다고 해도,
내가 태어나기전의 사실이었고,

내가 보고 겪지 않은 사실이었기에,
그 사실을 다음 사람에게 전할때에는 가,감의 토시 하나도 덧붙이지 않아야 한다.

 

사실의 전달도 이러한데...,
유신정권의 실권자가 자신의 영웅화를 위해 그에 견줄만한 인물이 필요했고,

때문에 장군을 과대 평가하여 지금의 장군이 되었다는..., 아주 해괴망측한 괴변을 짖꺼리는 인간들이 간혹 있다.

역사의 사실을 공부하기 보다는 조잡한 추론에 편승한 본인의 얄팍한 지식을 감추는 꼴의 대표적 유형들이다.

 

사실에 근거한 역사마저 대치하는 상대를 비하시키기 위한 모독의 논리로 이용하는 비열한 인간들,

그 추잡스런 인간들의 왜곡을 사실인냥 떠 벌리고 다니는 무뇌의 단순형 팔랑귀들이 더 꼴 사납다.
그들이 이 시대 진정한 토착 왜구이지 않나 싶다.

국가의 그 어떠한 지원조차도 받지 못 한채,

무능력한 임금과 당쟁에 미쳐 있는 나라의 백성들을 위해,

자신의 안위보다는 조국의 안위를 위해 살다가신 장군께 예를 표하고...,

 

그 곳을 돌아서 나왔다.

 

 

 



 

 

 

 

 

 

 

고금도 남북을 관통하는 77번 국도와, 지금 걷고 있는 830번 지방도가 만나는 고금초교잎교차로로 간다.


길가에 퍼질러 앉아, 순천에서 강진으로 오는 버스에서 먹어려 한 토스트를 딸기우유와 함께 먹었다.
배가 고파 그런지 그 크기가 줄어듦이 조금은 아쉬웠다.

 

 

 

 

 

 

 

 

 

 

16시37분 17.4km를 걸어, 
지난주 토요일에 이어 비슷한 시각에 아무런 인연도 없는 고금도 한가운데에 와 있는 내 모습이 되었다.


 

32회차의 시점이었던 고금초교 앞 교차로

 

 

 

 

 

한번 왔다고 발이 알아서 척척 걸어 나간다.
"잠깐" 맥주를 사야지~"

 

 

 


 

 

 

 

정신이 하나도 없는 길이었다.

 

도로법 제9조에서 고속국도 다음 등급은 일반국도이다.

분명 지금 내가 걷고 있는 도로는 눕은 타원형안에 77이라 표기된 국도이다.

 

허나, 차가 오면 무조건 멈춰야 할 만큼 그 폭이 좁고 길어깨는 없다.

더하여 길의 여유 토지는 싹뚝 짤라 자신의 농지로 갈취를 한 작태에 걷는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었다.

 

완도로 가는 주된 도로임에 운행을 하는 차들의 수는 엄청났고,

무엇이 급해 저리도 빨리 쳐달리는지..., 방어운전을 못 하는 운전자들의 철 없음에 화도 치밀었다.

 

도로의 관리주체는 '익산지방국토관리청일 것이고,

땅 값 오르기전에 빨리 수용을 해, 완도로 가는 좋은 길로 만들어 주기를 바랬다.

 

 

   

 

 

 

 

[고금도 관통 일반국도77호선의 현실]

 

 

 

 

 

 

 

 

 

저물녘의 심로에 항복을 해 행여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질수도 있고,

완도항에서 저녁이라도 먹을려면,

광주로 나가는 마지막 버스시간까지는, 완도항에 최소 20시까지는 도착을 하여야 하는데...,

 

18시12분, 신지도로 들어가는 장보고대교 북단에 도착을 했다.

완도 숙성봉으로 떨어지는 해를 보며, 한개비 태우는데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나? 싶기도 했다.

 

발이 걸어야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뇌가 걷고 있다.

발이 시키는대로 하니 그 곳에서 한참을 쉬게 되었다.

 

 

 

 

 

 

지난주에 이어 또 다시 고금도에 오게 되었다.

 

섬은 자족의 당당함으로, 스치는 관광객을 붙잡지 않았다.
스스로 잘 살고 있는 섬을 명품 섬, 가보고 싶은 섬, 등으로 치장을 해 버리면,

섬은 자립을 당당함을 잃고 관광객에게 의지를 하는 철창안 원숭이꼴로 살아야 한다.


부디 내가 보고 느낀 지금의 당당함이 고금도에 영원하길 바라면서 당당한 장보고대교에 올랐다.

 

 

 

 

 

 

 

 아리랑길 031 - 신지도 (2019.04.13)  

신지도송곡항에서 바라 본 장보고대교

 

 

해는 지는데, 남은 길은 멀고...,

 

 

 

 

 

장보고대교에서 바라 본 신지대교

 




 

 

 

그 교명을 정확히 닮은 장보고대교를 건너, 이번 회차의 3번째 탐방 섬 신지도에 입도를 했다.

