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이 될 길의 기록
한국뱃길 - 완도 화흥포항에서 소안도 소안항 본문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비가 내렸고,
바이러스성 급성호흡기감염증은 담배마저 태우질 못하게 했다.
지난주 삼일간의 연휴는 비와 기침의 나날이었고,
줄기차게 내리는 비와 줄기차게 나오는 기침으로 세상은 창밖에만 있었다.
그리고 도래한 오월의 두 번째 토요일 아침,
기침은 여전했고 토요일임을 안 비 또한 내리고 있었다.
이 지랄 같은 기침이 멈춰야 이 염병할 비도 내리지 않을 것 같았다.
허나 약마저 무용지물인 이 지랄이 언제 멈춰 이 염병을 그치게 하겠노, 싶었다.
처나오면 처나오는대로 처내리면 처내리는대로!
세상사 인생사 원래는 그게 답이다.
에라이~ 모르겠다.
엄마와 함께 소안도나 갈란다~
한국뱃길 - 완도 화흥포항에서 소안도 소안항 (2023.5.13)
완도 금당도 금일도 생일도 약산도 고금도 신지도 청산도 소안도 노화도 보길도는,
섬으로만 형성된 완도군의 11읍,면을 유지시키는 섬들이다.
해상교량으로 연륙화가 된 4섬(완도 고금도 신지도 약산도)과,
엄마가 탄 차를 철부선에 싣고 탐방을 한 5섬(금당도 노화도 보길도 금일도 청산도)을 제외하면,
남은 미탐방 섬은 생일도와 소안도 뿐이었다.
육짓길 300여 km를 가야만이 그 뱃길의 시작에 닿을 수 있는 섬들이라서,
그 여정에 때론 녹초가 되곤 했지만...,
완도군 11읍,면을 유지시키는 저 마다의 섬들은 무척이나 예뻤고,
무엇보다 약물에 지친 내 엄마를 충분히 위로해 준 섬들이었다.
엄마의 생일을 일주일 앞둔 4월22일,
생일도를 탐방하고자 약산도 당목항으로 갔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로부터 이십여 일이 지난 오늘,
생일도를 완도군의 마지막 미탐방섬으로 남기고,
태극기의 섬이라고도 불리우는 소안도를 가고자 09시30분 집을 나섰다.
땅끝항에서 노화도(산양진항→동천항)를 딛고 소안항으로 입도를 해,
완도의 화흥포항으로 출도를 하는 총 세 번의 뱃길이 오늘 소안도 탐방의 주된 여정이다.
그 첫 뱃길이 시작되는 땅끝항에 늦어도 14시10분까지는 도착이 되어야 함에,
평소보다 두 시간여 일찍 집을 나섰고 그리 할 수 있었음은 엄마의 휴약기라서 가능했다.
하동을 지날 때쯤 비는 그쳤고,
강진나들목을 나오니 하늘마저 맑아지고 있었다.
조금은 여유를 두고 출발을 했지만,
남해고속도로 상습 정체구간인 북창원부근은 오늘도 상습이었다.
소안도를 이유로,
다시 찾고 싶었던 땅끝항과 노화도는 그렇게 오늘 여정에서 지워졌다.
지난 겨울부터 완도에 당췌 몇 번을 오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은,
강진땅 마량에서 고금대교가 아닌,
해남땅 남창에서 완도대교를 건너 듦이 좋았다.
비록 땅끝항과 노화도는 배척이 된 여정이지만,
수년 전 걸었던 완도 서부해안도로를 지날 수 있음은 분명 회상의 즐거움이었다.
14시25분 육짓길 345km를 달려 완도 서남단 화흥포항에 도착을 했다.
하늘은 맑고 바다는 푸르고 봄바람은 불어오고...,
이 보다 더 좋은 시절이 있을까? 싶더라~
비가 그치니 기침도 잦아들고,
하늘이 맑아지니 섬으로 떠날 엄마의 표정에 연로함도 사라지고...,
또 이 보다 더 좋은 시절이 있을까? 싶더라~
내심 대한호 또는 만세호에 승선이 되길 기대했건만,
소안도로 들어가는 뱃길의 주체는 이미 승선의 경험이 있는 '민국호'였다.
소안농협이 완도-노화·보길-소안 항로에 띄운,
대한호, 민국호, 만세호는 한국 뱃길을 빛내는 대표적 철부선들이다.
엄마와 나는 지난 노화·보길도 탐방에서,
노화도 동천항에서 '민국호'를 타고 이곳 화흥포항으로 나왔다.
14시50분,
태극기와 농협기를 펄럭이며 '민국호'는 화흥포항을 이탈했다.
아프니 청춘이다,가 아니라 늙으니 이프다,가 된 세월이다.
감기쯤은 귀찮은 일상으로 치부하며 살았는데,
열도 없는 기침에 복근이 땡기고 뇌가 찌릿하니 참 서글픈 흐름이다.
아프니 엄마가 불쌍해 보여,
나오는 기침을 애써 참아내며 오늘 소안도로 가는 뱃길에 엄마가 탄 차를 실었다.
16시쯤 소안항에 민국호가 닿으면,
지협부에 위치한 '소안항일운동기념관'을 방문한 다음,
남부 해안도로를 반시계방향으로 일주하며 추자도가 보인다는 '물치기미전망대'와,
소진마을 그리고 미라리해변을 둘러 다시 지협부로 돌아와 섬의 번화가를 좀 서성이다가,
18시19분 마지막 항차로 섬을 떠날 것이다.
섬이 그들 삶의 전부라면,
그 뱃길은 내 삶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오가는 두 번의 뱃길로 마주하는 섬은,
언제나 낯설었지만 언제나 편안했고 살아가는 그 풍경은 늘 평화스럽기 그지 없었다.
오늘 마주하게 될 소안도 역시도 그런 평화가 충만한 섬이길 기대한다.
거리의 한계상 아무리 막대한 예산을 퍼붓는다해도 연륙이 불가한 섬들은,
연륙 대신에 주변 섬들과의 연도를 도모하고 있다.
오늘 내가 가는 소안도 역시도 조만간 노화도와 연도가 될 섬이다.
2008년 보길대교의 완공으로 보길도와 연도가 된 노화도는,
소안도와의 연도를 위해 그 사이에 낀 구도와는 2017년 소안1교로 이미 연도가 된 상태이다.
소안2교(구도~소안도)가 개통이 되면,
대한호와 민국호 그리고 만세호가 누비는 이 뱃길은 노화도 동천항까지가 된다.
15시30분, 소안1교를 통과한 '민국호'는 노화도 동천항에 잠시 기항을 했고,
승선한 절반의 여객과 차량들이 하선을 했다.
북창원부근의 정체만 없었다면,
지금 동천항에서 '민국호'에 엄마가 탄 차를 실었을 것이다.
허나 인생사 뜻한바대로 이뤄진다면, 어디 그게 인생이겠냐? 싶기도 했다.
15시45분, 민국호는 소안도 소안항에 접안을 했다.
완도군 비연륙 7섬으로 가는 뱃길에,
엄마가 탄 차를 다 실어보겠다는 일환으로 찾아 온 그 여섯 번째 섬에 태극기가 펄럭인다.
한국뱃길 시리즈 28 「완도 화흥포항 ↔ 소안도 소안항」
□ 운항선사 : 소안농협 대한호, 민국호, 만세호
□ 항해거리 : 8.5해리 /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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