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이 될 길의 기록
등대기행 20 - 묵호등대 본문
얼마전까지 떠나는 주말은 기다려지는 디데이였다.
얼마전부터 떠나는 주말은 망설여지는 디데이였다.
금요일 퇴근후,
저녁상을 물리고 티비앞 소파에 퍼진다면 아마도 내일은 떠나지 못할 것 같아 21시20분에 집을 나섰다.
머물수는 없어 떠나는 심정이 자꾸만 발길을 붙들었지만...,
등대기행 20 - 묵호등대 (2020.05.23)
경부선 구포역을 기준 444km를 북상했다가 돌아오는 여정이다.
혹자들은 이동하는 밤을 1무로 나타내지만,
이는 정확히 날짜회귀선을 역으로 가는 이민에서만 성립이 된다.
혹은 타임머신을 탔을 때나...,
2박1일의 여정이다.
갈 때의 1박은 철로에서, 올 때의 1박은 7번국도에서 잔다.
2박을 허비하여야 이뤄지는 1일에는 동해해양수산청이 관리하는 강원권역 4등대를 탐방하고,
아직도 끝을 못낸 해파랑길 48(남천교)~45코스(속초해변) 33km를 남하할 것이다.
수년전, 강릉의 정동진역에서 울산의 태화강역까지 열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적이 있었다.
무려 일곱시간이 소요 되었고, 지겨워서 세상을 하직할뻔 했다.
그 이후로 복수의 철로를 거치는 열차는 무조건 타지 않기로 했다.
이번 여정의 첫번째 탐방등대는 북상기준 맨 처음에 위치한 묵호등대다.
23시 부산동부터미널을 출발해 속초로 가는 심야버스가 있지만, 그걸 타면 03시쯤에 동해시에 떨궈지게 된다.
내가 미친놈도 아니고 그 시간에 동해시에 내려 택시를 잡아타고 등대로 가는 지랄은 아무리 생각을 해도 아니었다.
대신에 일곱시간이 걸리지만, 날이 밝고 세상이 움직일쯤 도착을 해 지랄을 해도 해야지 싶었다.
자면 일곱시간은 지나 간다.
구미까지는 자다깨다를 반복했고, 이후로는 기절을 했다.
분명 승객이 제법 있었는데...,
차내방송에 잠이 깨니, 열차는 운무낀 폐광지역을 통과하고 객실에는 나 혼자였다.
은하철도999호를 탔나? 싶어 뒷칸의 객실로 가니 넷다섯의 승객이 그나마 보였다.
06시19분, 경부선-경북선-영동선을 밤새 달린 부산발 동해행 무궁화호 열차는 종착역인 동해역에 도착을 했지만,
한대 태울 여유도 없이, 06시30분 동해에서 강릉으로 가는 열차를 또 타야만 했다.
06시37분,
해파랑길34코스에서 쳐다도 안본 채 지나쳤던 그 등대를 가기 위해,
해파랑길33코스의 종점인 묵호역에, 집을 나온지 10시간만에 도착이 되었다.
어항이 있는 도시의 아침은 너무도 역동적이었다.
이 꼴을 보기 위해 떠도는건 아니지만...,
시나브로 낡고 있는 도심의 건물들과, 그 건물들을 연결한 각종 인프라선들 사이로,
밤을 밝힌 묵호등대가 보였다.
한번은 해파랑으로 저물녘에, 또 한번은 등대기행으로 이른 아침에...,
내 삶이 점점 미쳐간다.
식전 개오름이다.
식전 골목가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에게 너무도 미안스러워 고양이 보다 더 살살 걸었다.
열차에서 어떻게 잤는지...,
뒷통수에 형성된 새집들이 흘린 땀에 뭉게질때쯤 등대가 서 있는 고갯마루에 올라섰다.
등대와, 그 등대가 비추는 바다가 하나로 보이지 않는 풍경은 발길을 돌리게 한다.
등대와, 그 등대가 보는 바다를 따로 찍고 돌아섰다.
강릉가는 기차시간도 촉박하고, 역부근에서 뭐라도 좀 사 먹을려고...,
고기를 잡아 항으로 돌아온 배,
배들이 잡아 온 고기들을 중심에 놓고 모여든 사람들의 바쁜 손가락질,
삶의 파노라마가 한창인 부둣가를 지나 묵호역으로 돌아오니 07시20분이었다.
삼십여분의 여유가 생겼지만 마땅히 들어 갈 식당이 없어, 아침밥 대신 세수를 하고 강릉으로 가는 열차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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