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이 될 길의 기록
엄마에게 보여준 바다 - 칠천량 본문
무료한 시간은 늙어가는 시간이다.
베란다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을 보노라면 그 시간에 갇힌 기분이다.
집은 늙고, 밖은 늙지 않는다.
그 시간이 싫어 엄마를 데리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엄마에게 보여준 바다 - 칠천량 (2021.09.26)
일요일 점심나절에 집을 나섰으니,
멀리는 못가고 그렇다고 너무 가까운 곳은 꺼려진다.
영도? 사람이 많을 것 같아 간염의 위험성이 높다.
진해? 대부분의 해안선이 봉쇄라서 가본들 갈 곳이 없다.
통영? 또 통영이지만, 가고 싶지만, 가는 길이 지겨워 가기가 싫다.
삼천포? 지난주에 갔다 왔는데, 또 간다면 삼천포-초양-늑도-창선대교를 타고 남해까지 갈 것 같아 못간다.
칠천도나 한바퀴 돌고 올란다.
통영에서 돌아 올 때 수시로 거제도를 경유했지만, 오랫만에? 거제도로 간다.
엄마가 조수석 뒷자리에 앉았기에,
거제도 북부해안을 돌아 칠천량을 건너 칠천도로 들어가 섬을 반시계방향으로 일주할 것이다.
14시쯤 유호전망대에 도착을 했다.
엄마는 차에서 내려 바다를 보고,
나는 길가 모퉁이에서 여지없이 담배를 꼴아물고 그 날의 나를 보았다.
4월의 어느 날,
타병원에서 찍은 영상들을 확인한 의사는 엄마를 먼저 내보냈다.
당장 입원을 하고 내일부터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지만, 거부를 하고 병원을 나와버렸다.
집에 데부다주고 어서 회사가라는 엄마를 데리고 무작정 거가대로를 건너 가다보니 이 곳으로 왔었다.
엄마는 차에서 내리지 앉았고,
나는 바다를 내려다보며 망연자실한 담배연기만을 내뿜었다.
6개월여가 흘렀다.
그 사이에 엄마는 울릉도 바다를 보았고, 진도 바다를 보았고, 통증도 사라졌다.
오늘 이 곳에서 내뿜는 내 담배연기에서 근심은 사라졌다.
어쩌면 남부해안보다는 북부해안에 더 정이 가는 거제도다.
그건 아마도 아직은 인적이 드물기 때문이다.
량(梁)은 해협을 뜻하지만, 반드시 그러하지는 않다.
한반도 바다에 붙혀진 량(梁)은, 뭍과 가까운 섬 사이의 좁은 수역을 말한다.
동해와 서해에는 없고 오로지 남해에만 있는 바다가 량(梁)이다.
초량(영도), 칠천량(칠천도), 견내량(거제도), 노량(남해도), 마량(고금도), 명량(진도)이 그러하다.
14시30분쯤 칠천량을 건넜다.
무능한 선조와 조정은 유능한 이순신을 시기하고 질투했다.
권율과 원균을 믿었지만, 정유년에 다시 침략을 한 왜에게 조선은 또 아작이 났다.
량의 바다에서,
200여 척의 전선을 가졌던 원균은 칠천량에서 대패를 당했지만,
금신상유십이전선의 이순신은 명량과 노량에서 연거푸 대첩의 승리를 기록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지성에 기도는 없다.
하늘을 감동시킬 이유도 없다.
기도 대신에 목숨을 걸고 바다에서 싸워 이겼을뿐이다.
기도 대신에 매 주말 엄마를 데리고 이 바다 저 바다를 서성였을뿐이다.
가끔은 태어날때부터 개념이라곤 눈꼽만치도 없는 사람들을 만난다.
엄마와 바다를 보러 나선 길에서 이런 류의 사람들을 만나지 않기를 바라고 바란다.
안전거리를 두지 않고 바짝 붙은 운전자들...,
텅텅 빈 테이블들이 즐비함에도 불구하고 꼭 옆에 쳐앉는 인간들...,
때문에 고속도로에서는 질주를 할 수 밖에 없고, 점심은 14시를 넘겨 먹는다.
일곱의 강이 있어 칠천도라 했다.
섬에서는 황덕도를 건너 갈 수도 있다.
늙어가기 싫어 나온 바닷길,
근동에 아직도 설레이고 낯선 칠천도가 있어 바다에서 또 하루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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