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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이 될 길의 기록

아리랑길 062 - 지심도 본문

아리랑길 - 낙도바닷길

아리랑길 062 - 지심도

경기병 2020. 2. 24. 16:24

몇일전의 출근길 아침, 

 

단지내 화단에 조그마한 하얀꽃들이 앙상한 겨울나뭇가지에 가냘픈 모양새로 피어나 있었다.

갓난아기 같아 시시때때 그 꽃에게로 갔다.

 

 

輕騎兵梅

 

 

토요일, 아직도 인생사는 심심치 않게 떠나야 할 발길을 잡았다.

일요일, 아기 같은 매화가 잘 있는지? 본 다음 '내 마음의 포구 장승포'로 갔다.

 

 

 

[거가대로 침매터널 입구]

 

 

[거가대로 제2사장교 구간]

 

 

처음엔, 차를 노포동 공영주차장에 대놓고 버스를 타고 장승포로 가고자 했다.

딱 거기까지만 생각을 했어야 했는데...,

 

나중엔, 고현에서 장승포로 가는 버스가 연초삼거리까지는 온 길로 가는 것도, 

그러다 12시30분 배시간도 넘기게 되면..., 그런 걱정까지 해버리니 차를 몰고 갈 수 밖에 없었다.

 

어쩌다 생각이 났고, 생각이 나도 흘러 온 세월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길이나 한번 걸어야지~ 했는데..., 그 마저도 스스로의 구실로 행하지를 못했다.

 

아직은 회상이 일상을 넘어서지 못하는 세월에서,

그 섬으로 갈 때에는, 장승포시외버스정류장에 내려 그 길을 걸어 선착장으로 가고자한 마음은 부질 없었다.

 

10시20분, 장승포항내 지심도선착장으로 차를 몰고 와 버렸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시작, 지심도로 가는 뱃길엔 바이러스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장승포와 지심도를 수천번은 오고간듯한 낡은 도선은 120석 모두 만석이었다.

 

내가 앉은 좌석의 앞열,

앙증맞은 마스크를 낀 너댓살된 여자아기가 할아버지 무릅에 앉아 스마트폰게임이 한창이다.

화면을 꼭꼭 누지르는 손가락이 귀엽고, 집중을 하는 눈망울이 너무도 초롱하다.

 

그 모습에, 지심도 동백에 대한 설레임은 시들고 말았다.

 

 

 

 아리랑길 062 - 지심도 (2020.02.23)  

지심도 동백숲 사이로 보이는 지세포 바다

 

10시50분, 배의 앞머리만을 겨우 접안을 시킨 지심도선착장에 내렸다.

 

하늘은 더 없이 맑았고,

전날의 바람이 대기중 부유물들을 싹다 날려보내 시야 또한 확다 트인 날이다.

 

 

 

 

 

나는 그 꽃을 알고도 있었고 보기도 보았다.
거제도 시방해안에서 그 꽃을 담은 시화의 사진 한 장에, 나는 그 꽃에 반했다.

작가 김훈은 그 꽃을 '절정일 때 떨어져 죽는 꽃'이라 했고, 그래서 또 한번 그 꽃에 반했다.

 

갱년기 여성호로몬의 증가로...,

그 꽃을 보러 지심도에 왔다.

 

 

 

 

 

풍경은 비워져 있을때가 가장 진실이다.

같이 섬으로 온 이들이 섬의 진실을 가리기전, 제일 먼저 하선을 한 다음 빈풍경속으로 들어섰다.

 

 

 

 



해안절벽 전망데크는,

앞 배로 섬으로 와 멍을 때리고 있는 중년들과, 곧 들어닥칠 중년들로 비좁아 질 것임에 냉큼 돌아서 나왔다.

 

4km쯤 되는 섬의 탐방로는 작심만 한다면 11시50분 배로도 섬을 다 돌고 나갈 수 있지만,

구지 그렇게까지 바삐 탐방을 하여야 할 이유는 없다.

 

오늘은 지심도만을 탐방하고 16시이전 집으로 돌아 가, 프로배구 여자부 현대건설과 GS칼텍전을 보면 된다.




