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이 될 길의 기록
한국뱃길 - 백야도 백야항에서 개도 화산항 본문
금요일 저녁,
식사를 하는 엄마의 표정이 사는게 사는게 아니었다.
원래는 1주였지만 2주를 휴약하고 또 다시 시작된 3주간의 항암제 복용,
그렇게 2년여를 잘 견뎌오고 있지만...,
아무리 표적이라지만,
매 회차 입안이 헐고 소화기 기능 저하 등의 부작용은 오롯이 엄마의 몫이었고,
그 모습을 바라만 보아야하는 나는,
뱃길을 찾아 엄마를 바다에 데리고 나가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해 줄게 없었다.
토요일 아침,
식사를 끝낸 엄마가 안정을 취하는 동안,
먼저 집을 나와 세차와 주유 그리고 혹시나 싶어 빵과 음료를 샀다.
한국뱃길 - 백야도 백야항에서 개도 화산항 (2023.4.1)
11시쯤 집을 나섰다.
보돌바다로 갈 것이다.
그 감청의 너울은 약물에 지친 내 엄마를 충분히 위로해 줄 것임을 안다.
백야항에서 개도로 가는 14시20분 항차를 염두에 두고 달려왔지만,
백야대교를 건너면서 본 보돌바다엔 철부선 한 척이 막 항을 떠나고 있었다.
저 배를 타야 15시쯤 섬 밥을 먹을 수 있는데...,
하지만 내 이리될 것임을 미리 짐작하고,
사천휴게소에서 엄마에게 핫바 하나를 사 줬다.
박배낭을 메고 섬을 찾는 이들의 증가로,
백야항에서 개도로 가는 항차와 항로는 즐비했고,
다음 항차인 15시 항차에 엄마가 탄 차를 실을 수 있게 되었다.
한 날 여기서 엄마가 탄 차를 철부선에 싣고 금오도 함구미로 갔는데,
흘러 흘러 엄마를 데리고 또 이 곳으로 와 있다.
15시 정각,
태평양3호는 백야항을 이탈했다.
부디 오늘 이 뱃길이 약물에 지친 내 엄마를 위로해 주고,
부디 오늘 이 뱃길이 요즘 사는게 사는게 아닌 내 엄마에게 사는 이유가 되길 바랬다.
얼핏 본 객실에는,
요즘 그들만의 성지라는 개도 청석포로 가는 청춘들로 가득했다.
저들처럼은 그리운 시절이었고,
오늘처럼도 그리운 시절로 먼 훗날에 회상이 되겠지, 싶었다.
수년 전 홀로 배낭 메고 찾았던 등대기행 15의 등대 '백야도등대'를,
오늘 엄마가 탄 차를 철부선에 싣고 개도로 가는 뱃길에서 다시 마주했다.
잠시 그날이 그리워도 졌지만,
엄마가 탄 차를 철부선에 싣고 떠나는 뱃길에 있는 오늘이 더 진함은 분명하다.
청춘일 때는 엄마가 젊어,
엄마를 집에 두고도 세상을 떠돌았지만,
청춘이 지나니 엄마가 늙어,
엄마를 데리고 세상을 서성이고 있다.
산다는 것에 깊고 깊은 의미는 그렇더라...,
15시15분,
선 개가 앞발로 공을 굴려가는 듯한 형상의 개도, 그 관문인 화산항에 내렸다.
한국뱃길 시리즈 26 「백야도 백야항 → 개도 화산항」
□ 운항선사 : 태평양해운(주) 태평양3호
□ 항해거리 : 3.4해리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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