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회상이 될 길의 기록

이순신길 25 - 해남반도(3) 본문

이순신길 - 남해바닷길

이순신길 25 - 해남반도(3)

경기병 2019. 6. 19. 15:10

해를 따라 서쪽으로 간다.

불멸의 삼도수군통제사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1545~1598)장군께서 살다가신 그 바닷길을 잇는다.

 

 

명량대첩 (1597.10.25)

1597년 일본은 다시 조선을 침범(정유재란)하였다.

원균이 이끈 조선수군은 칠천량에서 전멸에 가까운 패전을 당했다.

선조와 조정은 모함으로 백의종군중인 장군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하였다.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한 장군은 수군을 재건하고,

배설이 칠천량에서 몰고 도주한 12척의 전선과, 백성들이 찾아 온 1척의 전선으로 적의 침입에 대비하며,

어란포와 벽파진에서 도발한 일본군 여이어 격파하며 재건된 조선 수군의 사기를 높였다.

남해안 일대를 침범한 일본은 육군의 상륙과 수군의 서해로의 진출을 도모하였으나,

그 길목이 되는 명량에는 불멸의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버티고 있었다.

해협을 지키기 위해 이진·어란포 등지를 거쳐, 8월29일(음력, 이하 모두 음력) 진도의 벽파진으로 이동하였고,

명량을 등 뒤에 두고 싸우는 것이 불리하다고 판단, 9월15일 본영을 우수영으로 옮겼다.

9월16일, 일본은 133척의 전선으로 명량에 진입하였다.

장군은 지체 없이 출전을 명하였고 선두에 섰다.

일본 전선의 해협 통과를 일자진으로 막자, 이내 해전이 시작되었고,

조류가 서서히 남동류로 흐르기 시작했으며, 일본 수군은 장군이 타고 있는 전선을 포위하려 움직였다.

장군은 후미에 있는 거제현령 안위와 중군 김응함 등에게 적진으로의 돌진을 명했고, 전투는 절정에 이르렀다.

격전중 장군의 전선에 동승한 투항한 왜구 준사가 적선을 내려다보며, 

꽃무늬 옷을 입은 이가 왜장 구루시마”라고 외치자,

김석손이 그를 끌어 올린 뒤 목을 베어 높이 매달자, 이를 본 일본 수군의 사기는 극도로 저하 되었다.

기세를 잡은 조선 수군은 현자총통과 각종 화전을 쏘면서 맹렬하게 공격하였다.

녹도만호 송여종과 평산포대장 정응두 등 여러 장수와 병사들이 적선 31척을 분파하자,

일본 수군은 앞다투어 도주하기 시작했다.

13척의 전선으로 133척을 상대하여 압승한 명량해전은,

일본의 서해 진출을 차단함과 동시에, 정유재란의 판세를 바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승전이었다.

 

 

 

2019년 6월 15일이 00시00분, 집을 나왔다.

 

시동을 켜고, 네이비에 '목포종합버스터미널이라 입력을 하니, "너 미쳤니??" 이란다.

325가 0이 되는 순간에 만나게 될 사람들을 만나러 그 곳으로 간다.

보슬비 내리는 밤에...,

 

 

 

 이순신길 25 - 고천암방조제에서 명량 (2019.06.15)    「명량대첩길」 

망금산 명량대첩승전광장에서 바라 본 명량(울돌목)

 

 

이순신트레일 제36회차는,


땅끝에서 우수영으로 가는 길,

그 중간쯤에 위치한 고천암방조제를 시점으로 화원반도 남부해안을 따라 명량(울돌목)으로 간 다음,

진도대교를 건너 섬의 초입에 자리한 녹진에서 그 1일차를 끝냈다.


2일차, 망금산 정상부에 위치한 명량대첩승전광장으로 올라 명량(울돌목)을 본 후, 

진도의 동부해안을 따라 이순신트레일 서진기준 장군의 마지막 승전지가 되는 벽파진을 경유,

고군면 마산방조제에서 그 트랙 형성을 마무리 하였다.

 

 

 

[이순신트레일  제36회차 (해남군 화산면 율동리 → 진도군 고군면 내산리)]

 

 

 

혼자 걸어 형성시킨 트랙에는 세상과 길만이 있다.

동행으로 걸어 형성시킨 트랙에는 세상과 길도 있지만 사람이 있다.

 

04시 목포종합버스터미널에 도착을 하니, 터미널 계단에 퍼질러 앉아 뭔가에 열중들을 하시고 있었다.

뭐를 하나? 지켜보니, 각자의 배낭에 동행길을 알리는 시그널을 달고 있었다.

저런 쳐귀여우신 오순도순 자태를 봤나...,

 

 

 

[이순신트레일 36회차-시점 (전남 해남군 화산면 율동리)]

 

 

 

나나 서울이나 이제 출발지로의 이동에 그저 막막할 따름이다.

