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이 될 길의 기록
한국뱃길 - 완도항에서 청산도항 본문
설날 아침,
한반도 동북단 마차진에서 엄마와 떡국을 먹으며 티비를 보는데,
한반도 서남단 청산도의 풍경과 그 섬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방영되고 있었다.
극점으로 와 그 극점에서 대각으로 극점인 곳을 접하니 풍경의 이질감은 대단했고,
봄이 오면 엄마가 탄 차를 철부선에 싣고 저 섬으로 갈 것이라, 마음을 굳혔다.
허나 기다리면 세월은 더디게만 간다.
제비가 와야 봄이 오는데..., 제비는 커녕 매화도 피지 않는다.
봄, 청산도...,
하지만 흐르는 세월에서 봄과 청산도만을 바라보고 마냥 머물 수 만은 없었다.
한반도 서남권역의 해역에는 아직도 엄마에게 보여주지 못한 무수한 섬들과 그 뱃길이 산재해 있고,
시린 겨울풍경만으로도 탐방의 이유는 충분하다.
한국뱃길 - 완도항에서 청산도항 (2023.2.4)
2020년 8월 4일,
등대기행 42와 아리랑길 80의 탐방지는 진도 서남쪽해역에 세떼처럼 자리한 조도군도의 하조도였다.
그날 본 섬의 소답한 풍경과 하조도등대의 아련함을 엄마에게 보여주고자,
약 기운이 사라질 틈도 주지 않은 채 평소보다 두 시간여 일찍 집을 나서 머나먼 길로 들어섰다.
단말기상 376Km가 표출된 진도항에 늦어도 13시30분까지는 도착이 되어야 한다.
주어진 시간은 4시간,
평균속도 100Km/Hr를 유지하며 가야하는데,
300Km는 고속도로라서 어쩌면 가능해 보였지만,
76km의 일반도로와 최소 한 번은 들려야 하는 휴게소 정차시간이 변수다.
가다보면 답이 나오겠지...,
가다보니 답이 나왔다.
아무리 처밟아도 진도항 13시30분 착은 무리였다.
과속단속에 구간단속까지 하는 고속도로에서도 평균속도 100Km/Hr 유지는 버거웠다.
보성IC를 지나며 하조도 뱃길을 포기하고,
대안으로 하의도 뱃길을 오늘 여정에 맞춰봤지만 그 역시도 촉박하긴 마찬가지였다.
할 수 없이 장흥나들목을 빠져나왔다.
봄이 오지 않았다고 그 섬으로 가지 않을 이유는 없다.
오늘 청산도로 갈 것이다.
하조도는 봄에 가면 된다.
오늘이 청산도고 내일이 하조도면 어떻노...,
인생사 언제 한 번이라도 작심을 한 그 마음으로 산 적이 있었던가...,
13시35분, 완도항에 도착을 했다.
청산도행 3항차의 출항시간은 14시30분,
왔노라! 그리고 쉭 훑어보고 나오는 엄마와의 섬 탐방에서는,
섬에서 밥 한끼 사 먹는 재미도 솔솔하지만 오늘은 시간상 완도에서 점심을 먹고 들어가야 한다.
지난번 방문을 한 식당을 두고 엄마에게 그 의향을 물으니,
기계가 가지고 오는 집? 하면서, 뚜렷한 기억으로 단 번에 거부를 한다.
서빙로봇을 기계라 표현하는 엄마의 선명한 기억에...,
그러고보니 채 두 달도 지나지 않은 그날도 이곳에 있었다.
눈까지 내렸던 그날 청산도를 가고자 이곳으로 왔었다.
그러했음에도 청산도에 봄을 붙혀 시절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급검색을 한 식당에 엄마을 두고,
우선은 여객터미널로 가 승선권부터 발권을 받았다.
봄에가 아니라, 이제서야 청산도에 가는구나...,
여행은 집으로 돌아가기에 성립이 된다.
특별한 여정이 아닌 이상 암마와의 여행은 당일이 원칙이고 잠은 집에서 잠이 맞다.
육짓길 왕복 600km에 더하여 뱃길 왕복 40km,
팔순을 넘긴 노모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힘겨운 여정이지만,
아픈 엄마를 집에 두고 홀로 떠돎의 서성임으로 나서질 못하는 놈을 낳은 사람은 엄마다.
완도항으로 불어오는 바람,
그 바람에 펄럭이는 태극기를 달고 어느 섬으로 떠날 채비가 한창인 섬사랑5호,
완도항으로 불어오는 바람,
그 바람에 먼 바닷길로 나서질 못하는 여객터미널 건물보다 더 큰 제주도로 가는 실버클라우드호,
저 배들이 가는 뱃길에도 엄마가 탄 차를 실어야지...,
그러고 있으니 14시30분이 되었고,
그러자 완도항은 청산농협 '청산아일랜드호'를 풀어주었다.
엄마와 함께 청산도로 간다.
