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이 될 길의 기록
한국뱃길 - 진도 팽목항에서 하조도 창유항 본문
그날 그 섬에서 내가 본 그 등대와,
그날 그 섬에서 내게 든 그 낯섬을,
엄마도 누릴 수 있게 함이 내 마음이었다.
허나 그 섬은 너무도 멀리에 있기에,
엄마가 감당할 여정은 결코 아니라서 세월만을 죽치고 있었다.
세월은 절대 기다주질 않는다.
무심히 흘러만 갈 뿐이다.
세월만을 탓하다가,
'세상의 극치'를 엄마에게 보여주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한국뱃길 - 진도 팽목항에서 하조도 창유항 (2023.3.11)
에라이~ 나도 모르겠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은 한 번 가 보자!
그 심정만으로 10시쯤 먼나 먼 그 섬을 찾아 집을 나섰다.
한국의 뱃길은,
해 질녘에 따라 그 운항시간이 하절기와 동절기로 구분된다.
그 변경의 기준일은 3월 1일이었고,
진도 팽목항에서 하조도 창유항으로 가는 15시20분 항차가 하절기 운항표에 나타났다.
그 항차 득분에,
내 사는 곳에서 육짓길 374km 떨어진 항으로 가,
왕복 12해리 뱃길을 오가는, 오늘 갔다 오늘 돌아오는 여정이 가능해졌다.
열정은 추구함의 의지에서 나온다.
아침에 항암제를 복용하는 엄마는 딱 한 시간 안정을 취하고,
미친놈 때문에 열시쯤 집을 나서 13시40분쯤 우수영에서 울돌목을 건넜다.
그러면서 여를 몇 번이나 오노...,라 했다.
14시20분쯤 팽목항을 지나 서망항 꽃게탕집에 엄마를 두고,
다시 팽목항으로 갔다.
때문에...,
진도항으로 그 명칭이 바뀌었지만 팽목항은 여전히 팽목항이었다.
14시30분 팽목항 매표소에 차를 세우니,
제주도로 가는 산타모니카호가 항을 떠나고 있었다.
하조도고 나발이고 저 배에 엄마가 탄 차를 싣고 제주도로 못감이 천추의 한처럼 느껴졌다.
서망항 식당으로 가 엄마를 데리고 다시 팽목항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전혀 조급하지 않은 시간들이었지만,
늘 점심시간과 출항시간이 겹치니 이 과정이 제일 바쁘다.
배루고 밸라 엄마와 함께 하조도를 가는 날,
안되는 놈은 안된다고,
바다는 진도로 오는 육짓길에 낀 박무보다 더한 해무가 장관이다.
그날도 해무가 짙어 새섬두레호가 창유항에 다가설 때까지 하조도등대가 보이지 않았는데,
오늘은 그날보다 더 짙은 해무가 바다마저 숨기고 있다.
15시20분,
드디어 오매불망 엄마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던,
'세상의 극치'가 펼쳐진 바다, 조도군도로 가는 뱃길에 엄마가 탄 차를 실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잠만은 집에서 자고 싶은게 일상의 이음이다.
16시에 섬으로 들어 서,
비록 채 두 시간을 머물지 못하고 나오는 섬이지만,
그 두 시간은 내 엄마에게 '세상의 극치'를 보여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근데, 이 망할놈의 해무가...,
한반도 서남권역 해역에 새때처럼 자리한 조도군도는,
행정구역상 진도군 조도면에 속하는 족히 삼십여 섬들의 집합체로,
누군가로부터 시작이 되었는지는 몰라도,
혹자들은 조도군도를 한국의 하롱베이라 지껄이고들 있다.
허나 그것은 스스로가 스스로의 격을 떨어뜨리는 아주 멍청한 비유일 뿐,
조도군도는 조도군도의 경이로움만으로도 충분하다.
통영의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이 말하길,
주한 이탈리아 대사가 통영을 방문했을 때,
안내자들이 이 곳이 동양의 나폴리라고 통영을 소개하자,
나폴리 출신의 대사는 나폴리보다 더 아름다운 이 곳을 왜 그렇게 비유하냐고 했단다.
16시에 창유항에 배가 닿으면,
하조도 동북단으로 가 '하조도등대'를 우선 탐방하고,
하조도 서북단에서 조도대교를 건너 상조도 돈대산 정상으로 올라,
영국 함정 라이라호의 함장이었던 '바실 홀' 대령이
'세상의 극치, 지구의 극치'라고 외친 조도군도를 내려다 볼 것이다.
그리고 조도군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풍경속을 좀 서성이다가,
17시50분 마지막 항차로 조도군도를 떠날 것이다.
16시 정각,
육짓길 374km와 뱃길 11km를 달리고 건너 조도군도의 관문 하조도 창유항에 닿았다.
생은 기억으로 회상을 빚고,
생은 회상이 된 기억을 잊지 못해 또 다시 그 곳으로 온다.
엄마를 데리고...,
두 세기 훨씬 이전에 이 곳으로 온 이방인이 외친 그 '세상의 극치'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1시간50분!
