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이 될 길의 기록
한국뱃길 - 개도 화산항에서 여수항 본문
15시15분,
선 개가 앞발로 공을 굴려가는 듯한 형상의 개도, 그 관문인 화산항으로 입도를 했다.
처음 온 섬이라지만,
돌산도와 화태도를 잇는 화태대교 주탑들이 보이고,
섬을 둘러싼 바다도, 그 바다에 떠 있는 섬들도,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여타의 섬들처럼 개도 역시도 평화롭기 그지 없었고,
보돌바다에 떠 있는 섬답게 감청색 너울의 시림은 더 없이 진했다.
한국뱃길 - 개도 화산항에서 여수항 (2023.4.1)
서쪽으로는 나로군도가,
북쪽으로는 고흥반도와 낭도군도 그리고 고돌산반도가,
동쪽으로는 백야도와 개도 그리고 금오군도가 감싼 보돌바다는,
한반도 삼면의 연안에서 가장 짙은 감청의 물빛이 일렁이는 그래서 가장 시린 바다다.
보돌바다 물빛은 분명 엄마를 위로해 줄 것이다.
우선은 때를 놓친 점심부터 먹고자,
입도 전 미리 알아둔 식당을 찾아 섬의 중심부로 갔다.
일부 유명섬을 제외한 면 단위 이하 낙도에 영업을 하는 식당이 있어준다면,
위생이고 맛이고 친절이고 나발이고는 절대 중요하지가 않다.
그 존재만으로도 다행이다.
섬을 찾는 청춘들의 입소문을 길라잡이 삼아 찾은 식당에서,
엄마는 늦은 점심을 나는 오늘 첫 끼를 먹었다.
안주인은 엄마를 데리고 오는 손님이 제일 고맙다고 했다.
개도는 막걸리도 유명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섬 비박지로도 그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막걸리 한 통 마시고,
섬의 테두리로 난 사람길 시원하게 걷고,
바닷가에 친 텐트를 베이스 삼아 밤새 퍼마시고 놀던 시절은 이제 더는 없다.
섬의 서단에 위치한 호녁개해변이나 한 번 갔다가, 17시05분에 여수로 나갈 것이다.
개도가 참 예쁘네..., 하면서,
개도의 중앙을 가로질러 모전마을 안길의 끝 호녁개해변으로 왔다.
평소 도처에 닿아도 좀처럼 차에서 내리질 않던 엄마도,
보이는 풍경에 반해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풍경속으로 나왔다.
아무도 없는 소스라치게 예쁜 해변,
이리도 예쁜 해변에 엄마와 와 있음은 논픽션이었다.
몽돌을 줍는 엄마의 표정에서,
드디어 사는게 사는게 아닌 실루엣은 사라졌다.
앵산부산대학교병원은 엄마를 낫게 할 것이고,
바다와 뱃길과 섬은 엄마를 위로해 주고,
나는 할 일이 없다.
섬은 서성일수록 예뻤다.
무엇이 섬을 덮고 있어,
이리도 예쁜 섬을 왜 하필이면 이 따위로 음을 붙혀 부르게 했는지...,
백야도 매표소에서 개도행 승선권을 발권하며 태평양해운 창구직원은,
섬을 나올 때 항차의 여객 수가 이미 정원에 가까워져 있다는 암시를 던졌다.
여수로 나가는 항차도 있고,
금오도 함구미에서 개도를 경유 백야도로 가는 한려페리도 있으니,
마음은 조금 불안했지만 그 말을 무시하고 발권을 받아 개도로의 입도를 강행했다.
입도를 하자마자 엄마를 식당에 두고,
섬을 나가는 승선권을 확보하고자 연안여객터미널로 갔지만,
발권은 출항 30분 전부터란 안내쪽지만이 닫힌 창구를 대신하고 있었다.
섬을 서성이면서도 내심 불안해지는 마음에,
결국은 호녁개해변을 나와 곧장 연안여객터미널로 갔다.