 

24시에 집구석을 기나와 4시간 운전을 쳐해가야 하질 않나...,

심야버스를 타고 목포로 와, 나를 만나 우수영으로 간 다음, 또 택시비 28,000원치를 쳐가야 하질 않나...,

 

그렇게 그렇게 이번 회차 길의 시점에 도착을 했다.

 

 

 

 

 

 

 

 

시작부터 직선이다.

직선은 걷는 뇌를 돌게하고, 인내의 한계를 시험한다.

 

허나, 채 2km가 안되는 방조제 따위는 이제 방조제 축에도 끼지 못한다.

 

고천암방조제를 25분만에 주파를 하고나니,

한국농어촌공사해남지사고천암관리사무소앞에 잘 조성된 에코센터가 있었다.

 

새들을 위한 공간에서, 새들이 외면하는 터를 임대해 순두부찌개 7인분을 끓였다.

 

 

 

 

 

 

 

대열은 징의마을을 관통 77번국도를 따라 서쪽으로 갔지만,

나는 해미누나를 꼬득여 징의반도 중심부까지 들어 가, 바지와 새로 싼 신발에 심한 이슬칠을 했다.

 

 

 

 

 

[징의반도가 숨겨 놓은 해골해변(가칭)]

 

 

 

 

[징의반도 들녁]

 

 

[우수영 가는 77번국도]

 

 

땅끝에서 우수영으로 가는 길,

77번과 18번국도를 따라만 가면 그만이지만, 해안지선을 우선하기에 그렇게 걸을 수는 없다.

 

툭 튀어나온 반도의 지형에서는 들어갔다 나와야한다.

그래서 서진의 진척이 더디다.

사람 죽겠다!

 

물 빠진 바다의 땅을 막무가내로 걸어 방조제 뚝방에 올라서고,

방조제 뚝방길 끝에 나타나는 해안가 갯바위를 조심스럽게 타면서..., 루트를 만들어 나갔다.

사람 죽겠다!

 

고천암방조제에서 우수영국민관광지까지, 그렇게 만들어진 루트들을 합쳐 1일차 트랙은 38km였다.

 

만조인지 간조인지 궁금해 하지마라! 

신발이 빠지지 않는다면, 그냥 쳐걸어 가면 된다.

조수간만의 차가 있는 갯벌의 해안에서는, 만조 따위를 두려워 할 이유마저 없다.

 

그게 내가 주창하는 갯뻘의 해안지선을 상대로 한, 트랙 형성의 진리이다!!

 

 

 

[산소리 가는 길]

 

 

[이제 방조제 명칭을 알아내기도 귀찮다]


 

 

 

비가 내린 다음날이라서 길은 질퍽였지만, 미세먼지 없는 하늘은 아주 맑았다.
보이는 모든 것들은 선명했지만, 닦지 않은 내 카메라 렌즈만이 흐렸다.

 

 

 

 

 

 

 

[산소리]

 

 

 

 

 

 

 

 

길도 제대로 없는 해안지선,

그 해안지선마저 차단을 시킨 새우양식장과 태양열발전소의 휀스들...,


생존의 영위를 위한 해안봉쇄에 투정을 낼수는 없었지만, 

공유수면과 빈지의 개인적 이득을 위한 무단잠식에는 뭔가 문제가 있어 보였다.

 

 

 

 

 

 

 

[선상방파제]

 

 

[광산까지 통과를 했다]

 

 

 

 

 

 

12시20분 춘정마을 들녁 농삿길 그늘에서 점심을 먹는다.

 

오는 길에 가게는 전무후무 했고, 

평소 누군가는 꼭 가져오던 담금주조차도 이번 회차에는 없다.

그리고 두 번의 라면을 끓임으로써 마시는 물마저 동이 났다.

 

 




 

 

삼지원이란 곳까지 오니 저 멀리 아련하게 진도타워와 진도대교의 주탑들이 보였지만,

갈 길은 아직 한참이란걸 확인했을뿐이었다.

 

 

 

 

 

오후의 뙤약볕은 걷는 걸음을 지치게 하고,

늘 물이 빠진 뻘의 바다는 지친 걸음에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 한다.

 

빨리 명량에 도착을 해 회오리치는 울돌목을 보며, 우수영에 앉아 물을 마시고 싶다.

 

 

 

 

 

 

 

 

고천암에서 우수영까지의 루트를 네장의 지도에 양분 했다.

배율을 확대시킨 네번째장의 지도를 걷고 있지만, 그 지겨움은 너무도 대단했다.

 

15시30분, 학동마을과 녹도 사이 해협의 바닷물이 마치 비온뒤 손살 같이 흐르는 시냇물처럼 보인다.

