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이 될 길의 기록
2024 신년 뱃길 - 칠현산과 지리산이 만든 수로 사량해협 본문
엄마와 경주시내를 서성이고 돌아와 내일은 몸이 좀 나아지기를 바라며,
2023년 마지막 날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창을 뚫고 들어오는 2024년 첫 날의 햇살에 눈이 부셔 일어나니,
전 날 판콜S 다섯 병을 들이킨 결과인지 독감 기운은 사리지고 없었다.
아픈 엄마가 탄 차를 철부선에 싣고 서성인 바다는,
내 엄마를 충분히 보우해주었고...,
그 보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2024 신년 첫 뱃길에 오르고자 11시쯤 엄마와 함께 집을 나섰다.
2024 신년 뱃길 - 칠현산과 지리산이 만든 수로 사량해협 (2024.1.1)
그저 내일이 오늘처럼이기를 바라며 산다.
해가 바뀌었다고 달라질 것도 추구할 것도 없다.
담배도 끊지 않을테고,
내일을 위해 오늘을 모우는 쩨쩨한 마음도 없다.
12시35분 도산반도 가오치항에 도착이 됐다.
원래는 미륵도 삼덕항에서 욕지도로 가는 뱃길에 오르고자 했지만,
학섬휴게소를 지나며 도착시각을 추정하니 승선시간은 빠듯했고,
내가 정한 계획에 내가 조급해짐은 이제 싫었다.
내 엄마에 대한 바다의 보우에 감사하는 뱃길임에,
사량도면 어떻고 욕지도면 어떠랴...,
생은 엄마를 데리고 바다를 서성일 수 있음에,
그저 고마울 뿐이다.
13시 정각,
사량수협 그랜드페리호는 고성만 가오치항을 이탈해 자란만 외해로 나섰다.
겨울이라지만,
겨울이라서 그런가,
하늘은 더 없이 맑고 바다는 더 없이 푸르다.
그 바다 그 뱃길에 엄마가 탄 차를 싣고 사량도로 간다.
아마도 한산도 다음으로 많이 간 섬은 사량도이지 싶다.
사량도 뱃길의 절정은,
상도와 하도 사이 해협으로 들어설 때다.
상도와 하도 사이 해협에는,
2015년 길이 530m 2주탑 대칭형 사장교인 '사량대교'가 놓였다.
다가오는 섬이 반가워짐은,
제법 시간이 흘러 다시 왔음이다.
13시40분 그랜드페리호는 상도 금평항에 접안을 했다.
하도에서 해맞이행사가 있었는지,
행사 참석 후 섬을 나갈려는 사람들로 항은 북새통이다.
몇 번 방문을 한 엄마를 알아봤는지,
아니면 본시 인성이 바른 사람들이라 그랬는지,
엄마가 앉은 의자 뒤편에 난로를 갖고 와 틀어주니 그 마음 참으로 고마웠다.
뭍에 내놓아도 충분히 맛있는 사량도 물회였다.
사량도에 오면,
언제나처럼 해협을 건너 하도부터 일주를 시작한다.
상전인 엄마가 조수석 뒷좌석에 앉았기에,
상전인 엄마의 차창에 바다를 두고자 그 방향은 늘 반시계다.
하도에서 상도를 바라보고,
상도에서 하도를 바라봄이 사량도 바라기의 진수다.
엄마가 탄 차를 철부선에 싣고,
한반도 연안 오십여 섬들을 오가는 뱃길들을 서성였다.
항까지의 거리, 하루 운항 횟수 등,
엄마를 데리고 가기가 수월했던 뱃길은 이제 남아있지 않다.
그리됐지만 올해도 바다에 나있는 뱃길들을 엄마와 함께 서성일 것이다.
15시쯤, 하도 서측을 돌아 동남단의 통포마을 막다른 길의 끝에 이르렀다.
마을로 파고 든 바다는 평화롭기 그지 없었고,
보이는 마을의 풍경엔 평화뿐이었다.
마치 봄이 온 것 마냥...,
17시50분이 돼야 섬을 나갈 수 있다.
상도 일주가 남았지만,
기다리는 시간은 기다릴수록 늘어만난다.
차에서 캠핑의자를 꺼내 볕 좋은 해안가에 엄마의 자리를 만들어주고,
한참을 통포마을 그 평화속을 서성였다.
사량도는 상도보다는 하도에 더 애착이 간다.
그렇다고 상도를 외면할 순 없다.
15시45분쯤 다시 사량해협을 건너 상도로 들어와,
일주를 이었고 어느새 그 절반쯤에 해당되는 수우도전망대에 닿았다.
저까지만 가면 된다.
못 간다.
가자와 못간다의 옥신각신 끝에,
내빼는 엄마를 붙잡아 수우도전망대로 내려갔다.
엄마는 올해 여든넷이 됐고,
내 걱정엔 한 살이 더 붙었다.
회사를 때려치우는 한이 있더라도,
요양병원 따위에 부모를 맡기는 호로는 안될 것이고,
또한 그 삶의 질에는 늘 현재진행형의 숱한 계획들을 줄지어 놓을 것이다.
그리고 장년의 시름 대신 소년의 마음으로 엄마를 지속적으로 괴롭힐 것이다.
16시50분쯤 사량도 번화가 금평항으로 돌아왔다.
뭍으로 나가는 마지막 항차만을 남겨둔 연휴 마지막날의 그 쓸쓸해지는 풍경에,
눈치없는 석양마저 합쳐지고 있었다.
떠남이 의미가 있나?
또 올낀데!
사량도 상도 금평항에서 2024년 첫 날의 저물녘을 서성인다.
엄마가 곁에 있으니 저무는 풍경이 쓸쓸하지도 않다.
올해는 또 대량의 쓰레기를 양산하는 총선이 있고,
올해는 파리에서 이제 10위권 진입은 불가한 하계올림픽이 열린다.
허나 이제 그 딴 세상사에는 무관심해졌다.
그저 내일이 오늘처럼 왔다가 어제처럼 가기만을 바라며 살란다.
어, 배 왔다!
집에 가자!!
자란만 사람의 집들이 밝히는 불빛들을 바라보며,
도산반도 가오치항을 찾아가는 뱃길에 엄마와 타 있음이 더 없이 좋은 밤이다.
삼락동에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니,
그렇게 2024년 첫 날이 가더라~
'살다보면 - 픽션은없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양도에서 - 대관람차 사천아이 & 아라마루동물원 (0) | 2024.04.05 |
---|---|
봄이 오는 바다 - 삼덕항에서 욕지도로 간 뱃길 (0) | 2024.02.21 |
겨울바다에 가 보았지 - 한산도 가는 뱃길 (0) | 2023.12.05 |
축하뱃길 - 생일도가 보이는 금일도에서 케잌끄기 (0) | 2023.04.25 |
봄이 오는 바다 - 가오치항에서 사량도로 간 뱃길 (0) | 2023.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