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이 될 길의 기록
봄이 오는 바다 - 가오치항에서 사량도로 간 뱃길 본문
평일엔 회사를 오가고,
주말엔 엄마를 데리고 세상을 서성이고..., 그렇게 사는 요즘이다.
내일 회사 안가제?
그 말에 달력을 보니 검은색일거라 치부한 숫자는 붉은색이었다.
일어난 삼일절 아침,
아기를 닮은 가냘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봄비였다.
그렇다면...,
봄비를 맞으면서~
봄이 오는 바다 - 가오치항에서 사량도로 간 뱃길 (2023.3.1)
지난주 토요일은 골방을 뒤졌으니,
오늘은 다락방을 뒤지고자 통영으로 향했다.
봄비를 맞으면서~
통영으로 가는 길,
장도 볼 겸 들린 진동에서 소문 자자한 국수집으로 들어섰다.
진정한 국수의 참맛을 모르는 이들에게 또 가스라이팅을 당했다.
국수는,
비법이고 나발이고 세가지 레시피에만 충실하면 그 맛이 보장이 되는 음식이다.
곰국처럼 우려낸 육수, 구포국수, 채썬 단무지와 데친 정구지...,
다 좋은데 자가제면의 한계가 극명한 맛이었다.
국수집을 나오니 비는 더 이상 내리질 않았다.
그러니 다락방은 가기가 싫어졌다.
라디오에선,
산너머 조봇한 오솔길에 봄이 찾아 오단는데..., 말이다.
그래서 미친놈은 또 가오치항으로 갔지...,
그리고 미친놈은 또 사량도 가는 뱃길에 엄마가 탄 차를 싣고 말았지...,
또또또고 나발이고...,
봄비가 내렸던 일백네번째 삼일절 오후,
일년 전 '이제는 그만 올거얏!' 하며 작별을 한 사량도로 가는 뱃길에 올랐다.
자고 일어나면,
영남권 섬들의 바다와 호남권 섬들의 바다가 바꿔져 있기를 바래보았지만,
아무리 자고 일어나도 사량도는 사량도에 비금도는 비금도 바다에 있었을 뿐이다.
왜 사람이 이동을 해 섬을 찾아가야 하노,
섬이 위치 이동을 해 사람에게로 오면 안되노,
그런 신의 과오를 탓하고 있을 때,
내 생에 아무런 연고도 없이 심심하면 가는 섬이 다가왔다.
15시35분,
그랜드페리호는 상도와 하도사이 해협에 들어섰지만,
엄마는 미친놈이 심심하면 사람을 데꼬 오는 섬을 아무런 감흥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제 별 설렘도 느껴지지 않는 뱃길을 건너,
이제 별 감흥도 다가서지 않는 섬으로 왔다.
우선은 상도에서 사량대교를 건너 하도를 일주하고,
다음은 하도에서 사량대교를 건너 상도를 일주하고...,
그리고 18시가 되면 마지막 뱃길로 섬을 나갈 것이다.
맑든 흐린든 섬으로 오면 잔잔하게 스며오는 평화가 보여 참 좋다.
뭍에서는 윤석열편과 이재명편의 패싸움이 가관도 아니지만,
섬에는 그런 저급한 사류의 세상은 없다.
한 번을 오던 두 번을 오던 섬으로 오면 아직도 아름다운 시절속에 있음을 직감한다.
봄이 오는 바다를,
엄마와 함께 서성이는 오늘 역시도 아름다운 시절임은 분명하다.
꽃피고 새울면...,
엄마의 혼잣말에도 봄은 와 있었고,
지나는 하도일주길에도 봄은 확연히 와 있었다.
하지만,
봄은 늘 그렇게 왔다가도 꽃이 지면 어느새 떠나고 없었다.
새가 울어도...,
삼십여분 하도를 일주하고, 다시 상도로 건너왔다.
고성반도와 남해도 사이 해역에 떠 있는 사량도는,
상도의 지리망산과 하도의 칠현산으로 각광받는 대한민국 대표 섬 산행지이지만...,
나는 그 산기슭을 따라난 길가 바닷가에 집을 짓고 사는 촌락의 풍경이 아련해,
시도 때도 없이 사량도로 온다.
봄비가 내린 날,
봄이 오는 바다를 건너 찾아 온 섬에서,
봄바람 휘날리며 서성이는 오늘은 분명 호사란다.
17시20분쯤 사량도 상,하도일주를 끝내고 금평항으로 돌아왔다.
흩어지기를 바라는 삶의 파노라마에서,
봄이 오는 바다, 사량도편은 그렇게 끝이 났다.
사량도 번화가에 전시된 엔젤3호를 본다.
육짓길보다 빠른 바닷길이 존재했던 시절에,
엔젤3호는 부산에서 거제와 통영 그리고 삼천포와 남해도를 거쳐 여수까지 오갔던 여객선이다.
그리운 시절이었다.
엄마도 곁에 있는데,
해가 지니 또 마음에 시림이 붙는다.
착하게 살고자 하니,
저물녘이면 시림이 마음에 붙어 더는 착하게 못살겠다!
뭍으로 나가는 배가 다가오면,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모든 풍경들이 남겨짐으로 멀어진다.
떠나고...,
남고...,
18시 정각,
사량도로 다시 온 그랜드페리호는,
사는게 심심해지는 날 또 다시 찾게 될 사량도를 뒤안길로 남기고 바다로 나갔다.
18시35분 뭍으로 나왔다.
평화는 사라지고 세상은 또 시끄러워져 있었다.
오늘은 또 대통령의 삼일절 기념사가 정쟁의 화두가 돼 있었다.
삼일절이고 휴일이고 나발이고,
틈과 흠만 생기면 일단은 무조건 물고 뜯는 것이 대한민국 민주주의다.
차라리 집구석에서 쉬지,
봄비를 맞으며 나처럼 섬에나 가지,
마로 오늘 같은 날도 처기나와 저 지랄들을 하고 사는지,
돌아 온 뭍엔 평화 대신 저급한 말싸움만이 난무하고 있었다.
고성만 해지개다리로 가 저녁을 먹고,
합포만 마창대교를 건너 집으로 오니 21시30분쯤이었다.
봄비가 내린 날은 각인을 못한 휴일이었고,
봄이 오는 바다를 건너 찾아 간 섬엔 봄이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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