- 포진지 가는 길 

 



아직도 존치를 시킨 일본군 포진지, 그걸 보려고 온 내 걸음...,

썩소를 머금고 다시 섬의 주능선길로 올랐다.


 



섬의 중앙부 능선에 아담한 동산이 만들어져 있었고, 그 곳에서 보이는 바다풍경에 사람들은 머물고 있다.
섬은 바이러스가 창궐을 하는 오늘에도 찾는이가 많은 유명섬이다.

20여명의 주민들은 각자의 집 담벼락에 커피,동동주,파전을 써 붙혀 놓은 채 살고들 있다.


동백꽃은 또 그렇게 피어나야 하고...,



두미도에서 본 동백꽃이..., 여자도에서 본 사람의 집들이..., 그리워진 나는, 아침에 본 매화가 보고 싶어졌고, 섬으로 오는 배안에서 만나 그 아기가 한번 더 보고 싶어졌다.
매화는 집으로 가면 볼 수 있을테고, 그 아기나 찾아러 다니자~

 






혼자서 가야 좋은 섬이 있듯, 여럿이 와야 좋은 섬이 있다.
단언컨데, 지심도는 여럿이 와야 좋은 섬이다.혼자 오면 미친놈이 된다.

 

- 동백터널




아기는 찾지 못하고 동백터널속을 헤메여 섬의 최북단전망대에 다달았다.선하게 보이는 부부가 점심을 먹고 있어, 그 오붓함을 방해하지 않고자 이내 돌아섰다.


- 지심도 최북단 전망대


- 지심도 북단에서 바라 본 장승포항


사실은, 이번 주말 1박2일 일정으로 제주로 가 올레와 주변 섬들을 탐방하고자 했다.결국은 버티고 버티다가 토요일 새벽, 어쩔 수 없이 예매를 취소하고 말았다.
제주도 동남부해안을 걷고 있어야 할 걸음이, 소문난 잔치에 와 먹지도 못하는 꼴이다.
지심도 푸른 바다를 눈 앞에 두고 결심을 했다.세상사 나를 필요로 해도, 내 인생사 더는 세상사에 휘둘리지 않겠다!고...,그런 삶을 살겠노라!!고...,





그나저나, 그 아기는 어디에 있는지?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가 않는다.








선착장으로 돌아가는 길가에서, 동백섬에 핀 매화와 마주쳤다.여자들이 꽃의 이쁨에 신이난 틈에서 나도 매화를 쉽사리 떠나지 못한 채, 한참을 머물렀다.

 

 





나이가 들수록 달리 보이는 것들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시부적하게 보고 넘긴 것들에 각별해지는 마음 듦도 그렇고...,



분명 동백꽃을 보러 온 섬인데...,동백숲길은 무심히 지나치고, 마주친 한그루의 매화나무에는 자꾸만 눈길이 간다.
분명 동백꽃을 보러 온 섬인데...,동백꽃은 찾지도 않은 채, 아무런 인연도 없는 남의 아기를 한번 더 보고자 헤메이고 있다.
 




섬의 서측으로 난 길의 끝은 선착장이었고, 12시20분 그 곳으로 돌아왔다.
남측바다 건너에는 서이말등대가, 북측바다 건너에는 양지암등대가 아련하게 보인다.좋은 사람들과의 행복한 동행으로 닿았던 곶(串)에서의 즐거운 기억이 바다 건너에 있었다.


- 지심도 선창장에서 본 양지암등대가 있는 곶(串)

 

 

 

 

 

올 때의 반을 섬에 남겨둔 채, 장승포로 돌아가는 뱃길.

 

혹시나 싶어 배안을 둘러보니, 동백 대신에 찾아 다녔던 아기가 아빠품에서 새록새록 자고 있다.

아를 얼마나 걷게 했음? 아가 뻗었노?? 싶었지만..., 

아파트 화단에서 본 매화를 지심도에서 볼 때 든, 그 기분처럼 마음이 더 없이 좋아진다.

 

사람이 아니, 아기가 꽃 보다 아름다운 2020년 이른 봄날의 지심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