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이 될 길의 기록
엄마에게 보여준 바다 - 만리포해변 본문
주말마다, 심지어 토요일에 이어 일요일까지,
한반도 곳곳을 돌아다니다보니 이제는 점점 갈 곳이 없는 막연함에 지치곤 한다.
더 처자빠져 자고 싶었지만, 창으로 들이치는 햇살에 이불을 걷어내니 2022년이었다.
창문을 열어 세상을 보았지만, 바뀐건 아무것도 없었다.
맨날 뜨는 해를 가지고 새해가 밝았다고 호들갑들을 떨지만,
그래봤자 나이만 한 살 더 처먹었을뿐이다.
새해가 처밝았으니 신년출타를 아니할 수 없어,
늙어가는 아들은 늙어버린 노모를 데리고 먼 길을 나섰다.
엄마에게 보여준 바다 - 만리포해변 (2022.1.1)
내심 '서해랑제부도해상케이블카'를 염두에 두고,
충남도해안으로 간다고 하니, 엄마가 해저터널 뚫힌데를 가보자고 했다.
그래서 일단은 출발을 할 때의 목적지는 77번국도가 만든 '보령해저터널'이 되었다.
그 통과의 시점을 보령쪽으로 취하면 남해고속도로 진주를 거쳐 북상을 하게 되지만,
작년에 한 오십 번은 더 지나친 그 길이 지겨워 원산도를 시점으로 취하니 경부고속도로가 북상의 주된 길이 되었다.
마음속엔 미탑승 케이블카들이 위치한 춘천과 평창 그리고 제부도와 임진각이 스며들었지만,
해돋이를 끝낸 수도권 인파들이 몰릴게 뻔한 그 곳들을 작금의 시절에 갈 수는 없었다.
모여도 된다고 하면 모여서들 간염 확자자 수를 늘리고,
모이지 말라면 모이지 않아서들 간염 확진자 수를 줄이는 참 바른 나라 바른 국민들이다.
개인 방역으로 바이러스를 차단하고 사는 국민은 국민 취급도 받지 못하는 나라가 되었다.
간신히 고속도로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왕지사 작심을 하고 탐방을 하는 충남도 해안길,
조선시대 3대 읍성 중 한 곳이라는 해미읍성을 구경하고,
35년 전의 내 청춘이 하룻밤을 머물렀던 만리포로 가 2022년 첫 날의 해넘이를 본 다음,
77번국도를 타고 안면도와 원산도를 가로질러 오늘 탐방의 최종 목적지 '보령해저터널을 통과할 것이다.
16시쯤, 충남 서산시 해미면에 도착을 했다.
어디서 이런 돌들을 채집하여 성을 축조했는지?
당시의 주적관계가 어떠해서 이 곳에 이 성이 필요했는지?
그런 의문보다는 서산에 이렇게 예쁜 고을이 자리해 있음이 낯섦으로 다가왔다.
내 사는 곳 근처에는 동래읍성이 있지만,
여태까지 살면서도 그 성안으로는 한번도 들어가보질 못했다.
차를 대고 성문으로 가니 성안 구경을 끝낸 엄마가 성문을 나오고 있어,
해미읍성 역시도 그 성안으로는 들어서질 못했다.
해미읍성을 둘러본뒤 대다수의 이들은 호떡집으로 간다고 했다.
찾아 간 호떡집은 구워지는 호떡과 그 호떡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비율이 1:10을 넘어 있었다.
어머니 曰 "꼴랑 호떡 하나 물라고..., 저런~ 가자!"
단호한 엄명에 따라, 해를 따라 오늘의 두 번째 탐방지 만리포로 간다.
백야(白夜)도 없는 심심한 한반도에서 일몰은 아무리 겨울이라도 17시30분이전에는 일어나지 않는다.
17시25분, 숱한 인파가 어슬렁거리는 만리포해변에 도착을 했지만 해의 행방이 묘연하다.
그단새를 못참고 넘어갔나? 하며, 해를 찾았지만 해가 보이질 않는다.
알고보니 해의 입수지점이 야트막한 산에 가려져 있었다.
오늘 1월1일에 역설로 해넘이를 보고자 했음은,
오늘 서해로 왔음에 따랐을뿐이다.
해가 없다고 탄식을 하니,
어머니 曰 "맨날 뜨는 데, 뭐시 아쉽다고 그래샀노..., 어서 집에 가자!"
80년대 후반, 티비 개그프로에서 '똑딱선 기적소리~' 하며 라디오장사가 등장하는 코너가 있었다.
그렇게 각인이 된 만리포를 찾아서,
89년인가? 90년인가쯤? 년,놈들을 모아 밤기차를 타고 천안을 거쳐 이 곳에 왔었다.
35년쯤이 흘러 다시 찾은 만리포...,
자취를 감춘 똑딱선과 해 대신에, 돌아갈 수 없는 시절만이 보였다.
안면도와 원산도를 종단해 보령으로 가는 77번국도 남하길,
먼 타지에서 맞이한 어둠이 짙어질대로 짙어진다.
짙어진 어둠속 돌아가야 할 집은 너무도 멀리에 있어 아득하기 그지없다.
길가에 즐비하게 늘어선 개국지와 꽃게탕을 파는 식당들에 출입이 안되는 신세마저 서글프게 만드는 어둠이다.
그래도 이 길을 따라가면 집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해미읍성에서도 만리포해변에서도 그저 그런 반응만을 보였던 암마가,
보령해저터널을 통과할 때에는 반색을 했다.
엄마는 자연 그대로의 해안가보다는 토목기술로 장식된 해안가를 더 좋아했다.
터널이 개통을 한 날짜(2021.12.1)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엄마는 바다속을 뚫은 길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진입의 양방향 중 어느 한 곳에는 조성이 돼있기를 기대한 휴게소는 없었다.
터널이 잠긴 바다는 조망을 못하더라도 차를 세울 공간마저도 없었다.
할 수 없이 터널을 빠져나와 작년 8월15일에 들린 대천항수산시장으로 갔다.
저녁끼니를 떼울 무엇인가를 구하고자 했지만, 그 마저도 여의치가 않았다.
군산과 전주 그리고 함양과 진주를 지나는 길이 가장 짧았다.
다행히 그 길에 위치한 휴게소에서 저녁을 사먹을 수 있었고, 엄마는 무난하게 저녁약을 복용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직 1월1일이 30여분 남은 시간이었다.
하루에 약800km를 내달린 날이었지만, 전혀 피곤하지 않은 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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