왔기에 한 대 피우는 절차를 건너뛰고,
곧장 하조도등대로 향했다.
새가 빠지게 하조도등대로 왔는데,
엄마가 찬바람을 쐬면 기침도 나오고 다리도 저려 차에 있겠단다.
엄마는 수요일과 목요일 양일간에 걸쳐 CT, MRI, Bone scan검사 등을 받았고,
특히 1시간 이상 진행된 MRI검사가 힘이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식당으로 들어설 때에는 잘만 걸었다.
근데, 등대로 가는 길에서는 내가 지랄을 하고서야 못내 차에서 내려 등대로 갔다.
엄마는 항로표지관리시무소 앞 벤치에 앉아 등대를 보고,
나는 등대로 갔다.
등대기행 사십이의 대상이이었던,
팽목항 해안도로가에서 차박을 한 다음날 아침에 찾았던 하조도등대...,
그 등대를 엄마에게 보여주고자 나는 다시 이 먼 섬으로 왔다.
세월은 덧 없이 흘렀지만 등대는 그날 그 모습 그대로 그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환량의 삶에서 조금 정신을 차리니,
엄마는 늙어있었고 나도 늙어가고 있었다.
그래놓고 이제 와 죄없는 세월만을 탓하고 산다.
세월이야 흐르든 말든,
엄마와 나는 이제 더는 세월을 따라가지 않을테다.
16시40분,
세상의 극치를 볼 수 있다는 도리산전망대를 가고자 조도대교를 건너 상조도에 들었다.
사람은 어디에서나 산다.
내 사는 곳에서 멀어졌다고 그 삶을 아련해 할 필요는 없다.
내 감히 어찌 섬에서 산 사람들의 삶을 평하리오마는,
빨간지붕 파란지붕은 그들의 우산이었고 그들의 그늘이었고 그들의 삶이었다.
그 삶의 파노라마 한 가운데를 지나,
16시55분쯤 드디어 1816년 9월 5일 바실 홀 대령이 세상의 극치를 내려다 본 그 곳에 올랐다.
주차장에서 전망대까지는 100여m 남짓,
하지만 가파른 오름길이라 차마 엄마에게 같이 오르자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만 손살 같이 전망대로 올랐다.
그러나...,
세상의 극치를 이루는 조도군도의 섬들은,
뿌연 해무가 낀 괄호속 희미한 원소들로 그 존재를 확인시켜 줄 뿐이었다.
퇴색된 설명판에서 세상의 극치를 보고 주차장으로 내려오니,
엄마는 차 밖으로 나와 세상의 극치, 그 한 가운데를 서성이고 있었다.
극치의 세상에서도 세월은 흘렀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시간은 17시15분을 지나고 있었다.
섬을 떠날 항차는 한 번 남았는데,
그 승선권이 없으니 마음에 불안감이 인다.
극치보다는 집이 좋고,
엄마의 내일 약은 집에 있다.
불이나케 차를 몰아 창유항으로 가니 17시25분이었다.
창구 직원은 청소를 하고 있었고 대합실은 한적하기 그지 없었다.
괜히 내 혼자...,
극치의 세상에서 불안에 떤 시간이었다.
하나로마트는 문을 닫았고,
그로해서 섬의 중심가를 홱 돌아보고 다시 창유항으로 돌아왔다.
한림페리11호는 창유항으로 다가오고...,
이제 세상의 극치를 떠날 시간이다.
내 생에 두 번을 오게 된 하조도,
그 한 번은 엄마를 데리고 왔음에 이제 더는 올 일이 없어진 섬으로 남는다.
살다가 그리워지면 그리워하고,
그래도 그리워 못살겠음 다시 찾으면 된다.
그러나 내 생은 이제 더는 그리워 할 것들을 만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떠나면 그만인 매정한 인생은 절대 아니다.
짙어지는 해무에 감춰지는 뱃길,
그래도 그 길을 잃지 않은 한림페리11호는 18시30분 팽목항에 접안을 했다.
짙어지는 어둠에 감춰지는 육짓길,
그래도 그 길을 잃지 않고 19시쯤 울돌목을 건너 뭍으로 나왔다.
고속도로에 차를 올리기 전,
저녁을 먹고자 해남읍내로 들어섰다.
시골 소읍이라지만,
그래도 토요일 밤은 명랑했고, 가까이에 집을 둔 사람들은 행복해 보였다.
그런 모습들에서,
돌아갈 집은 멀기만 하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낯선 곳에서 엄마를 데리고 서성이는...,
조금은 서글펐다.
그래서 유랑인가..., 싶었다.
20시30분쯤 식당을 나와,
논스톱으로 집에 도착을 하니 23시23분이었고,
우편함엔 이런 환장할 교통법칙금 고지서가 세 장이 꽂혀 있었다.
세상 서성임의 댓가였다.
그 싼 맛에 엄마와의 세상 서성임은 지속될 것이다.
한국뱃길 시리즈 25 「진도 팽목항에서 하조도 창유항」
□ 운항선사 : 서진도농협 새섬두레호 / (주)에이치엘해운 한림페리11호
□ 항해거리 : 5.7해리 /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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