드디어 울돌목에 도착을 했구나! 싶었다. 

 

 


 

 


[명량(울돌목)과 진도대교]

 

 

 

명량(울돌목)의 해안 갯바위를 타고 우수영으로 간다.

 

진도대교를 건너 녹진에 도착을 하는 순간은 다음으로 중요하다.

내가 걸어서 명량(울돌목)에 왔음이 중요하다.

 

 

 

[해남군 명량(울돌목)의 이순신장군 상]

 

 

[진도군 명량(울돌목)의 이순신장군 상]

 

 

전라우수영이라서,

전라우수사 이억기를 찾았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물을 괄괄괄~~

콜라를 괄괄괄~~

울금막걸리를 괄괄괄~~

그러고나니 살만했다.

 

 

 

[진도대교(1대교)]

 

 

[진도대교에서 바라 본 우수영국민관광지(해남군 문내면 학동리)]

 

 

 

 

 

2019년6월15일 17시05분 명량(울돌목)을 건너,

이순신트레일의 마지막이자 18번째 기초자치단체, 진도군에 들어 왔다.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 

 

 

여기까지는 동행을 했음 좋으련만...,

아직까지는 남해라해도 되는 바닷길인데...,

 

 

 

 

 

 

 

 

완도의 초입에 원동항이 있다면, 진도의 초입에는 녹진항이 있었다.

 

머리에 털이나고 처음 온 진도,

그 낯선 곳에서 맞이한 저물녘에는 반드시 술을 마셔했다.

 

 

 

 

 

 

 

그대들이여!

진도에 1박의 여행을 간다면 그 잠자리를 꼭 녹진항에 있는 등대모텔에서~

 

아주 잘 잤다.

 

 

벽파진해전 (1597.10.16)
벽파진은 지금의 진도군 고군면이다.

장군께서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한 후, 어란포해전에 이어 2번째 치른 해전이다.

서쪽으로 이동하던 왜선 55척 중 호위 적선 13척이 나타나자, 

한밤중 장군께서 직접 선두에서 지휘하여 이를 격퇴시켰다.

이 전투로 왜군은 조선 수군이 확실히 13척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장군의 복귀도 확인한다.

 

 

 아리랑길 036 - 진도1 (2019.06.16)  「벽파진해전길」

벽파정

 

이음에 대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

관광객을 뜨내기 대신 손님으로 맞이해준 녹진항 사람들의 친절함,

 

그 좋음으로 2일차 길에 나섰다.

 

 

 

[2019년6월16일 05시10분, 녹진교차로]

 

 

 

 

[진도타워 오르는 길]

 

 

이런이런~

꼭두새벽부터 업힐의 극치를 경험하며, 약1km의 오름을 단행했다.

 

석달치 뱉을 가래가 다 튀어나왔다.

10여분뒤 망금산 정상부에 조성된 이순신명량대첩승전광장에 도착을 했다.

 

 

 

 

 

 

 

 

 

 

戰方急愼勿言我死 (싸움이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

 

새벽부터 울컥해져 하마터면 울뻔 했다.

 

 

 

[진도타워]

 

 

[오늘 걷게 될 진도 동부해안의 길]

 

 

[히어로]

 

 

비록 오름과 내림에 힘은 들었지만,

이순신명량대첩승전광장에서 내려다 본 명량(울돌목)의 바다는 감동이었다.

 

감격과 감동은 이순신과 바다였다.

 

 

 

 

 

이순신트레일 36회차 제2일차는,

진도의 동부해안을 따라 벽파진을 향한다.

 

 

서해안길개척종주대의 당초 2회차2일째는 섬의 서부해안을 따라 쉬미항으로 가는 루트였다.

이래도나 저래도나 어차피 진도를 일주하기에 상관은 없다.

 

하지만, 이순신트레일은 어란진-명량-벽파진을 잇는 선이 있기에,

대장인 해미누나에게 2일차에는 부득이 따로 걷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 말을 한 다음날, 서해안길종주대의 진도루트가 반시계방향에서 시계방향으로 변경이 되었다.

 

배려에 감사함도 있었지만, 

서진 기준 장군의 마지막 승전지 '벽파진에는 홀로 도착을 하고픈 마음도 있었다.

 

동행의 길에서 유별나게 이순신트레일이라 주창함도 그렇고 해, 

이순신트레일의 실질적 종착지가 되는 벽파진에는 홀로 도착한 다음,

이충무공벽파진전첩비에 간소하게나마 상을 차리고, 장군께 제(祭)를 한번 올리고 싶었다.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

진도군청 홈페이지에서 발췌

 

 

해안을 따라 개설된 진도의 동부해안로는, 걷는 사람의 것일 만큼 좋은 길이다.

