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이 될 길의 기록
엄마에게 보여준 바다 - 부소도 노둣길 본문
완도, 진도, 목포로 가면 아직은 타고 갈 뱃길이 제법 남았지만,
최소 여덟시간 이상을 오가야 하는 육짓길의 여정이 고달파 선뜻 나설질 못하는 날들이었다.
엄마의 휴약기,
휴약기가 아니더라도 그 곳을 오가는 여정이 상당한 무리임을 알지만,
떠날 수 있을 때, 떠나야한다는 심정으로 11시쯤 집을 나서 해를 따라 서쪽으로 갔다.
엄마에게 보여준 바다 - 부소도 노둣길 (2022.3.5)
올해 처음 목포로 간다.
목포북항 혹은 암태도 남강항을 시·종점으로 삼아,
해상교량(서남문대교)으로 연도가 된 비금도와 도초도를 탐방하고자 한다.
순천~영암간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차가 들썩인다.
바람이 어찌나 세차게 불어대는지 시속 100km/hr 주행도 버거운 아찔한 두 시간이었다.
14시가 조금 지난 시각,
목포로 들어서기 전 일로읍 재래시장에 들렀다.
찾는다고 찾아 간 식당이었지만, 뭐시 하나라도 입에 맞는게 없다.
내가 숟가락을 놓으니, 입맛을 잃어버린 엄마 역시도 식사를 끝내 버린다.
맛의 도시 목포에서,
좀 더 비싸고, 좀 더 맛있는 무엇인가를 사주고 싶었지만,
유명세와 소문에는 밀집이 수반되고, 이는 내가 정한 방역수칙을 벗어나는 짓이다.
밥이야 또 사 먹으면 그만이지만,
객지에서 밀집없는 맛집 찾기가 그리 쉬운일만은 아니다.
16시에 다이아몬드제도 서각으로 가는 철부선을 타고자,
목포북항에 도착을 하니 15시35분이었다.
근데, 20여분 뒤 출항임에도 매표소에 사람이 없다.
근데, 비금도까지 항해시간이 두 시간이다.
아무리 뱃길에 미쳤다지만, 두 시간은 지겨운 시간이다.
매표원도 나타나지 안고..., 에라이 암태도 남강항에서 탈란다~
오늘 부산으로 돌아가는 여정이지만,
17시에 암태도 남강항에서 출항을 해도 귀로의 여정에는 별 걱정이 없다.
비금도에서는 22시30분까지 섬을 나오는 다수의 항차들이 있었다.
물론 집으로 돌아가는 밤의 여로가 조금은 힘들겠지만...,
16시30분쯤, 암태도 남강항에 도착을 했다.
다이아몬드제도 서각을 오가는 철부선들이 얇은 바다에 들어선 항에 매여져 있었다.
근데, 30여분 뒤 출항임에도 또 매표소에 사람이 없다.
하~ 나 이거 뭐야~ 오늘..., 이러고 있는데,
낙담을 한 표정이 역력한 중년의 남자가 '지금 주의보가 발령돼 운항이 중단되었다'고 했다.
도초도 자산어보촬영지,
비금도 이세돌바둑기념관,
그리고 그 두 섬을 연결시킨 서남문대교,
바람 때문에 오늘 목포와 신안으로 온 모든 이유가 다 날아가버리는 순간이었다.
고향인 도초도에 노모가 살고 있어,
집이 있는 울산에서 두 달에 한 번은 이 곳으로 온다는 아저씨의 낙담 만큼은 아니었지만,
꼴랑 이 바람에 상등신이 되어 항에 꼼짝없이 묶여진 철부선들의 꼴을 보고 있자니 짜증이 짜증을 불러왔다.
시계가 다섯신데, 인자 집에 가자!
부산에서 신안까지의 지정학적 이동의 가치를 모르는 엄마가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해 왔다.
그래~ 집에 가자!
부산에서 신안까지의 지정학적 이동의 가치를 아는 나는 애써 불을 끄고 중앙대교에 차를 올렸다.
허무만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기는 싫었다.
섬 하나가 생각이 났다.
그 섬으로 가는 길에선,
또 등대 하나가 생각이 났고,
지난날의 기억을 더듬어 등대가 서 있는 팔금도 서단의 곶으로 향했다.
팔금도 서단에서 그 날의 기억들과 조우를 했다.
팔금도등대를 보고나와,
안좌도 남부 두리해안으로 가 박지도와 반월도를 일주하고,
그 밤에 목포대교를 건너 화원반도 서단으로 가 목포구등대가 쏘는 섬광을 맞고도 부족해,
또 진도대교를 건너 이순신트레일의 종착지 벽파진을 거쳐 다음날 하조도를 가기 위해 팽목항으로 갔다.
바람이 상그라워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아니다, 그 날의 기억들이 부는 바람에 다 날아갈까봐서 내리질 않았다.
기억이고 나발이고 빨리 그 섬으로 가자!
뒤에 앉은 엄마의 집에는 가자는 독촉이 폭발하기 전에...,
이 섬에 오고자 이 곳으로 온건 절대 아니다.
그날은 가고자 한 박지도와 반월도로 들어가는 퍼플교가 공사통제라서 이 섬으로 갔다.
오늘은 가고자 한 비금도와 도초도로 들어가는 뱃길에 바람이 불어 이 섬으로 왔다.
그냥 그 자리에 있는 섬,
그냥 아무것도 내세우지 않고 사는 섬,
2022년 3월 5일, 나는 또 그냥 그렇게 이 섬과 마주했다.
막 물이 빠지기 시작한 노둣길을 차를 타고 오가는 것으로,
안좌도 남부해역 뻘의 바다에 처박힌 부소도를 엄마에게 보여줬다.
그 곳에 가면 그 섬도 있다.
그게 부소도였다.
다음날,
부소도 노둣길에서 튄 뻘이 잔뜩 묻어 차를 타고 광안대교를 건넜고, 광안리해변도로를 지났다.
꾸밀대로 꾸며진 대한민국 최고의 해변에 열광하는 저들은 알까?
부소도 노둣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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