 

섬의 지협부 남측해안에 길게 형성된 명사십리해변으로 인해 완도하면 명사십리였다.
길의 압축을 추구하는 자의 핑계는 내 아니라도 다수의 사람들이 섬으로 올 것임에,

나는 완도 가는 길목으로 이 섬을 치부한다였다.

송곡항으로 잠시 내려 갔을 뿐,

루트가 대상으로 한 다섯 섬들중 가장 빼어 난 경관을 가진 신지도는 완도로 가는 징검다리였다.

 

 


[송곡항 가는 길]

 


[송곡항과 장보고대교]

 

 

해는 제시간이 되자 바다로 들어갔다.

 

달리는 차들에게서 여행지에서의 토요일 저녁을 누리고자 하는 빛들이 한것 켜진다.
그들이 스치며 본 나는, 그래서 더 서글퍼지는 시간들이다.



 

 


[신지대교 가는 길]

 


[얼핏 보이는 완도항]

 

 

 

 

장보고대교에서 신지대교입구까지 5km남짓한 거리였지만,

걸음은 무뎌졌고 날마저 저무니 사람 맥이 쫙 빠지는 그런 기분이었다.

 

강독마을 고가도로밑에 잠시 퍼질러 앉아 있으니,

마을분 몇이 다가 올것 같아, 말을 할 힘도 없어 이내 일어나 정처 없는 발길을 이었다.



 

 


[신지대교]

 

 

저건 뭐야?

 

 

기억이 될 그 무엇도 남기지 못 한고...,

그렇게 신지도를 지났다.

 

 

 

 

 

 

 

 아리랑길 032 - 완도1 (2019.04.13~14)  

신지대교를 건너 온 77번국도변에서

 

 

토스트 하나,

지름2cm에 길이 15cm짜리 소세지 하나,

350mm캔맥주 하나와 포카리스웨트 약500cc정도,

하루종일 그것만 쳐먹고, 30km를 쳐걸어 완도에 입도를 했다.

 

밥을 사먹어려 해도, 집으로 가려 해도, 완도읍까지는 가야 하는데, 아직 3km를 더 쳐걸어야 한다.

2주의 인타발에 적응이 된 릴레이는 1주의 인타발에 이미 그 한계를 넘었다.

 

 


[완도타워와 완도항]

 

 

 

 

[1일차 종점 (완도읍 가용리교차로)]

 

 

 

20시17분, 약산도의 당목항을 출발한지 7시간17분이 흘러 1일차 종착지 완도읍에 도착을 했다.

 

광주에 23시까지만 도착을 하면 부산으로 가는 심야버스를 탈 수도 있는데...,

횡단보도앞을 서성이다가 길 건너 보이는 곰탕집으로 들어 갔다.

 

 

 

 

 



덮는 이불이 어찌나 무거운지...,

혼자 쳐박힌 모텔방에서 어떻게 잤는지, 일어나니 07시30분이었다.

 

계획한바 05시 모텔을 나와,

09시쯤 19km 지점에 위치한 남창교를 건너 25km를 더 걸어 14시까지는 땅끝선착장에 도착을 한다였는데...,

 

깨배줄 사람도 없고, 일어나야지 일어나야지 하면서 일어나지 못 했다.

 

 

 

[완도읍 시가지]

 

 

 

 

 

 



 

모텔을 나와 인근의 마트에서 먹을 것들을 좀 사고,

77번국도와 13번국도가 만나는 완도교차로까지 택시를 타고 갈까도 싶었지만,

택시를 잡고 기사의 궁금증에 답을 해야하는..., 그런 것들이 귀찮아 같은 길을 두번 걷기로 했다.

 

 

 

 

 

 

 

 

비가 온다고 했는데, 다행히 장보고공원까지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섬의 서부해안에서 서해를 주시하여야 할 그의 상이, 동부해안에서 남해를 주시하고 있다.

존치와 복원이라기 보다는 조성으로 보여지는 청해진우적지는 가지 않았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두 줄의 사실로 백 줄의 역사를 써 내려 간..., 의심의 역사는 탐독을 하지 않고 살았다.

 

 

 

 

 

 

 

 

장보고장군을 외면하고 돌아서니, 드디어 하늘에서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그 량이 밋밋해 우의를 꺼내 입는 귀찮은 호들갑 대신,

쳐맞으며 걷는게 더 남자답다는 생각으로 계속 비를 쳐맞으며 걸었다.

 

 

 

 

 

 

 

 

 

 

 

 

전망 좋은 곳 정자에서, 뭐를 좀 먹어며 쉬어야지 하며 열나게 오르막을 오르데,

그단세를 못 참고 한무리의 라이더들이 나를 추월 목표로 한 그 정자에 '청해진을 치니,

할 수 없이 고갯마루를 내려가 첫 번째 나오는 버스정류장에서 배낭을 풀었다.