 

더하여 도로를 오가는 차들 또한 드물어 더 좋았고,

거기에 더하여 길가에 지천으로 익어 있는 산딸기는 덤이었다.

 

 

 

[진도 동부해안로]

 

 

 

 

[진도고양이]

 

 

 

 

길이 좋음에 모두들 걷는 걸음에 신이 났다.

길가 그늘에 둘러앉아 먹는 아침밥은 정말 맛났다.

 

 

 

 

 

 

 

[둔전방조제]

 

 

[바다 건너 보이는 진도대교]

 

 

 

 

[바다 건너 어제 걸어 온 화원반도 해안]

 

 

[진도의 파종은 예술인기라~]

 

 

 

 

벽파진으로 가는 길, 길가에 지천으로 여물어 있는 산딸기가 발목을 잡는다.

 

우리 아들 갖다줄거다!면서 산딸기를 따는 해미누나의 모습에 미소가 머금어 졌고,

앞서 가다가 산딸기를 마구 따 입으로 넣고 있는 레인저형님의 모습에는 박장대소가 나왔다.


그래~ 길은 사라지지 않지만, 산딸기는 곧 사라진다.

그래~ 산딸기 좀 따 먹는다고 시간이 지체가 된다는 식의 말은 길을 즐기지 못 함이다.

 

 

 

 

 

 

 

 

 

 

 



2019년6월16일 09시 정각,

이순신트레일 서진기준 장군의 마지막 승전지 벽파진에 도착 했다.

 

 

 

 

 

 

 

하늘은 맑았단다.

바다는 감청색이었단다.

나는 장군께 예를 표하고, 곧장 벽파정으로 올라 그 대청마루에 대자로 뻗었단다.

 

 

 

 

 

[벽파정에서 바라 본 바다(1)]

 

 

[벽파정에서 바라 본 바다(2)]

 

 

[그대, 이 맛을 아는가?]

 

 

벽파진에 도착을 함으로써, 나는 장군의 전승길 모두를 다 걸었다.

 

머물고 싶었고, 떠나기는 더 더욱 싫어지는 벽파진 벽파정이었다.

걸어 왔기에 스치지 않을 수 있었고, 머물렀기에 누릴 수 있었던 벽파진 벽파정이었다. 

 

 

 

 

 

머물고 싶은 풍경을 뒤로 두고 떠나기가 이렇게 싫은 것인줄은 몰랐다.

 

이제 2시간여를 걸어 회차의 종점 황조마을까지 8km만 가면 된다.

걸음은 지쳐도, 좌측에 바다를 두고 걷기에 그렇게 따분하지는 않을 것이다.

 

 

 

 

 

 

 

연동마을을 벗어나, 801번 지방도(진도 동부해안로)에 걸음을 올렸다.

 

걷는 것만이 존재하는 무심의 길이다.

뇌를 비우고, 아무 생각 없이 걸어가면 된다.

 

 

 

 

 

 

 

 

 

 

 

2시간여를 걸어 내산마을앞 해안도로에 접어 들었고, 눈 앞에 마산방조제가 보였다.

 

대한민국 3번째 규모의 면적을 가진 섬, 진도는 아름다웠고,

그 섬길을 누리며 걷는 사람들은 오늘 운이 있는 행복한 사람들이구나 싶더라~

 

 

 

[이순신트레일 36회차-종점 (전남 진도군 고군면 내산리)]

 

 

11시30분, 마산방조제를 지나 회차의 종점 황조마을에 닿았다.

 

먼저 도착을 한 이들이,

이제 더 걷지 않아도 된다는 행복한 표정으로 황조마을앞 정자에 넋을 놓고 앉아 있었다.

 

진도읍으로 나가는 버스를 탈려면, 2.6km를 더 걸어 지막삼거리까지는 가야된다.

아~놔! 우뇌좌뇌가 동시에 돌더라~

 

12시, 지막삼거리에 도착을 했고,

12시30분, 가계에서 오는 버스를 타고 진도읍에 내리니 13시쯤이였다.

 

 

길은 이제 시작인데...,

의지에 기대어 걸어 가는 아픈 걸음들이 보일 때 마다, 같이 하는 마음 한구석이 저민다.

 

비록 아프고 지쳐가는 걸음이지만..., 

동행의 길에서, 각자의 길이 끊김 없이 이어지기를 빈다!

 

 

 

 

 

 

 남해안 해상교량 시리즈 46 - 진도1대교 

 

'이순신길 - 남해바닷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순신길 26-2 여자만(3)  (0) 2020.03.17
이순신길 26-1 고돌산반도  (0) 2020.03.16
이순신길 24 - 해남반도(2)  (0) 2019.06.10
이순신길 23 - 해남반도(1)  (0) 2019.05.14
이순신길 22 - 강진만  (0) 2019.04.09