뭐 표가 간당간당 하다고??
물론 나는 여수로 나감으로 백야도행 승선권과는 상관이 없어졌지만,
16시50분 백야도행 한려페리7호는 정원에서 한참 미달된 여객을 태워 백야도로 갔고,
17시05분 화산항을 떠나며 본 항에는 5분 뒤 백야도로 갈 여객은 채 열 명도 없어 보였다.
아 놔! 태평양해운 그 창구직원은,
전에도 이해불가의 짓으로 사람을 황당케하더니 오늘도 그랬다.
몇년 전,
창구위 운항시간표에 분명 하,상화도를 경유 낭도로 가는 항차가 쓰여져 있었음에도,
낭도행 발권을 요구하니 다리로 가면 된다며 해당 항차는 낭도를 가지 않는다고 했다.
아쉽게 돌아서 차로 낭도로 가 점심을 먹고 식당을 나오니 그 항차의 배가 낭도항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제 백야항에서 그 창구직원을 만날 일도 없고,
그렇다고 나보다 어린 사람을 상대로 그 진위를 따질 마음도 없다.
다만,
연륙이 됐다는 이유로 있는 뱃길을 찾는 이들을 귀찮아하지 않기를,
복수의 해운사가 공유하는 뱃길에서 자사의 항차만을 두고 안내를 하는 누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17시05분,
엄마의 표정에서 사는게 사는게 아닌 표정을 지워준 섬,
그래서 더 예뻤던 섬,
개도를 떠난다.
채 두 시간을 머물지 못하고 떠나는 섬이지만,
보돌바다가 그리운 날이면 개도도 분명 그리워질 것이다.
섬이 있어 뱃길이 있고,
뱃길이 있어 엄마와 나는 하세월을 서성인다.
엄마가 탄 차를 철부선에 싣고 섬으로 들어가는 뱃길은 늘 설레이고,
엄마가 탄 차를 철부선에 싣고 섬을 나오는 뱃길은 늘 뿌듯하다.
늙어버린 엄마가 더는 늙지않기를 바라며 떠도는 하룻길,
오늘은 보돌바다 개도에서 여수로 가는 뱃길에서 그 하루가 저문다.
해 질녘...,
안좌도를 떠난 철부선이 영산강하구 목포항으로 들어설 때도,
연화도를 떠난 철부선이 통영운하 강구안으로 들어설 때도,
안도를 떠난 철부선이 돌산해협 여수항으로 들어설 때도,
오늘처럼 이렇게 하루가 저물었다.
황혼은 해 질녘 도심의 항으로 기항하는 철부선의 뱃길에서만 보인다.
오늘 또 엄마와 나는 황혼빛 물든 보돌바다 물길을 타고 여수로 왔다.
국동항을 스친 철부선이 돌산해협을 통과하니 여수항이었고,
여수는 황혼이 부른 밤바다 마중이 한창이었다.
18시 정각,
한려페리9호는 여수연안여객선터미널에 닿았다.
황혼이 밤도 불렀는데,
좀 기다리다가 좀 서성이다가 갈까?도 싶었지만...,
어둑어둑해지면 '어서 집에 가자'라 다그치는 엄마에게,
여수밤바다고 버스킹이고 낭만포차고 나발이고는 절대 돌아 갈 집을 능가하지 못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오랫만에 미래2터널을 통과해 만성리해안을 지나 여수를 빠져나왔다.
여수의 뱃길은 이제 소리도와 거문도가 남았지만,
그 뱃길에 엄마가 탄 차를 싣는 일이 그리 녹록치만은 않은 일이라,
언제 다시 여수에 와질런지...,
하동에서 재첩국을 구입해 가자고 하니,
엄마는 삼락동에서 재첩국을 먹고 가자고 했다.
삼락동에 들러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니 22시쯤이었다.
한국뱃길 시리즈 27 「개도 화산항 → 여수항」
□ 운항선사 : (주)신아해운 한려페리9호
□ 항해거리 : 11.6해리 /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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