포항에서 울릉도를 갔고,
모슬포에서 마라도를 갔고,
땅끝항에서 노화도와 보길도를 갔고,
암태도 남강선착장에서 비금도와 도초도를 갔음에도...,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오늘 뱃길이 이리도 설레여짐은 왜일까...,
그건 아마도...,
엄마가 탄 차를 싣고 청산도로 가는,
마차진에서의 나와의 약속을 지킨 내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돌아서면 해가 바뀌니,
이건 숫제 흐르는 강물이 아니라 떨어지는 폭포수다.
오십이 됐을 때도 벌써 오십이가!라 탄식을 했는데,
내 생에 처음으로 청산도를 가는 날은 오십과 육십의 중간까지 와 있다.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마라고 안중근 의사께서 그렇게도 일러주었건만,
되돌아보니 헛되이 산 세월이 이리도 아쉬워질 줄은 몰랐다.
그렇게 열심히 산 세월도 아니었지만,
먹고 산다고 산 그 세월이..., 지금 너무도 아깝다.
단언컨데 인간이 행하는 가장 슬픈 삶의 태도는 열심히다.
특히 그 부질없는 명예와 재물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하며 산다는 것은,
인생사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허무를 위한 허무일 뿐이고,
모두의 끝은 같음에 열심히는 인간사 필요가 없다.
헛으로만 살지 않는다면...,
열심히 따위의 자기학대성 삶의 태도는 절대 필요치 않다.
선상에서 걷잡을 수 없는 겨울 찬바람을 홀연히 맞으며,
아무도 이해 못 할 심오한 고뇌에 미쳐가고 있을 때쯤, 청산도가 다가왔다.
15시30분,
섬진강 서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에도 서편제하면 떠오르는
느림의 섬, 구들장논을 만들어 산 섬, 남도 풍경의 극치 청산도에 입도를 했다.
마지막 항차의 출항시간은 17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온 청산도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1시간30분,
유채꽃 만발한 봄날이었다면 몰라도,
찬바람 한껏 불어오는 겨울날이었기에 시간은 충분하다.
하선을 하자마자 곧장 영화 서편제를 촬영했다는 언덕으로 오르니,
마주한 풍경에 엄마가 화들짝 놀라워한다.
아라리가 날만도 했다.
비록 북은 없었지만...,
그 길로 나가 엄마와 함께 아라리를 한 판 출라다가,
불어오는 찬바람이 어찌나 차갑던지 이내 차에 타야만 했다.
청산도로 오는 뱃길에서 이상하게도 설레이기 시작하더니...,
설렘엔 다 이유가 있었다.
16시20분,
느림의 고움이 수 놓은 청산도 일주를 마치고 청산도항으로 돌아왔다.
청산도에 산 사람들은 분명 고운 마음으로 살았을 것이다.
청산도의 모든 풍경이 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나는 54년 엄마는 82년...,
그 세월에서 1시간30분을 머물다 떠나는 섬에 노을이 진다.
삶은 기억이고 회상일 뿐이다.
기억이 된 회상은 짧을수록 나중에 그 시림이 덜 하기에 이쯤에서 섬을 나감이 맞다.
물론 섬이 있어 뱃길이 존재하지만,
나는 뱃길이 있어 섬으로 갈 뿐이었다.
그랬는데...,
한국 지붕 예술의 극치를 보여준 청산도는,
아름다운 시절속 엄마와 머문 남녘바다 예쁜 섬이 되었다.
그래서 오롯이 이 기억만을 간직하려고 다시는 청산도에 안올라고...,!!
18시 정각,
14시30분에 떠났던 완도항으로 돌아왔다.
어둠속 집으로 갈 길은 아득했지만,
EBS 한국기행에서 알게 된 강진 병영에 들러 저녁을 먹고 가기로 했다.
강진읍을 우회해 짙은 어둠속 어느 길로 가는 줄도 모른채,
이십여분 암흑뿐인 시골길을 달려 도착한 식당은 남도 맛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오늘 점심을 먹은 식당도 흡족했지만 저녁을 먹은 식당은 더 흡족했다.
앞으로 완도로 가면 그 집구석!
앞으로 목포로 가는 길에서는 이 집구석!
19시40분 흡족한 남도의 저녁을 먹고,
네이비에 집구석을 터치하니 275Km 3시간30분이 걸린다고 했다.
허나 경험상 집으로 가는 길에서는,
그 어떠한 방해장치들이 길에 나열돼 있어도 시간당 100Km/Hr는 누적을 시킨다.
내일이 보름인 달빛을 따라 집으로 오니 22시30분이었다.
차를 대고 집으로 올라오니 엄마는 뻗는 대신 내일 먹을 나물을 데치고 있었다.
섬은, 뱃길은, 달빛은..., 분명 내 엄마를 낫게 하고 있었다.
내가 선택한 치유는 팩트였다.
한국뱃길 시리즈 23 「완도항 ↔ 청산도항」
□ 운항선사 : 청산농협 / 청산아일랜드호
□ 항해거리 : 11.8마일 / 1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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