 

열나게 모닝홉을 마시는데, 조금전 정자에 진을 친 그들이 나를 힐끔 쳐다보며 지나간다.

 

 

 

 

 

 

 

 

 

[대창1구]

 

 

[불목삼거리를 지나며]

 

 

 

신.국도와 병행하여 완도대교로 가는 구.국도는 한적하다 못 해 너무도 적막하다.

심심, 따분, 쓸쓸, 이런 것들만이 도열된 길이다.

 

이번 회차의 종착지를,

당초 해남군 송지면 땅끝에서 북평면 남창정류소로 바꿨는데도 남은 길은 멀기만하다.

 

같이 시작을 했기에,

목표로 한 끝은 달라도,

오늘 내가 먼저 그 곳에 닿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내게 장거리 트래킹을 알으켜준 분들에 대한 경우가 절대 아니다.

아마도, 그래서 아침에 늦게 일어나졌나 보다. 

 

 

 

 

 

[군외면 황진리 계도 넘어로 보이는 두륜산자락]

 

 



중리마을을 지나니 1주탑사장교 완도대교가 보였다.

오락가락인 비는 조금씩 방울의 수를 늘렸지만 하늘을 보니 아주 가소로웠다.

 

저 교량을 건너 달도를 관통해야 하고,

이번 회차의 마지막 연륙교인 남창교를 지나야만이 오늘 걸음을 멈출 수 있다.


20km에도 못 미치는 거리, 작심을 하면 단번에 갈 수 있는 거리인데...,

오늘 왜 이렇게 지치고 걷기가 싫은지? 모르겠다.

떡을 치며 걷는다.

 

 

 

 

 

 

 

 

 

완도대교

 

 

12시20분 완도읍 가용리교차를 출발한지 4시간20분이 지난 시간,

고작 17km에 불구한 거리를 떡을 치며 걸어 보슬비 처량하게 내리는 완도대교에 딯았다.


섬의 동부해안을 따라 남창과 완도읍을 수시로 운행하는 버스를 당장에라도 타고 싶었지만,

그 마음 꾹 참아내며 완도대교를 건넜다.

 

십여년 전, 완도가 고향인 ?소장은 수시로 측량점을 망실했고 수시로 그 복원을 요청해 왔다.

지도 미안했는지, 어느 날 고향에서 가져왔다며 멸치 한박스를 내게 주었다.

차라리 돈을 주지..., 멸치는 니이미~ 멸치를 집에 갔고가니 엄마가 멸치가 좋다고 흐뭇해 했다.

 

멸치도 못 사고 완도를 벗어났다.

 

 

 

 

 

 

 

 아리랑길 033 - 달도 (2019.04.14)

대한민국 두 번째 연륙교인 "남창교"

 

 

이제 달도를 관통하여 남창교를 지나면 집에 갈 수 있다.

 

오직 집으로 가기 위해 남은 3km에 남은 의지를 모조리 다 불태운다.

집에 가고 싶어 죽겠다.

 

 

 

 

 

 

 

세월아~ 네월아~ 무뎌진 걸음으로 달도대간을 종주 해 남창교 초입에 들어섰고,

인정사정 없이 남창교를 건넜다.

 

 

 

 

 

 

 

 

 

 

 

조상중에 흠이란 함자의 분이 계셨고,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이란 시구를 남겨셨다.

 

어제와 오늘 걸어나온 바닷길의 행로가 그 시구를 닮았음..., 한다.

 

 

 

[이순신트레일 33회차-종점 (전남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

 

 

 

2019년4월14일 12시52분,

지난 주 일요일 이른 아침의 장이 선 풍경이 정겨웠던 그 곳을,

이번 주 일요일에는 육지길이 아닌, 섬으로 이어진 바닷길을 돌고 돌아 왔다.

 

뭐를 좀 먹고 싶었지만...,

50분에 광주로 나가는 버스가 곧 온다길래, 또 머물지 못하고 그 곳을 떠났다.

 

 

 

 

 

 

역마살의 운이 있는 날인지,

기다리지도 않았는데 바로 오고, 내리면 바로 타야하는 버스시간들로 인해 8시간을 쫄쫄 굶은 채, 

그리웠던 집으로 돌아 왔다.

 

닭을 시켜 소맥을 말아 마시며, 발바닥에 퍼진 물풍선 꺼집들을 찢어냈다.

아물려면, 아마도 족히 달포는 지나야 될 것 같다.

 

당분간 길에 나가지 않으려, 부러 찢어내지는 않았는데...,

 

 

 

 

 남해안 해상교량 시리즈 40 - 약산연도교

 

 

 남해안 해상교량 시리즈 41 - 장보고대교  

 

 

 남해안 해상교량 시리즈 42 - 신지대교  

 

 

 남해안 해상교량 시리즈 43 - 완도대교  

 

 

 남해안 해상교량 시리즈 44 - 남창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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